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삼재 의원직 사퇴 이어 김덕룡 검찰 소환설에 총체적 위기감‘총선전 철저히 털고가자’ 정면돌파 카드 꺼내“안풍사건의 본질은 92년 김영삼 후보 대선자금과 관련”주장안기부(현국정원) 자금 불법전용의혹 사건인 이른바 ‘안풍’ 사건이 정가를 뒤흔들고 있다. ‘안풍’의 핵심인물로 지목받고 있는 한나라당 강삼재 의원은 23일 1심 재판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직후 정계은퇴를 공식 선언하는 초강수를 던졌다. 또 홍준표 의원은 25일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안풍’과 관련해 문제된 자금의 출처와 성격에 대해 ‘김영삼(YS) 전대통령의 대선잔여금’이라고 주장해 파문 확산에 불을 지피고 있다.

여기에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 지난 95년 지방선거 당시 사무총장이었던 김덕룡 의원에 대한 소환 조사 방침을 밝히는 등 ‘안풍’과 관련한 실체적 진실규명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바야흐로 ‘제2의 안풍’이 정가를 엄습하고 있는 형국이다.지난 23일 ‘안풍’ 사건과 관련한 1심 재판에서 징역 4년을 선고 받은 한나라당 강삼재 의원은 이튿날인 24일 마산 지구당사에 내려가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가졌다.강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의원직 사퇴와 정계은퇴를 전격 선언했다. 재판의 잘잘못이나 자신의 억울함을 떠나 1심의 유죄 선고에 따라 공인으로서 도덕적 자격은 일시 정지됐고 정상적인 의정활동 또한 어려워졌다는게 강 의원이 밝힌 정계 은퇴 선언 배경이다.강 의원의 갑작스런 은퇴 선언은 곧바로 중앙 정치권을 강타했다.

민주당과 통합신당측은 한나라당의 정치적 부도덕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호재로 받아들이고 있는 반면 한나라당은 기획·표적수사 의혹을 제기하며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특히 한나라당은 강 의원의 전격 사퇴에 이어 검찰의 김덕룡 의원 소환 방침이 알려지자 24일 오후 최병렬 대표와 홍사덕 원내총무 등 지도부가 참석한 가운데 긴급 대책모임을 갖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한나라당은 이날 대책모임에서 강 의원의 정계은퇴를 적극 만류하는 동시에 강력한 법정투쟁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또 다가오는 총선정국을 감안, 자칫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는 안풍사건을 이번 기회에 철저히 털고 간다는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이 국민의 세금으로 선거를 치렀다는 누명을 벗지 않으면 내년 총선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란 위기감이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김덕룡 의원에 대한 검찰의 소환 조사 방침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검찰은 지난 95년 6·27 지방선거 당시 민자당 사무총장겸 선거대책본부장이었던 김 의원이 김기섭 전 안기부운영차장으로부터 257억원의 안기부 예산을 선거자금으로 불법 지원받은 혐의가 있다며 10월초 소환 조사할 방침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김 의원에 대한 소환 조사는 실체적 진실규명 여부를 떠나 한나라당의 도덕성에 타격을 입힐 수 있고, 이는 고스란히 당 지지율 하락으로 연결될 수 있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이같은 위기감이 고조되자 정면돌파 카드를 꺼내들었다. 정공법은 다름아닌 실체적 진실규명. 홍준표 의원을 선봉장으로 당 지도부가 YS를 직간접적으로 겨냥한 배경도 이러한 전략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홍 의원은 대책모임 다음날인 25일 서울고·지법 등에 대한 국회 법사위 국감에서 “‘안풍’ 사건의 본질은 지난 92년 김영삼 후보의 대선잔금이 안기부 계좌로 들어가 세탁된 것”이라며 YS를 직접 겨냥했다. 그는 또 “YS 차남 현철씨의 사조직 나사본(나라사랑운동본부) 대선잔금 130억원 중 70억원이 안기부 계좌로 들어갔다는 것은 재판부도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 대표도 이날 오전 상임운영위 회의에서 “(문제된 돈이)불법자금인지 뭔지 성격을 잘 알 수 없으나 안기부 돈은 아닌 것은 명백하다”며 “계좌추적만 되면 자금의 성격이 밝혀질 것이므로 안기부, 대통령을 설득해서라도 반드시 계좌추적을 관철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대표와 홍 의원의 이같은 주장은 그동안 정치권 주변에서 제기돼 온 ‘안기부 선거자금= YS 대선자금’이라는 의혹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또 이러한 주장은 현직 의원이 국감장에서 공식적으로 거론한 것이어서 파문 확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홍 의원은 특히 26일 기자들과 만나 “이젠 YS가 나서서 밝혀야 하며 YS가 밝히지 않으면 한나라당이 다 죽는다”며 YS가 직접 나서 진실을 밝힐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최병렬 대표도 24일 “돈의 출처와 성격에 대해 당밖에 있는 5∼6명은 진실을 알고 있다. 적당한 때에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강조해 뭔가 결심이 섰음을 암시했다.이에 대해 YS측은 아직까지 공식적인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다만 YS의 대변인격인 박종웅 의원만이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을 정도다. 박 의원은 “‘안풍사건’은 김대중 전대통령의 비자금을 밝힌데 대한 표적사정으로 정치적인 재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재판과정에서 잘못된 정치재판이란 게 적나라하게 드러났으면 강력하게 정치투쟁을 통해 바로 잡아야지 이 시점에 대선자금, 통치자금 얘기를 하는 것은 자중지난만 일으킬 수 있는 잘못된 대응으로 방향을 잘못잡고 있다”며 당 지도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지도부가 내년 총선을 고려해 이번 사건에 대한 적극 대응 방침을 고수하고 있어 양측의 충돌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이와관련 최 대표는 “소송이 3년동안 진행됐는데 그동안 당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역할을 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며 “법정투쟁을 통해 문제의 돈이 안기부 예산이 아니라는 것을 규명하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홍사덕 총무도 “강삼재 의원에 대한 재판 결과와 김덕룡 의원을 기소하겠다는 예고 등은 사실 우발적이고, 단선적으로 나타난 일이 아니다”라며 “총선을 앞두고 ‘노무현당’ 출범과 함께 시작된 기획된 야당탄압이 이미 시작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이처럼 ‘안풍’ 사건이 ‘YS 대선잔여금’ 공방전으로 비화될 조짐이 일자 정치권은 바짝 긴장하며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안풍’과 관련한 문제의 자금이 YS 대선자금으로 드러날 경우 정치권은 또 한차례 큰 격랑에 휩싸이게 될 것이란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특히 정치권 일각에서는 집권 5년간 공소시효가 정지되는 만큼 돈의 출처와 성격 여부에 따라서 대대적인 사법처리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여기에 총선정국과 맞물린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본격화되고 있는 작금의 정국상황을 감안한다면 이 사건의 불똥은 또다른 정계개편 도화선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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