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바른정당이 추풍낙엽 신세다. ‘보수 적통’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호언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현실은 당초 기대와 너무나도 달랐다. 지지율은 정의당에조차 밀렸고, 대선주자 지지율 역시 다섯 손가락으로 셀 정도로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바른정당은 반기문 전 총장 영입 하나만을 바라봤지만 실패했다.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TK에서는 ‘배신자 낙인’이 찍히며 지역기반이 전무해지고 말았다. 무엇보다 ‘보수’도 ‘진보’도 아닌 이들의 애매모호한 정체성은 국민들의 무관심을 초래했다. 여기에 당 내부 불협화음도 지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당내에서 ‘지도부 책임론’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바른정당이 말 그대로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직면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른정당에게 판세를 뒤집을 ‘뾰족한 수’는 없어 보인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간 ‘보수 적자 경쟁’에서 바른정당이 ‘완패’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右 한국당, 左 민주당… ‘설 곳 없는’ 바른정당
- ‘그 밥에 그 나물’, ‘배신자 낙인’ 사면초가 빠진 바른정당… “어떡해”


바른정당의 한숨소리가 커져가고 있다. 바른정당은 지난달 24일 ‘진짜 보수’, ‘친박 패권주의 청산’을 외치며 힘차게 창당의 신호탄을 쏘았지만 ‘진퇴양난(進退兩難)’ 처지에 직면한 모양새다. 초기만 해도 자유한국당을 탈당해 합류할 의원들이 대거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창단 한 달이 다 돼는 현재까지도 추가 합류 의사를 밝힌 의원이 전무하다. 바른정당의 위기가 여실히 드러난 대목이다.

설상가상으로 여론조사전문업체 <리얼미터>의 2월 2주차 여론조사에서는 바른정당의 지지율이 정의당에도 못 미치면서 바른정당은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꼴찌’를 기록했다. 정의당은 5.4%에서 6.8%로 상승한 반면 바른정당은 8.3%에서 2.7% 포인트 내린 5.6%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러자 정치권과 언론은 정의당의 상승이 아닌 바른정당의 추락에 주목했다.

이도 저도 아닌 정체성…
국민들은 ‘무관심’


정치권의 관계자들은 바른정당 지지율 급락의 이유로 ‘보수’도 ‘진보’도 아닌 애매모호한 정체성을 제일 먼저 꼽는다. 이미 ‘보수=자유한국당’, ‘진보=더불어민주당’, ‘중도=국민의당’이라는 정치 구도가 만들어진 상황에서 바른정당이 끼어들 틈이 없다는 것. 실제로 바른정당은 자유한국당 탈당 이후 기존 중도 성향 유권자들한테는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지적을, 기존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겐 ‘배신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바른정당은 궁여지책으로 연일 ‘좌클릭’을 시도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에 일각에서는 바른정당이 한때 ‘선거의 여왕’으로 불렸던 박근혜 대통령 후보 시절 대선 전략을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며 보수 진영에서 ‘배신자’로 등극한 이들이 대통령의 전략을 따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것.

박 대통령은 2012년 당시 새누리당 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했을 때 이명박 대통령 정권 말기 최악의 당 지지율 속에서도 ‘막판 뒤집기’를 해냈다. 그는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당시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자신의 선거 캠프로 영입했다.

김 전 대표는 과거 새누리당 내 경제민주화 추진을 둘러싼 갈등으로 ‘당무 거부’까지 불사했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김 전 대표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등 경제 이슈에서 ‘좌클릭’을 밀고 나감과 동시에 안보에선 보수를 강조하는 ‘묘수’를 꺼내 들었었다.

바른정당 역시 김무성 의원의 주도하에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의원과의 연대를 위한 포석으로 대통령은 외치, 총리는 내치를 맡는 이원집정부제 개헌안을 마련했다. 나아가 바른정당 내에선 유승민 후보가 ‘혁신 성장론’. ‘중부담-중복지’로 ‘경제 좌클릭’을 시도하고 있고 남경필 경기지사는 ‘대연정’으로 ‘정치 좌클릭’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배신의 아이콘’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두 후보가 박 대통령을 ‘벤치마킹’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는 것은 기존 보수 지지층에게 더 큰 반감을 살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당내 대선주자인 유승민 의원은 연일 ‘자강론’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칫 바른정당이 연대에 의지해야만 대선을 치를 수 있는 당으로 인식돼 본인에게 독이 될까 염려에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바른정당이 ‘문재인 대세론’에 맞서기 위한 유일한 해법으로 ‘보수·중도층’ 포섭을 노렸으나 결과적으로 보수 이미지로는 자유한국당에 밀리고, 좌클릭에서는 민주당 등 야권에 치이는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됐다”며 “현실적으로 외부인사 영입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TK에서 ‘배신자 낙인’…
지역 기반 전무


정치권은 바른정당 지지율 급락의 또 다른 이유로 지역기반 상실을 꼽는다. 자유한국당은 보수의 텃밭인 ‘대구와 경북’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호남’이라는 확고한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보수정당 내 개혁적 성향만으로 모인 바른정당은 뚜렷한 지지 기반이 없는 게 사실이다.

