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올 3월 신학기부터 ‘국정 역사교과서’를 시범적으로 사용할 연구학교를 공모하였다. 기존 친북좌편향 ‘검정 역사교과서’의 편향성을 바로 잡기 위한 대안이었다. 6.25 남침 원인이 남북 모두에게 있는 것처럼 기술되고 김일성 주체사상을 비판 없이 소개하는 등 좌편향 검정교과서의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전국 5566개 초·중·고교 가운데 오직 경북 경산의 문명高 하나만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로 선택했다. 검정 교과서 대 국정 교과서 선택비율은 5566대1이 되고 말았다. 주요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야당 정치권, 좌파성향 교육감, 좌편향 시민단체 등의 조직적이며 조폭식 방해공작에 연유한다.
영주의 경북항공고, 구미의 오상고, 경산의 문명고 셋은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로 신청키로 했었다. 그러나 이 셋 중 경북항공고와 오상고는 끝내 포기하고 말았다. 경북항공고 측은 “연구학교 신청을 하기 전 부터 전교조, 민노총, 등의 조직적 시위와 압력에 시달렸다.”고 털어놓았다. 2월13일엔 전교조, 민노총 회원 9명이 찾아와 “언성을 높이며 연구학교 신청 철회를 강요”한 데 이어 “곧 정권이 바뀔 텐데 왜 연구학교를 신청하나, 촛불중앙회에 올려 경북항공고를 흔들겠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구미 오상고도 전교조 등의 압박과 교내 학생들의 동요 등이 겹쳐 2월16일 연구학교 지정 신청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러나 문명고만은 조직적인 방해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로 홀로 버텼다. 김태동 문명고 교장은 “신청 전에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찬성표가 더 많아 연구학교로 신청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세력은 압력을 계속했다. 하지만 홍택정 이사장은 “민노총과 전교조 그리고 학부모”가 찾아와 항의했지만 “목에 칼이 들어와도 우리 결정을 뒤집을 수는 없다는 뜻을 전했다.”고 토로했다. 
결국 좌편향 세력의 조직적이고 깡패 협박에 겁먹은 5566 학교들 중 오직 문명고만이 국정 연구학교로 갔다.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는 99.9%로 나타난 것이다. 마치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북한 주민들이 100% 투표에 99.9%지지한 숫자를 떠올리게 해 소름이 끼친다. 좌편향 세력의 조직적 공갈협박에 굴복해 대한민국의 역사교과서 선택은 역사교육의 다양성을 모두 포기한 채 좌편향 일색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5566대1의 검정 대 국정 역사교과서 선택은 좌편향 세력의 승리다. 동시에 국정 연구학교 선택 참패는 초·중·고교 교사와 경영진의 소신 없고 비굴한 보신주의가 빚어낸 참패였고 수치였다. 교사·교장·이사장 등이 반대 세력의 협박에 맞서지 못하고 소신 없이 무기력하게  굴복한 탓이다. 학교 교사와 경영자들이 문명고의 홍택정 이사장처럼 “목에 칼이 들어와도 우리 결정을 뒤집을 수 없다.”고 맞섰다면, 결코 그렇게 무참히 짓밟히지는 않았을 게 분명하다. 
좌편향 세력은 선비들이 폭언과 폭력에 약하다는 약점을 파고들어 조폭처럼 날뛰었고 거기에 겁먹은 교직원들이 무릎 꿇고 만 것이다. 그러나 선비들이 다 그렇게 비굴하고 허약한 건 아니다. 조선조 때 집현전 학사를 지낸 성삼문은 폭군 세조에 맞서 단종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었다. 성삼문은 시뻘겋게 달궈진 쇠로 다리가 지져지고 팔이 잘리는 등 참혹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세조의 왕권찬탈을 준엄히 꾸짖었다.
한민족의 선비 피 속에는 살이 타들어가도 굴복하지 않는 성삼문의 굳은 기백이 흐른다. 초*중*고교 종사자들 중 몇 명이라도 성삼문은 아니더라도 홍택정 이사장의 굳은 결기만 있었어도 역사교과서의 좌편향을 바로잡고 다양성을 살릴 수 있었다. 아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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