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국민 여론과 사뭇 다른 현장의 판단 ‘주목’
- 관심도 줄어든 상황 불구 발생할 수 있는 의외성?


작년 말만 해도 대선주자들이 가장 많이 바글거릴 것만 같았던 제3지대가 관심에서 밀려났다. ‘안희정 바람’의 연쇄효과다. ‘이재명 바람’이 정의당 지지로 흘러들어갈 수 있는 민주당 지지층을 가로막았다면, ‘안희정 바람’은 제3지대의 파괴력을 상실하게 했다. 민주당으로선 황금의 트로이카, 역대 최대의 꽃놀이패 경선이다.

인터넷에서 도는 말을 빌리자면 2007년 대선 구도가 물구나무선 것이다. 여당 후보가 될 뻔하다가 포기한 관료에(고건→반기문), 야당에는 느닷없는 제3주자도 있고(이회창→안철수?), 인기가 없어 쪼개진 여당 진영에는 웬만해선 단일화를 이루기 어려울 것 같은 다른 대선주자도 있다(문국현→유승민?). 그런 와중에 2007년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의 경선에 버금가는 민주당 경선이 벌어지고 있으니 자유한국당에서 2007년 정동영의 역할을 할 사람이 누구인지만 정해지면 완벽한 거울상이다.

여의도의 판단과
국민 여론의 괴리


그렇지만 국민의당에도 이 거울상을 허물 수 있는 마지막 반전의 여지는 남아 있다. 안철수와 손학규 사이에 경선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당장의 여론은 민주당 경선에 쏠려 있지만 2007년 이회창과는 달리 몇몇 주자가 몰려 있는 이 진영에서 경선이 이루어지게 됐으니 그 결과에 따라 잠깐이라도 대중적인 주목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할 만하다.

대중여론은 이 영역에서 당연지사 안철수 의원이 주자로 떠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은 그래도 7~9%의 지지율을 보이는 주자다. 최근 국민의당에 합류하기로 한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은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2% 안팎의 지지율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여의도 정계에선 ‘경선하면 의외로 손학규가 이길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 꾸준히 나돌고 있다.

현장의 판단과 정치고관심층의 판단, 대중여론 중에 무엇이 더 맞아들어가느냐는 의외로 쉽지 않은 주제다. 가령 의원들끼리 선출하는 원내대표 선거라면 여의도 구성원과 그들을 취재하는 정치부기자들의 감이 맞아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언론에서 어떤 구도로 분석한다 한들 의원들 개인의 판단은 그들의 사교관계에서 파악한 인물에 대한 호불호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치 영역에서도 중요한 사건일수록 대중여론이 개입하는 비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현장이나 고관심층보다 지명도 중심으로 판단하는 대중여론의 예측이 더 맞아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오늘날엔 빅데이터 분석처럼 대중의 집단적 인지가 어떠한지를 분석할 수 있는 틀도 있다.

야구에 비유한다면 선수들을 직접 만나고 ‘현장의 감’으로 판단한다는 코치-선수단-야구기자보다 야구경기 기록을 통계학적ㆍ수학적 방법으로 분석하는 세이버매트릭스(Sabermetrics)를 활용하는 팬들의 미래예측이 더 잘 맞아떨어지기도 하는 상황에 해당한다. 혹은 특정 경기에선 그 세이버매트릭스 활용자들에 비해서도 훨씬 대중에 가까운 팀팬들의 바람이 실현되기도 하는 상황에 해당한다. ‘의외로 손학규가 이길 가능성도 있다’는 현장의 판단은 대중여론에 잡히지 않는 추가적인 진실일까? 아니면 그렇게 믿는 오만일까?

‘의외의 손학규 승리’ 가설의 이유는?

안철수와 손학규에겐 나름의 드라마가 있다. 정치이력으로 본다면 2011년부터 여론조사에 들어가기 시작한 안철수에 비해 1993년 정계입문한 손학규의 이력이 훨씬 더 길고 다채롭다. 하지만 손학규는 안철수처럼 대선주자로서 여론조사에서 30% 이상의 지지를 받는 수준의 바람을 일으킨 적은 없다. 다양한 정치 경력의 와중에서도 대선에 출마하려는 시도는 두 번이나 경선에서 좌절됐다. 물론 본선을 뛰어본 적이 없는 것은 안철수도 마찬가지다.

‘의외로 손학규 승리’ 가설은 다음의 몇 가지 근거를 지닌다. 첫째, 국민의당 주류인 호남지역구 의원들과 안철수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저 2016년 총선에서의 이해관계가 잠시 일치한 느슨한 연합일 뿐이다. 민주당 대통령이 탄생할 경우 의원 상당수는 국민의당 독자노선을 고집하지 않으리라는 예측도 있다. 그들의 이해관계를 가장 폭넓게 관리하는 것으로 보이는 박지원 대표 입장에서 안철수와 손학규 중 누가 자신의 이해관계에 부합할까를 질문하는 것은 의미 있을 수 있다.

둘째, 안철수의 지지율이이다. 7~9%와 1~2%의 격차는 현격하지만 민주당 후보가 압도적으로 우세한 현 상황에서 본선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점은 둘이 같다. 만약 안철수 지지율이 15~20%를 오갔다면 ‘의외로 손학규 승리’ 가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중의 관심도에서 멀어진 경선이란 점이다. 개방경선의 판도는 대중여론의 관심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관심이 집중된다면 여론조사 지지율에 근접한 결과가 나오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직 동원이 미치는 영향이 더 커진다.

앞서 설명한 구도에 의해 국민의당을 사실상 만든 안철수에 비해 ‘막 굴러들어온 돌’인 손학규가 의외로 유리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언론조사의 국민의당 후보적합도 조사를 보면 가장 핵심이 될 호남 유권자 지지율에서 손학규는 안철수에게 압도적으로 뒤지지 않는다.

만약 손학규가 승리한다면 그 의외성 때문에 더한 ‘컨벤션효과’가 생길까? 잠깐 그럴 수 있지만, 여론의 주목이 줄어들어 생긴 의외성이란 한계는 여전히 남는다. 최근 손학규는 안희정에 대해, ‘노무현 키즈’임이 분명한데 무슨 중도파냐고 일갈했다.

하지만 충분한 설득력은 없다. 참여정부엔 보수성과 진보성이 모두 있었고, 안희정이 그중 보수적인 부분을 대변한다 말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손학규에게 “어떻게 매년 동지가 바뀌냐”고 한 안희정의 비판도 합리적이진 않았지만, 노정객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공정하지 않은 법이다.

안철수가 어떤 립서비스를 하든 상관없이, 드라마를 바라는 어떤 국민여론과는 달리 국민의당으로선 민주당 후보가 문재인으로 고정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이는 ‘경선 역선택’을 우려하는 문재인 지지자들에겐 또 다른 역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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