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길 잃은 보수’의 종착지는 어디인가, 대통령 탄핵으로 결집된 보수지만 구심점을 아직 못 찾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중도하차하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마저 불출마 선언하면서 보수층은 ‘멘붕’ 상황이다. 일부는 민주당 안희정 충남지사에게 향했고 일부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경남지사에게로 갔다. 그러나 안 지사는 문재인을, 홍 지사는 대중적 지지율을 돌파해야 하는 숙제가 존재한다. 오히려 민주당과 범여권 후보가 결정되면 2위로 등극할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에게  보수표 쏠림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정치권에서 ‘적의 적은 동지다’는 통설처럼 보수진영  내 팽배한 반문재인 정서가 안철수 후보로 향하면서 문재인 후보와 양강 구도로 흘러갈 것이라는 분석이다. 보수 진영의 고육지책인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적의 적은 동지’ 보수진영 역선택 후 안철수 쏠림
- “좌파 정권 안 돼” 반문재인 정서 이이제이(以夷制夷)


더불어민주당이 3월22일부터 전국 250개 투표소에서 진행한 대선 후보 경선 ‘현장투표’결과 일부가 유출돼 논란이 일고 있다. 내용은 문재인 후보가 안희정, 이재명 후보를 압도적인 차이로 앞선다는 내용이다. 이에 안희정·이재명 캠프에서는 “문재인 캠프가 일부러 흘렸다”라고 의혹을 제기했지만 ‘문재인 대세론’을 방증한다는 점에서 대역전극은 사실상 힘들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높다.

민주당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로 결정된다면 대선판은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여야 대선 후보 지지율에서 1위는 문재인 2위가 안희정 3위가 안철수로 굳어지는 상황이다. 보수 진영은 자유한국당 홍준표 지사가 선전하고 있고 유승민 의원이 뒤를 쫓고 있지만 야권 후보 지지율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안희정 탈락, ‘보수층’ 안철수 쏠림현상

보수표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대선 레이스에서 중도 하차하면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총리로 이동했다. 하지만 황 대행마저 불출마 선언하면서 보수 표심은 사분오열돼 홍준표, 안희정, 안철수 후보로 분산됐다. 특히 민주당 안 지사의 지지율 상승은 과거 박근혜 지지층과 보수층에서 견인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안 지사의 지지율 상승이 반문재인 정서에 기댄 보수의 ‘역선택’이라는 점에서 민주당 경선에서는 힘을 발휘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안 지사가 문 전 대표에게 경선에서 패할 경우 보수 표는 재차 답답한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현재 보수를 표방하는 자유한국당 당 지지율은 10%에도 못 미치고 중도보수를 표방한 바른한국당은 5%도 안되는 열악한 상황이다. 두 정당 지지율을 합쳐도 15%가 안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수 유권자의 상당수는 ‘지지후보가 없다’, ‘모른다’가 40%대로 높은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반기문→황교안→홍준표로 보수 주력후보가 바뀌면서 경쟁력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는 점은 보수 진영의 아픈 대목이다.

이런 보수층의 ‘갈팡질팡 지지율’은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중앙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응답률 27.4%, 표본오차 ±2.2%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사위원회 참조)에서 민주당 문 후보가 경선에서 탈락할 경우 문 후보 지지층의 35.5%는 안희정 후보를 20.3%는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답했다.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답한 비율은 15.8%였다.

눈에 띄는 대목은 안희정 후보가 경선에서 탈락할 경우다. 안 후보 지지자의 24.3%가 안철수 후보에게 이동했다. 문 후보(24.1%)에게 옮겨가는 지지층보다 미세하지만 앞섰다. 이런 보수층의 오락가락 지지율은 대구·경북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문재인 후보 21.6%, 안희정 후보 21%로 보수의 심장이라는 영남에서 박빙의 접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경우 15.8%의 지지를 얻어 두 후보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이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12.9%,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5.8%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모른다’, ‘지지후보가 없다’는 응답층이 대구·경북에서 65.9% 달했고 무관심층이 50.7%로 보수층의 소외감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결국 ‘오락가락 지지’를 보이는 보수층에서 반문정서가 강하지만 구심점이 없어 ‘역선택’ 현상이 가중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 경선 선거인단이 200만 명에 달하고 과거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과 비교할 때 60%가 투표에 참여한 것을 가정하면 ‘보수의 역선택’이 성공하기는 힘들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결국 보수층의 일반여론조사에서 문 후보가 싫어서 안 후보를 지지했지만 민주당 경선에서는 문 후보의 당선가능성이 여론조사와 현장투표에서 높다는 게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이럴 경우 안 지사가 경선에서 탈락한다면 지지율은 앞서 나타났듯이 안철수 후보에게 급속히 쏠림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MBN과 매일경제의 공동 여론조사에서 비문 진영에서 대항마로 가장 적합한 인물은 안철수 후보로 홍준표 후보보다 크게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안 후보가 주장하는 ‘문재인 대 안철수’ 구도에 가까워지고 있는 셈이다.

안철수 후보는 국민의당 광주 북구갑을 당원 간담회에서 “정권교체는 확정됐다. 이번 대선은 저와 문재인 후보와의 대결이 될 것”이라며 “안철수와 문재인의 대결이 되면 국민들이 누가 더 좋은 정권교체인지 누가 더 개혁적인지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출하고 있다.

대선 최종 변수, 태극기세력 철수 선택

안 후보의 자신감 뒤에는 ‘태극기 세력’으로 대변되는 ‘갈 곳 없는’ 보수층의 지지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실제로 보수진영 내에서도 보수를 대변할 마땅한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이이제이’(以夷制夷, 오랑캐로써 오랑캐를 다스림)전략을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후보로 대표되는 좌파 정권이 들어서기보다 차라리 중도 보수 성향의 야권 후보인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자는 여론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흐름은 이미 민주당 경선에서 보수층 내 안희정 지지로 나타났고 문 후보가 민주당 후보가 된다면 본선에서 안철수 지지로 나타날 공산이 높다는 지적이다. 국민의당 한 관계자는 “민주당 본선 주자가 문재인 후보로 확정되면 황교안 대통령 권행의 불출마로 안희정 후보에게 이동한 보수층 표심이 안철수 후보에게 다시 이동해 2위를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며 “그럴 경우 안 후보가 자유한국당 주자까지 포함한 일대일 맞대결 구도를 만드는냐가 대선의 마지막 변수”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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