여기에 ‘보수의 심장’ TK에서조차 ‘배신자 낙인’이 찍히며 민주당보다도 낮은 지지율에 맥을 못 추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바른정당 소속 의원 지역구에 경쟁자를 배치하면서 위기감은 더욱 고조되는 형세다. 

수도권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갤럽이 지난 14~16일 조사해 17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바른정당은 서울 4%, 경기·인천 5% 등의 지지율로 평균을 밑돌았다.
바른정당이 지역구별 조직위원장 공모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모습은 지역 기반이 사라진 바른정당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바른정당에 따르면 이달 9일부터 21일까지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와 유승민 국회의원의 지역구인 수성을과 동을 지역을 제외한 대구 10개 지역구에서 조직위원장을 모집, 평균 1.5대 1의 저조한 경쟁률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마저도 지난해 새누리당 공천에서 고배를 마신 전 의원들이 대거 지원해 그나마 이 경쟁률을 유지했다는 분석이다.

바른정당의 한 관계자는 “같은 식구인데도 함구령을 이유로 조직위원장 응모 명단은 물론 수치까지 공모 관련 자료를 일절 알려주지 않고 있다”고 귀띔했다. TK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 조직위원장 모집에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바른정당 내부의 불협화음도 지지율 급락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일단 김무성 의원의 개헌을 명분으로 한 반문(反文)연대 구축 구상과 유승민 의원의 보수 후보 단일화 구상이 충돌하고 있다.

김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대 반문재인 세력으로 대선 구도가 형성돼야 승산이 있다고 주장한다. 반 문재인 세력을 묶을 명분으로 ‘개헌’을 내세우고 있다. 반면 유 의원은 김 의원의 구상을 원칙에 어긋난다고 보고 있다.

그는 “개헌만으로는 연대가 어렵다”, “대선 전 개헌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나아가 유 의원은 당내 경선에서 우선 후보를 결정하고, 국민의당을 포함한 보수후보 단일화를 통해 가치 경쟁을 해야 한다는 ‘자강론’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당이 분열 위기에 놓였다는 우려까지도 제기된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22일에는 바른정당내에서 보수연합을 둘러싼 주자 간 갈등, 박근혜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 등을 둘러싼 지도부 내부의 의견차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특히 보수 단일 후보론을 둘러싼 대선주자 간 갈등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남경필 지사는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국정농단 세력과 후보 단일화를 포기할 수 없는 유 의원이라면 차라리 새누리당으로 돌아가길 권한다”고 유 의원에 집중포화를 가했다.

그러자 유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은 김종필 전 총리와 단일화했고,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대통령은 재벌인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해서 정권을 창출했다”고 기존 입장을 꺾지 않았다.

이 같은 이유로 조기 대선이 확실히 되는 가운데서도 바른정당은 당은 물론 대선주자들마저 뜨지 않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바른정당이 반전 카드로 어떤 것을 내놓을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게 정치권 내부 기류다.

속속 링에 오르는
與 대선주자들


반면 그동안 불임정당이라는 오명을 들어온 자유한국당은 대선주자가 10명 이상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인천시장을 지낸 안상수 의원은 21일 인천 송도국제도시 내 경제자유구역청에서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안 의원의 출마로 한국당 대선주자는 이인제 전 최고위원, 원유철 의원,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을 포함해 총 4명이 됐다. 여기에 김문수 비상대책위원, 정우택 원내대표, 조경태 의원, 김태호 전 경남지사, 김관용 경북도지사, 김기현 울산시장 등이 출마를 고민 중이다.

또한 지난 16일 정치자금법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홍준표 경남지사도 유력 대선주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야권 저격수로 정치적 존재감이 큰 홍 지사가 출마한다면 보수 진영의 결집과 함께 경선 흥행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무엇보다 대선 출마가 불투명하지만, 여권 내 높은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태극기 바람을 타고 출마한다면 경선 흥행도는 배가될 전망이다.
나아가 한국당의 지지율 역시 연일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당은 ‘김정남 피살'과 ‘미사일 발사' 등 북풍(北風)이 휘몰아치면서 10% 중반을 돌파, 작년 12월 4주차 이후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탄핵 정국 이후 보수층의 재집결을 통해 유력  보수 후보를 낼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바른정당과의 ‘보수 적자 경쟁’에서 승기를 거머쥐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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