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대한 경의와 글을 수용하고 경청하려는 겸손함
국가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작가들이 지녀야 할 덕목


『독서의 기술』에서, 헤르만 헤세는 독자들에게 책이 인생의 친구와 같은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내실 있고 정신적 성장에 필요한 독서의 원칙을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 이는 '글에 대한 경의, 글을 이해하고자 하는 인내, 글을 수용하고 경청하려는 겸손함'으로 정의 내린다.
남정현 교수
대부분 책이 모든 이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깊은 인연을 가지듯이, 나 또한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를 좋아한 아이였다. 이사와 전학을 많이 다녀 마음 나눌 친구가 별로 없었던 나는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야 했고 그때 마다 부모님이 사준 전집을 하나하나 읽곤 했다.

그리고 책 자체가 주는 느낌들을 너무나도 사랑했다. 사각형이 가져다주는 편안함 뿐 만 아니라 부피감과 무게감이 마치 들고만 있어도 삶의 각이 잡힐 듯한 충만함이 있었다. 또한 잉크와 섞인 종이의 특유의 냄새도 삶을 환기시켜주는 각성제와도 같았다.

내 인생에 가장 감명 깊은 최초의 책은 다름 아닌 『플랜더즈의 개』였다. 이 책은 초등학교 시절 피아노 학원 책장 속에서 우연히 꺼내든 것이었다. 피아노 선생님이 볼 일 보러 나간 사이에 피아노 다리 밑에 들어가 미친 듯이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어느새 눈알이 빨갛게 충혈이 된 채 읽었고 책장을 덮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닦았다. 그 날은 레슨도 받지 않고 그냥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집으로 오는 골목길에서 줄곧 주인공 내로와 파트라슈의 슬픈 죽음에 가슴 먹먹해했다.

누구나 그렇듯 글 읽기는 일상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헤세가 말한 '책은 인생의 친구'와 같음을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첫 번째 만난 친구는 대학원 시절 미국 출신의 영국 작가인 엘리엇(T. S. Eliot)이다. 그는 전통주의자로서 작가의 역할을 강조했다.

두 번째는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으로 그의 사상에 흠뻑 빠지며 존경하는 시인이 되었다. 민족의 지도자로서 광활한 영토와 자연에 걸맞은 관대한 정신을 지닌 국가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포함한 작가들이 지녀야 할 덕목에 대하여 피력했다.

작가란 아름답게 구성된 글을 쓰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 작가는 예언가이며, 선견자며, 음유시인이며, 선생이며, 도덕주의자여야 한다. 도덕주의자로서 작가는 더 나은 교훈을 가르치거나 정의를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와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의미에서 도덕주의자이다. 작가의 목표는 “핍박 받는자를 북돋아주고, 독재자를 두렵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또한 영적 지도자이다. 종교의 시대는 지나갔고 작가들이 목사의 역할을 대신 떠맡아야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신을 가장 완전한 인간으로 만들어야 하고 정신적으로나 유기적으로 표준의 원형이 되게 하여야 한다. '온 인류에게 위대한 작가들은 평정심을 지닌 인간으로 ... 다양성의 대변자이며, 열쇠이다'작가는 자기 국민의 대변자다.

그의 글은 한 개인의 목소리 뿐 만 아니라 그 나라의 목소리이다. “작가는 우리나라의 지형과 자연의 삶과 강과 호수를 구현시킨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우선 작가는 '증명할 수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과 신성함'을 보고, 전통의 관습적 허구를 버리고, '미래의 견고하고 아름다운 형태'를 만든다.

휘트먼이 생각한 이상적 시인이란 개인적 감정을 작품 속에 토로하는 존재이기보다는, 한 시대의 영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시인을 예언가로서의 역할, 영적인 지도자로서 역할, 정치적 대표자로서의 역할, 다양성의 대변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자로 정의 내리며, 미래의 국가를 영적인 정신으로 채우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 나라의 대지에 상응하는 국가 정신을 이룩하는 것과 그 속의 구성원이 건강한 육체와 영혼의 조화를 이룬 “견고하고 아름다운 형태”로 형성되기를 갈망한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시인으로서 “노예를 북돋아주고, 독재자를 두렵게 하는” 평등의 원칙 하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정치적 입장을 밝힌다.

작가를 흉내 내는 필자는 '핍박 받는자를 북돋아주고, 독재자를 두렵게 하는 글 쓰는 작가'로서, '평정심을 지닌 인간으로 그리고 다양성의 대변자'로서의 길을 가고 싶다. 그래서 '전통의 관습적 허구를 버리고, 미래의 견고하고 아름다운 형태'의 세상을 만드는데 작은 힘을 보태고 싶다. 어쩌면 이 현실성 없는 허황된 꿈을 꿀지라도 감히 한 번 용기 내어 새해에 마음을 잡아본다.

<남정현 숭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겸임교수>


울산 노익희 기자  noik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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