국무총리는 삼국시대 때는 ‘국상(國相,고구려)-상대등(上大等,신라)-상좌평(上佐平,백제)’, 고려시대 때는 ‘문하시중(門下侍中), 조선시대 때는 ’영의정(領議政)‘으로 불린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의 자리다. ‘재상(宰相)’하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국난사양상(國難思良相)’, 나라가 어지러우면 뛰어난 재상이 생각나고, ‘세란식충신(世亂識忠臣)’, 세상이 어지러운 연후에 비로소 누가 충신인지 알 수 있다 했다. 재상에게는 ‘덕승재(德勝才)’의 자질이 요구된다. 덕이 있는 사람은 사람을 끄는 흡인력이 있고, 그 흡인력이 강한 지도력을 발휘하게 한다. 역사상 명재상들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신라의 김유신은 한민족을 만든 ‘통일’의 리더십을, 고려의 이제현은 원간섭기(97년)에 ‘자주외교’의 리더십을, 조선의 유성룡은 국난을 극복한 ‘구국’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지금까지 44명의 국무총리가 나왔다. 평균 재임기간이 1년 2개월에 불과한 것은 그만큼 정정(政情)이 불안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들은 11명의 대통령을 보좌해서 ‘건국-산업화-민주화’의 금자탑을 세운 당대(當代)의 가장 탁월한 경륜을 갖춘 인물들이다. 역대 총리 중에는 대통령을 꿈꾼 분들이 많았다. 지금까지는 총리의 경력이 ‘대통령선거의 무덤’이었지만 이제는 바뀌고 있다. 더 이상 청와대가 ‘대통령연수원’이 돼서는 안 된다. 대선을 앞둔 우리 국민은 진정한 대통령감에 목말라 하고 있다. 헌정중단의 현재의 정치 상황이 ‘명 총리’를 갈망하고 있는 배경이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직무대리자·행정부의 제2인자·국무회의의 부의장으로서의 지위를 가진다. 따라서 총리를 역임한 분들은 정치인 출신 대통령 후보들과는 DNA가 다를 수밖에 없다. 행정 각부를 통할하면서 우리 역사를 이끈 경세가들의 탁월한 리더십과 국정운영 능력을 체득(體得)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기문 전 총장의 실패는 ‘진보적 보수’라는 중도 전략이 낳은 참사였다. 그의 대선 불출마 선언은 정치권의 지각변화를 가져왔다. 새누리당에게는 희망을, 바른정당에게는 절망을 안겨줬다. 새누리당은 4번 째 대선 출마를 선언한 관록의 이인제 전 의원을 필두로 안상수 의원과 원유철 의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김관용 경북지사와 조경태 의원 등이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으며, 홍준표 경남지사도 항소심 재판에서 무죄가 날 경우 경선출마가 예상된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박근혜 대통령이 문화융성과 스포츠진흥을 위하여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설립한 것은 정당한 통치행위였다”며 “박 대통령의 탄핵은 기각되어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한 바 있다. 또한 세월호 처지가 된 새누리당을 재건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는 정우택 원내대표도 경쟁력 있는 대선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들과 함께 전통 보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경선을 치르게 된다면 흥행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대선 출마 의사를 시사하지 않았음에도 황교안 대행은 8일 발표한 조원씨앤아이와 더리더 공동 여론조사에서 19.5%로 지지율 2위(1위-문재인29%)를 기록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선에 나갈 수 없다는 법은 없다.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국민이 원하면 어쩔 수 없다. 황교안 대행이 ‘보수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은 새누리당을 ‘불임정당’에서 벗어나게 하고, 대한민국의 국운이 친북좌파에 의해 꺾이진 않을 거라는 믿음을 주고 있다.

이제 언론의 거짓 선동이 태극기 진실 앞에 무너지고 있다. 최근 대선 여론조사는 평균 응답률이 10.0%를 밑돌고 있다. 이 중에서도 30% 정도는 중도층이고, 보수 성향 유권자는 55%가 지지후보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여론조사 무용론’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미국 대통령선거, 그리고 지난해 4·13총선의 틀린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탄핵 정국 이후 유권자의 스펙트럼이 왼쪽으로 크게 기울어진 상황이다. 여론조사로 잡히지 않는 ‘샤이보수층’의 숨은 표가 있지만, 보수 대연합이 필요한 이유다. ‘바른정당은 우리 헌정사상 최초의 ‘보수 분열’ 사례다. 이념이 아니라 특정인과의 친소에 의한 분화였기 때문에 결국 ‘보수 자폭’이 되었다.
 
세종대왕은 “인재가 길에 버려져 있는 것은 나라 다스리는 사람의 수치다”라고 했다. ‘탄핵 혼란’을 종식시킬 수 있는 ‘형안총이(炯眼聰耳, 밝은 눈과 열린 귀)’를 가진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끝나게 된 북한을 ‘햇볕정책’으로 연장시켜준 친북좌파 정권으로는 세상을 못 바꾼다. 어느 시대든 현실을 움직여 가는 건 보수다. 난세(亂世)가 영웅을 만든다. 위기 시에는 단결·용기· 결단을 강화시키는 ‘역사의 힘’이 작동한다. 국가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은 ‘견위수명(見危授命)’의 자세로 자신을 버려야 한다. 이제 보수 대선 주자는 정파를 초월해서 단일화를 이뤄야 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말한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정신’을 되새겨야 한다. 사즉생(死卽生)의 배수진(背水陣)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마지막 순간에 단 한 번 쓸 수 있는 것이다. 진퇴유곡(進退維谷)에 처해 있는 보수의 처지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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