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이 정찰총국 요원? 사실상 북한군 ‘하부조직’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국제적 이슈로 떠오른 ‘김정남 암살 사건’의 주요 용의자가 말레이시아 현지 ‘고려항공’ 직원으로 밝혀지면서 ‘고려항공’이 주목받고 있다. ‘김욱일’로 알려진 이 직원은 마카오로 향하는 김정남의 탑승정보를 빼내고 범행 장소인 쿠알라룸푸르공항 제2청사 내 이동 동선을 체크하는 등 주도면밀하게 범행을 모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암살 직후 공작원들이 타고 달아날 항공편을 섭외하는 등 범행의 중요한 역할을 도맡았다. 암살 사건에 ‘고려항공’이 깊숙이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북한 유일의 항공사이자 국영항공사인 ‘고려항공’의 정체는 뭘까?
 
 
지난 5년간 국제사회에서 ‘최악의 항공사’로 알려진 ‘고려항공’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지난 2월 13일 벌어진 김정남 피살사건의 주요 용의자로 이 항공사의 직원인 ‘김욱일’이 연루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부터다.

말레이시아 경찰 당국이 지난 2월 22일 기자회견에서 “말레이시아에 체류 중인 고려항공 소속 직원인 김욱일이 김정남 암살에 가담했다”라고 밝히면서 ‘고려항공’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암살을 직접 실행한 동남아 여성들에게 지시한 북한 암살조가 자카르타와 두바이,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북한으로 이동하는 과정에 쿠알라룸푸르에서 처음 탑승한 항공기 역시 고려항공 소속 항공기였다.

더욱이 고려항공은 김정남의 암살과 관련해 말레이시아 경찰이 수사발표를 하자 곧 현지 사무실 명패를 떼는 등 수상한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현지 관계자들에 따르면 ‘고려항공’은 지난 2014년부터 말레이시아 취항이 사실상 중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사무실을 운영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해 봤을 때 ‘고려항공’이 김정남 암살사건과 모종의 관련이 크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유추해 볼 수 있다.

피살된 김정남의 첫째 부인이 ‘고려항공’의 사장 딸, 셋째 부인은 ‘고려항공’ 승무원 출신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김정남 피살에 왜 항공사인 ‘고려항공’이 관련됐을까?
 
암살 사건의 키 포인트?
 
북한 전문가들은 ‘고려항공’이 단순 항공사가 아니라 사실상 북한군의 ‘하부 조직’으로 이번 암살사건의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고 귀띔한다.

정찰총국 등 북한의 정보기관이 국외에서 활동하는 데 용이하도록 한 ‘위장기업’이라는 것. 이들 정보기관 요원들이 항공사 직원으로 위장해 각종 공작을 펼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판단한다.

이와 함께 ‘고려항공’은 군수물자 밀수나 김정은과 북한 고위인사들이 사용하는 외제 사치품을 들여오는 통로로 이용된다고 입을 모은다.

북한 관련 한 전문매체에 의하면, 2013년 북한 인민군 창건 기념 사열식에 ‘고려항공’ 소속 항공기가 동원됐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유엔도 지난 2014년 보고서를 통해 고려항공의 항공기와 승무원이 북한 공군 소속임을 언급하며 “고려항공과 북한군 사이의 경계는 매우 모호하다”고 밝혔다.

1950년 ‘소련-조선항공’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고려항공은, 한국전쟁 발발 후 취항이 잠정 중단됐다. 지난 1955년 ‘조선민항’이라는 이름으로 재 설립된 북한 유일의 항공사로 ‘고려항공’이라는 명칭은 1992년부터 사용됐다.

고려항공은 1958년 12월, 당시 소련과 의정서를 조인하고 평양과 모스크바를 취항하기 시작했고 이듬해인 1959년 12월에는 중국과도 취항협정을 체결했다.

1960년 들어서는 항공운수회사 운영권을 공군사령부(공군산하 민용항공국)로 이관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0년 8월, 북한 국적기로는 처음으로 남북 이산가족상봉단을 싣고 평양과 서울을 왕복해 화제를 뿌리기도 한 고려항공은 이후 남북한 간 교류협력 활성화에 따라 평양 순안공항과 김포공항을 수차례 운항한 사례도 있다.

인천아시안게임이 개최됐던 2014년 9월 당시에는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을 태우고 인천공항으로 들어와 우리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주로 러시아에서 제작한 항공기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고려항공은 항공기가 노후해 사고가 잦았고 취항 도시도 네 곳에 불과하는 등 항공사로서 국제 수준 미달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제적 제재로 ‘최악의 항공사’ 오명
 
현재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선양,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정기 국제선을 운항하고 있는 고려항공은 그동안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등 국가들에 의해 제재를 받아 왔다.

겉으로는 여객사업을 하는 항공사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해외 근로자 파견과 이들이 번 현금 운송, 무기 부품 운반 등 불법적인 범죄행위를 공공연히 저지르고 있다는 게 제재의 이유다. 심지어 핵무기 개발에도 연루되는 등 크고 작은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다.

더욱이 고려항공은 올해 초 북한의 혈맹국가인 중국으로부터도 제재를 받아 각종 의혹을 더하고 있다. 지난 1월 11일, 중국 민용항공국이 ‘외국 항공사의 항공편 정상 관리 규정’에 대한 진척 상황을 발표하면서 고려항공이 전혀 준비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올해 개선이 없으면 행정 처분을 하겠다고 통보했던 것.

고려항공은 지난해 7월, 선양에서 여객기 화재사고로 긴급 착륙해 제재를 받기도 하는 등 전반적으로 항공사 운영 부실을 드러내고 있었다.

또 영국 항공서비스 조사기관 ‘스카이트랙스(Skytrax)’가 5년 연속 1성급 항공사로 선정했을 정도로 안전도에서 극히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스카이트랙스’가 지정하는 세계 항공사 별점등급은 탑승객에게 지급되는 물품의 수준, 공항 및 기내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수준 등을 기준으로 1성급부터 최고점인 7성급까지 부여한다. 우리나라의 아시아나항공은 5성급, 대한항공은 4성급에 해당하며 가장 낮은 등급인 1성급은 조사대상 항공사 가운데 ‘고려항공’이 유일하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남 피살사건에 다시 연루되면서 ‘고려항공’은 ‘최악의 항공사’라는 오명을 당분간은 계속 이어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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