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에게도 ‘-님·-프로’ 경영철학 담겨

CJ·SKT 서열 파괴, 한화·KT 직위 호칭 부활

직원 간 수평 문화 확립 vs 대외 업무 협약 문제 탓


[일요서울 | 오유진 기자] 회장님, 부장님…회사 안에서 익숙하게 불리던 호칭들이 다양하게 바뀌고 있다. 이는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가 포문을 열며 관심을 모았던 ‘호칭파괴’ 문화와 궤를 함께한다. 특히 호칭의 변화를 이전부터 시행해 안정적으로 정착한 기업들이 있다. 첫 시행을 한 CJ부터 SK텔레콤, 제일기획, 아모레퍼시픽, 넥슨코리아 등이 그 주인공이다. 반면 ‘호칭파괴’ 문제점으로 외부에서 활동하는 직원의 불편함 등이 지적되며 다시 직위체계를 도입한 곳도 있다. 일요서울은 다양하게 변하고 있는 ‘호칭파괴’엔 어떤 함의가 담겨 있는지, 현재 ‘호칭파괴’를 이어가는 기업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봤다.

보통 회사에서는 ‘대리님’ ‘과장님’ ‘부장님’ 등 직위를 부르는 게 일반적이었다. 직위가 낮은 직원이 상급자에게 ‘이름’ 혹은 ‘씨’라고 부르는 것은 조직문화에서 불경한 것이었다. 그러나 권위적인 조직문화, 일명 ‘갑질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직위를 호칭으로 삼는 것을 지양해 새로운 호칭을 도입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이런 호칭의 변화를 통틀어 ‘호칭파괴’로 지칭되고 있다. 호칭 파괴란 회사 내에서 직위를 부르는 대신 연차와 직위가 구분되지 않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다.

올해 ‘호칭파괴’의 선두 주자는 삼성전자가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6월 창의적이고 수평적인 조직문화 조성을 위해 직무와 역할 중심의 인사체계로 전환한다는 인사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 개편안은 올해 3월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시행될 전망이다. 삼성전자의 이 개편안을 살펴보면 기존 사원(1·2·3),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등 7단계로 나뉜 직위체계를 경력개발 단계(Career Level) ‘네 단계’로 단순화하고 임원과 팀장, 그룹장 등 직책을 제외한 상호 호칭을 이름 뒤에 ‘님’을 붙이는 방식으로 바꾼다는 내용이다. 

일요서울은 삼성전자에 정확한 호칭 변경 일정 및 입장을 물었다. 이에 삼성전자 측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라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거는 없지만 안 한다는 얘기도 없다”며 “7단계에서 4단계로 바꾸고 수평적 조직문화 창의적 조직문화 일괄 업무 중심으로 가려고 하는 거다”라고 호칭 변경 배경을 설명했다. 호칭 문화의 단점도 지적되고 있다는 질문에 그는 “시행이 안 돼 단점을 지적 하는 것은 시기상조다”라고 답했다.

자유로운 의견 제시

이런 ‘호칭파괴문화’는 2000년부터 국내 대기업 최초로 CJ가 시행했다. 직위체계 자체를 개편하는 방식이 아닌 내부에서 직원끼리 ‘님’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는 것. CJ 관계자는 딱딱하게 진행되는 회의 등에서 직원들의 경직성을 완화하려는 고려로 수평적 위치에서 자유로운 의견이 활발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특히 이 호칭 변경 제안은 이재현 CJ 회장의 지시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CJ 관계자는 건의사항이나 회장에게 하고 싶은 말 등을 쓰는 곳인 CJ월드에 ‘이재현님 대화방’이 존재한다며 이 회장이 방을 직접 만들어 기업문화 도입과 문화 정착에 앞장서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 회장의 경영철학을 드러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SK텔레콤 역시 ‘호칭파괴’를 2006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SK텔레콤은 ‘매니저’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SK텔레콤의)비즈니스 자체가 창의적인 문화가 필요해 수평적인 관계에 맞는 조직체계다. 논의된 호칭문화 정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점으로 지적되는 외부 영업사원 호칭에 대해선 “예를 들면 영업 외부에서 사원 입장에서 기본적으로 매니저라 하면 무슨 급인지 상대방이 궁금해 하는 경우가 많아 예외적으로 거기에 맞게 영업 쪽은 ‘과장’ ‘부장’ 등 (호칭을) 겸할 수 있게 탄력적으로 시행하며 보완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모레퍼시픽 역시 2002년부터 호칭을 ‘님’으로 통일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유연한 조직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일 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이 국가대표 선수단의 수직적인 문화가 호칭 문화에 있다는 지적으로 시작된 (국가대표) 훈련 중의 호칭 파괴에서 착안했다며, 회사 내에서 업무에 따라 직위는 있지만 서로 간의 호칭을 ‘님’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에게도 모든 사원들이 ‘서경배 회장님’이 아닌 ‘서경배 님’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이런 호칭문화의 단점에 대해선 “상호간의 호칭문화로 직위체계자체를 없앤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업사원들은 업무 진행을 할 때 대리인지 과장인지 팀장인지 알아야 하기 때문에 대외적 업무에서 유연하게 진행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제일기획은 2010년부터 직위체계를 색다른 명칭인 ‘프로’로 통일했다. 임대기 제일기획 사장 역시 내부에서 ‘임대기 프로’라고 지칭된다며 제일기획 관계자는 “통상 직위가 있는 분들한테는 직책을 부르지만 자신을 칭하거나, 서신 등의 내부 활동을 할 때 프로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카카오는 전 카카오의 호칭 방식, 즉 영어 이름을 임의로 만들어 부르는 방식을 사용한다.

넥슨코리아는 2014년부터 ‘님’이라고 부른다. 이에 넥슨코리아 관계자는 “제가 대표님에게 메일을 쓰거나 전화를 해도 박지원 님이라고 한다”며 “그렇다고 해서 직위가 없는 건 아니다. 회사 내부에서 호칭만 ‘님’이라고 부르는 거다”고 했다.

직위 체계 다시 부활

반면 ‘갑질 문화’ 개선을 위해 도입된 ‘호칭파괴’를 시행했다가 다시 되돌린 기업도 존재한다. 한화그룹은 사원에 ‘씨’, 대리에서 차장까지는 ‘매니저’라고 부른 바 있다. 그러나 현재는 기존의 직위체계를 부활시켰다. 그 배경에 대해서 한화그룹 관계자는 “보통 매니저 체계 정도로 가면 수평적인 느낌은 있으나, 실생활에서 직위체계에 따른 호칭이 없어지게 되면 명확한 업무 지시와 이행에서 불편한 점이 있다. 그것이 요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KT역시 팀장, 실장, 본부장 등 직위를 모두 ‘매니저’로 호칭을 통일했지만 시행 4년 6개월 만에 직위체계에 따른 호칭을 부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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