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비자금 관련 여야 의원 4명 소환…SK비자금 수사도 본격화박주선 의원 “신당에 비협조적이어서 보복 하려는 의도” 반발여의도 정가 주변에 또다시 사정 먹구름이 엄습하고 있다. 이번 사정 먹구름에는 여야의 구분이 없다. 검찰은 추석 연휴이후 비리혐의가 있는 여야 의원들에 대한 소환 조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검찰의 정치인 사정 드라이브는 민주당 분당 국면, 한나라당 소장·중진 갈등 등 정계개편이 본격화되고 있는 현정국상황과 맞물려 정치권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정치인 사정리스트’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또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계개편과 맞물린 ‘기획사정’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오직 증거에 의한 수사일 뿐 정치적 고려나 배경은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현재 검찰이 주력하고 있는 정치인 관련 수사는 현대·SK비자금 등 각종 대형 비자금 사건이다.현대비자금 사건과 관련, 검찰은 이미 민주당 권노갑(구속 수감) 전고문과 박지원 전청와대비서실장(추가 기소)이 현대측으로부터 각각 200억원과 150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포착하고 그 용처를 밝히는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검찰은 특히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영완(미국체류)씨가 최근 변호인을 통해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에게서 200억원을 받아 권 전고문에게 전달한 과정, 남은 50억원의 행방 등을 적시한 자술서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혐의 입증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검찰과 국회 주변에서는 오래전부터 ‘현대비자금 리스트’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이 리스트에는 거물급 정치인을 포함한 현역의원 10여명이 올라 있다.

민주당 중진인 H K J의원, 신주류 핵심인 J S의원, 한나라당 중진 H S P의원 등이 대표적이다.검찰은 또 현대비자금 사건 수사 과정에서 포착된 또다른 정치인 비리관련 수사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미 소환 조사를 마친 민주당 이훈평(15일)·박주선(16일) 의원과 18일 소환에 불응한 한나라당 박주천·임진출 의원 등이 검찰이 지목하고 있는 현대 사건 관련 정치인들이다.이 의원은 현대비자금 사건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으나 현대측이 타기업들에 이권을 주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고, 나머지 세 의원은 2000년 10월 국회 국정감사를 전후해 고 정몽헌 회장의 국감 증인채택 문제와 관련해 현대측으로부터 로비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현대비자금 사건과 관련한 검찰권 행사에 대한 정치권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특히 검찰의 소환(18일) 통보를 받고 16일 자진출두한 박주선 의원은 “정식 영수증이 발급된 합법적 후원금을 정치자금으로 둔갑시켜 수사하는 것은 검찰을 동원해 신당에 비협조적인 정치인을 보복하려는 것”이라며 ‘표적수사’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정치권도 “현대측은 대가를 바라고 줬다 해도 박 의원이 이를 의식하지 않았다면 뇌물로 보기 어렵다”며 “검찰의 논리대로라며 뇌물 아닌 후원금이 어디 있겠느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이에 대해 검찰은 “절차적 정당성을 갖췄다 해도 실질적인 대가성이 있으면 뇌물”이라는 논리를 굽히지 않고 있다. 이와관련 문효남 대검 수사기획관은 “박 의원 주장대로 후원금으로 처리했음을 입증할 선관위 발부 영수증이 실재한다 하더라도 대가성이 인정되므로 뇌물 혐의를 벗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검찰은 박주천·임진출 의원이 끝까지 소환에 불응할 경우 조사없이 기소할 방침이고, 이훈평 의원에 대해서는 2차 소환을 검토중이며, 현대비자금에 연루된 전직 의원 2명에 대해서도 조만간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검찰은 또 SK비자금 사건에 대해서도 조만간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할 방침이다.

정·재계 주변에선 SK그룹의 비자금 규모가 수천억원대에 달하고, 이중 상당액이 정치권에 유입됐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어 검찰 수사가 본격화될 경우 정치권은 또 한차례 심한 몸살을 앓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검찰은 그동안 `SK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SK해운 자금담당 임직원들에 대한 소환 조사를 통해 2000∼2001년 사이 단기차입금 누락 등 분식회계를 통해 2,0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잡고 이 돈의 행방을 추적해 왔다.검찰은 이달말 쯤 비자금 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손길승 SK회장을 소환, 조사하는 것을 시작으로 ‘SK비자금’ 사건에 수사력을 집중할 방침이다.현대·SK비자금 사건외에 각종 대형게이트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정치인에 대한 수사도 빠른 시일내에 마무리 지을 계획이다.

비자금 조성규모가 230억원대에 달하는 나라종금 사건을 비롯해 수원 S건설 비리사건, 부천 범박동재개발 비리의혹 등과 관련해 연루 혐의가 포착된 전현직 의원 및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를 조만간 종결할 방침.이처럼 추석연휴 이후 정치인에 대한 검찰 수사가 탄력을 받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기획사정’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민주당이 끝내 분당되는 등 정계개편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는 작금의 정국상황과 강도높은 검찰권 행사에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는 것.특히 민주당 잔류파들은 “검찰의 사정대상에 올라 있는 인사들은 대부분 당 사수파와 중도파이고 탈당파는 거의 없다”며 ‘기획사정’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이와관련 박주선 의원은 “합법적 후원금을 뇌물로 둔갑시키고 있는 검찰 수사 배경에는 민주당의 정통성을 수호하려는 정치인을 부패혐의자로 낙인찍어 신당의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정치적 음모”라고 주장했다.

또 중도파인 한 의원도 “중도파 의원들을 소환 조사하면서 한나라당 의원들도 함께 소환 통보한 것은 ‘기획사정’ 비판을 회피하기 위한 술책”이라며 “검찰의 무리한 수사는 반드시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하지만 검찰의 입장은 단호하다.송광수 검찰총장은 16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어떠한 정치적 고려나 배경 없이 오직 증거에 의한 수사를 하고 있다”며 “이번 수사가 신당 창당에 어떤 영향을 줄까 하는 등의 정치권 고려를 한다면 바로 ‘정치검찰’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송 총장은 또 나라종금 사건에 이어 현대·SK 비자금 사건 등 정치권 관련 수사가 부쩍 활발해진 이유와 관련해서는 “원래 정권 교체기에는 투서나 제보 등이 많아 그런 것 아니냐. 예전에는 어떤 의도를 갖고 수사한 일도 있었으나 요즘엔 그렇지 않다”며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기획사정설’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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