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자금으로부터 양측 다 자유롭지 못한 상황 인식“분당하면 모두 끝…당진로 조기 합의” 감대 형성 신·구주류간 분당의 갈림길에 선 민주당 신당논의가 막판 대타협 양상을 보이고 있어 어떤 결론이 내려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동안 신당을 둘러싸고 팽팽한 갈등관계를 보여왔던 신·구주류가 서로 한 발짝씩 양보한 채 대화와 타협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신·구주류 세력의 입장 변화에 대해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른바 ‘권노갑 효과 아니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현대비자금 수수의혹으로 사법처리된 권노갑 고문의 ‘총선자금 제공설’이 민주당내 신·구주류간 갈등을 봉합시키는 데 주효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권전고문의 총선자금으로부터 양측 모두가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분당만은 막아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끝”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분위기다.

실제로 권전고문 구속 직후 ‘권노갑 X파일’이 정치권 안팎을 휘감으면서, 신·구주류간 치열한 대립양상을 보였던 민주당내 분위기는 상당히 달라졌다. 무산될 것으로 보였던 임시전당대회도 조정대화기구를 통해 막판 대타협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특히 정치개혁을 기치로 신당창당을 주장하며 분당도 불사할 것 같은 입장을 보였던 신주류측은 권전고문의 사법처리 직후 그 정치력이 상당히 주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권전고문이 검찰에서 어떤 진술을 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권전고문이 지난 2000년 4·13총선자금을 지원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하게 잘 알려진 사실. 특히 수도권이나 부산 등 경합지역에 대한 자금 지원 규모가 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권전고문이 현대비자금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지원규모가 크거나, 정치적으로 껄끄러운 인사를 거론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민주당측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미 정치권 안팎에서는 권전고문으로부터 총선자금을 받은 의원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C의원, K의원, J의원 등 10여명에 달하는 의원들의 명단이 적힌 리스트가 나돌면서 민주당 소속 의원들을 바짝 긴장케 하고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총선자금 지원금액까지 적힌 리스트도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교동계의 맏형격인 권전고문의 사법처리에 대해 동교동계 주축의 구주류보다 신주류측이 더 긴장하는 모습이다. 이유는 권전고문의 총선자금이 호남권 위주의 구주류측 보다는 수도권 등 의원이 다수인 신주류측에 집중적으로 흘러 들어갔을 것이라는 관측이 흘러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권전고문의 구속이 오히려 신-구주류간 ‘화해’를 이끌어내는 효과를 냈다고 보는 분위기다.

민주당 한 핵심관계자는 “권전고문의 총선자금에 대해 민주당 소속의 어느 의원이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며 “권전고문의 구속이 몰고 올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양측 모두 이 문제에 대해선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신주류측 의원들이 대거 탈당을 해 신당을 만든다고 해도 신당효과가 권노갑 정치자금의 덫에 걸려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권전고문의 돈이 비자금이든 정치자금이든 상관없이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누구든 정치적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따라서 권전고문의 구속이 신주류의 ‘발목’을 잡게 됐고, 구주류와의 타협을 통해 분당만은 막자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권전고문 구속 이후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민 쪽은 구주류측이다. 그동안 신주류측의 어떠한 제안에도 확실한 대립각을 세운 구주류측이 먼저 손을 내민 것은 이번이 처음인 셈. 일각에서는 신주류측이 결국 따라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고 구주류측은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동안의 신당논의가 신주류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권전고문 구속 이후 무게중심은 오히려 구주류쪽으로 쏠리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물론 여기에는 신주류측이 추진하는 신당이 갈수록 명분을 잃고 있는데다가, 구심점으로 여겼던 노대통령의 지지도 하락도 상당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최근들어 구주류측 태도는 상당부분 달라졌다. 구주류측은 임시전당대회 의제로 `당 해체냐, 유지냐’를 묻자는 입장에서 `신설합당이냐, 흡수합당이냐’로 다소 후퇴한 모습을 보였다.

신주류측 좌장격인 김원기 고문도 당초 “통합신당이냐, 리모델링이냐”로 내부 합의된 의제 문제를 양보했다. 결국 분당의 갈림길에서 서로 한 발짝씩 양보하고 나선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 일각에서는 “분당위기로까지 치달았던 양측이 이만큼 의견을 좁힌 것은 처음”이라며 “타협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기대하고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신설합당이나 흡수합당에 대한 성격규정을 놓고 신·구주류측은 여전히 다른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신주류 강경파로 분류되는 천정배 의원등은 “신설이냐 아니냐를 묻는 것은 신당창당이 아닌 흡수합당을 전제로 한 대국민 기만”이라고 비난하면서 “흡수합당에 대한 성격규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타결가능성을 섣불리 단정짓기는 사실상 어렵다. 또 임시전당대회 개최여부도 아직은 불투명하다. 하지만 추석을 전후로 신당논의는 어떤 형태로든 종지부를 찍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조정대화기구를 통해 대타협을 모색한다면 그동안 지리하게 끌고 왔던 신당논의는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 안팎에서는 “어떻게해서든 분당만은 안된다”는 인식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만 보더라도 민주당이 분당하게 되면 내년 총선은 한나라당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라는 관측이 높게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다른 일각에서는 ‘분당후 총선전 전격 합당론’도 제기되고 있다. 일단 신주류 일부가 탈당해 외부 개혁세력과 연대해 당을 만들고, 총선직 전 전격적으로 합당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시킨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대부분 민주당 관계자들은 ‘당을 깨선 안된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권전고문 구속이후 급확산된 ‘분당불가론’. 결국 신당논의도 권전고문의 ‘X 파일’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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