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계절의 봄은 왔지만, 정치의 봄은 오지 않았다. ‘5.9 조기 대선’이 문제다. 이번 대선은 불공정 시비와 정통성 시비에 이어 대선 후 불복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 부실 대선, 깜깜이 대선의 후유증이 벌써부터 걱정된다.

각 당의 대선후보 확정 일정이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순식간에 이뤄질 전망이다. 정의당은 이미 심상정 대표를 후보로 선출해 놨다. 바른정당은 이달 28일, 자유한국당은 31일, 국민의당은 4월 5일 각각 대선후보를 결정하고, 더민주당은 4월 3일이나 8일 중 결정될 예정이다.
 
벌써 정권을 잡은 것처럼 완장차고 점령군 행세를 하는 야권과 동조 언론은 헌정 사상 초유로 탄핵된 대통령에게 “왜 승복하지 않느냐”“구속 수사하라”며 모욕을 주고 있다. 대통령의 비극을 조롱하는 이들의 잔인한 성정도 문제지만, 급조된 대선은 더 큰 재앙이다. 이는 국회, 언론, 검찰 및 야당 특검, 헌재가 합작한 것이다.

헌재 재판관들이 만장일치로 대통령 탄핵을 인용할 거라면 굳이 재판기간(6개월)의 반만 쓴 판결로 졸속 재판이라는 비판을 자초할 필요가 없었다. 통상적으로 대선 후보 선출 후 선거일까지 5~6개월이 소요되는 정치일정을 고려, 국가원로들이 제시한 ‘4월 퇴진, 6월 대선’ 일정은 후보검증을 위한 최소한의 정치일정이었다. 헌재는 국민의 바른 대통령 선택권을 앗아갔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고, 언론도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상당수의 대선 후보들은 공약이나 정책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권인수위의 두 달 기간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무질서와 혼란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이 있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 꿰어 못쓰는 법, 서둘러 하는 일은 결과가 없는 법이다. 따라서 시간이 급박하다고 해서 후보검증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대선후보들의 미래비전과 자질, 국정운영 능력과 도덕성 등에 대한 검증은 기본이다.

시간상의 제약으로 국정 전반에 관한 공약이나 정책은 각 당에서 책임져야 하며, 대선후보들의 안보관과 경제관에 대해서는 송곳 검증, 현미경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 짧은 기간에 밀도 있는 검증을 해서 옥석을 가려야 한다. 후보토론회도 후보 간 무제한 끝장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학예회식 발표 토론회는 안 된다. 자질 경쟁이 구호 경쟁으로 변질되서도 안 된다. 국민을 속이는 깜깜이 선거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비상한 검증방법이 강구되어야 한다.

헌법 제69조(“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는 대통령의 취임 선서를 담고 있다. 선서 내용 가운데 첫 번째가 ‘헌법 준수’고 두 번째가 ‘국가 보위’의 국가안보 의무이다. 조선조 518년 동안 최고의 명재상으로는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서애 선생이 초미의 국난극복을 위해 자신이 속한 계급의 신분적 특권까지 모두 타파한 미래지향적 리더십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 요체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정읍 현감(종6품) 이순신을 7단계 위인 전라좌수사(정3품)로, 형조정랑 권율을 의주 목사로 천거한 ‘인재등용’의 리더십이다. 둘째, 납세자의 빈부 격차를 고려하지 않던 공납(貢納)의 폐단을 개혁, 작미법(作米法)을 실시한 ‘애민정신’의 리더십이다. 셋째, 정명가도(征明假道)에 반대해 일어난 임진왜란임을 명나라에 당당하게 설파하고 원군을 요청한 ‘실리외교’의 리더십이다. 마지막으로, 노비들이 군공(軍功)을 세우면 노비에서 해방시켜 벼슬을 주는 면천법(免賤法), 양반들에게도 군포를 걷는 호포법(戶布法), 양반 사대부들에게도 병역의 의무를 지게 하는 속오군(束伍軍)제도를 실시한 ‘제도혁신’의 리더십이다.

한반도 안보 상황은 일촉즉발의 위기다. 우리 안보를 위협하는 세력은 북한만이 아니다. 굴기하는 중국, 반(反)사드 공동전선을 펴고 있는 러시아, 재무장으로 가는 일본은 가상의 적이 될 수 있다. 약육강식의 춘추전국시대처럼 동북아 정세가 ‘강 대 강’으로 치닫고 있으며, ‘힘과 힘’이 부딪히고 있다.

미 행정부 일각에서 ‘한반도 전술핵 배치’ ‘대북 선제타격’ 등 초강경 옵션이 거론되고 있다. 그동안 안보 이슈를 거론하면 보수정권의 통치 수단이나 선거 시의 ‘빨갱이 덧씌우기’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이제 대한민국 생존의 길은 서애 선생의 ‘극난극복의 리더십’과 ‘안보’에서 찾아야 한다. 국가안보에는 타협이 없다. 국가안보를 남의 나라에 의존하는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마는 법이다.

최근 매일경제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우리나라의 안보 위기가 심각하다고 응답한 국민이 9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 시대의 요청은 정권교체가 아니다. 대한민국 안보를 지킬 수 있는 후보, 안보 불안감을 해소해 줄 수 있는 후보를 국민은 원한다. 좌파정권 10년 동안 현금지원의 햇볕정책 결과는 북핵(40여개 추정)과 소형화로 돌아왔다. 북한은 또 미·러에 이어 세계 3위의 화학무기(5000t) 보유국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대비하는 대선후보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들의 안보 공약은 믿음이 안 간다. 이번 대선에서 ‘인재등용, 애민정신, 실리외교, 제도혁신’의 미래지향적 리더십을 발휘하여 나라를 구했던 425년 전 서애 선생 같은 현자(賢者)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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