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이흥렬의 푸른 나무 이야기

오래 전 대학에 입학하고 사진학 수업을 들으며 처음 사진에 대해 배운 적 있다. 수업의 일부였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에 수동카메라를 구입해 기법을 익히고 특이한 필름도 구입해 보기도 했다.
 
사진을 찍기 위한 좋은 이미지를 찾아 여기저기를 샅샅히 찾아다니곤 했다.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며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고 사진에 부지런히 담았다. 당시 사진학 교수님은 공학과 사진학을 전공한 분이셨다. 그래서인지 사진학 수업은 이성적이며 합리적이지만 감성적이며 예술적인 느낌도 함께 녹아들었다. 수업 이후 점차 디지털 카메라가 유행하며 필름카메라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지만 지금까지도 그 시절의 기억으로 다양하게 출시된 카메라에 관심을 가지고 촬영되는 이미지와 특징들을 알아가는 취미를 가지게 되었다.
 
사진에 대한 관심으로 여러 사진 이미지를 모색하고 탐구하다 이흥렬 작가의 전시를 접하게 되었다. 이흥렬 작가는 어린 시절 이모가 주고 간 카메라가 사진을 전공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이후 중앙대 사진과와 이태리의 유럽 디자인 대학에서 사진과를 졸업했다. 현재는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한국시각예술가협동조합을 설립하여 시각예술 전반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까닭에 자연적인 피사체를 주로 연구하고 지난 10년간 '푸른 나무'와 '숲'을 주제로 작업을 해왔다. 이는 사랑하는 나무를 무대 위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한, 나무를 숭배하는 마음을 표현하고자 하는 작업이다. 또한 푸른색이 주는 신비함과 더불어 유럽 라틴에서는 '푸른' 색이 고귀함을 상징하고, '푸른 피'는 귀족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푸른 나무' 시리즈는 나무를 고귀한 존재로 여기려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있는 것이다.

 
이홍렬 작가의 '푸른 나무 - 문막' (2014)
   
4년 전 사진평론을 위해서 이흥렬 작가의 '푸른 나무' 촬영을 탐색하러 간 적이 있다. 평론을 위한 탐색 과정이기도 했지만 사진 촬영의 보조적인 역할을 하면서 단순하고 금방 끝낼 수 있는 작업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촬영을 위해서는 해가 저물어야하고 어두워지면 피사체 자체가 검게 나오므로 라이팅 기법을 활용하게 되었다. 2명 정도의 조력자가 손전등을 활용해 그림을 그리듯 나무에 빛을 골고루 빠르게 비춰주어야 하고 그 속도는 일정해야 한다.
 
빛을 비추는 동안 그는 초점을 맞추고 10분 정도의 장 노출을 했다. 여기서 셔터가 열려있는 동안 모든 움직임은 각인되므로 절대 카메라 근처에서 움직여서는 안 된다. 당시 실수로 아주 사소하게 움직였다가 흔들린 사진으로 나왔다. 흔들린 사진으로 나올 경우 앞서 언급한 과정들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만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한 장의 사진이 나오게 된다.
 
인상 깊었던 작품은 강원도 문막의 천년 된 은행나무이다. 별이 가득한 밤, 차갑고 이국적인 배경이 타들어가는 고독과 적막감을 주지만 푸른 빛을 내 뿜으며 굳건히 서있는 천년의 나무는 압도적인 크기와 줄기에서 수없이 뻗어 나온 가지가 경이로움 마저 주고 있다. 문막의 은행나무처럼 천년을 살고 있는 나무도 있지만 죽거나 병들어가는 나무들도 있다.
 
지금의 이흥렬 작가는 사라져가는 보호수와 나무 군락지를 찾아 촬영하고 전시와 출판으로 그 나무들의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영원히 남기고자 한다. 그는 작업을 통해서 마음속 한그루씩 키우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유년시절 친구였던 나무와 함께 또 자연과 예술이 함께하는 "예술의 숲"을 꿈꾸며. 

<구본숙 미술평론가 (수성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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