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 ‘TK 사수’마저 ‘뒷짐’지고 있던 까닭은?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친박계의 ‘부활’. 자유한국당의 현주소다. 논란이 많았던 자유한국당의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로 친박계 김재원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결정됐다. 인명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의 ‘무공천 고집’을 사실상 친박계가 꺾은 것이다. 임기 직후부터 삐꺽대던 인 위원장이 결국 친박계와의 파워게임에서 완전히 밀린 모양새다. 당권 장악을 위한 인 위원장의 ‘꼼수’가 친박계의 ‘부활’을 자초하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 탄핵 이후 한국당 지지율 급상승 왜? 朴에 ‘실망→동정심’
- 김재원 “헌재가 정치 논리에 휘둘린 것은 아닌지 우려”
 

자유한국당이 다음 달 12일 치러지는 재·보궐선거에서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 지역에 국회의원 후보를 내지 않겠다던 방침을 번복했다. 자유한국당은 22일 전통적 텃밭을 사수하기 위해 친박계 핵심 인사인 김재원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전격 공천했다. 박맹우 사무총장은 “여론조사 기관 두 곳을 선정해 당원 30%, 일반 주민 70% 비율로 여론 조사한 결과 김재원 후보로 결정됐다”라고 설명했다.
 
앞서 한국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이 지역에 후보를 내지 않기로 지난 13일 결정한 바 있다. 당 소속인 김종태 전 의원의 선거법 위반으로 재선거가 치러지는 만큼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는 취지였다.
 
친박계, 자유한국당 장악
 
그러나 일주일 만에 이 같은 결정은 번복됐다. 당내 친박계인 TK 지역 의원들의 반발 때문이었다. 무소속 후보자가 나설 경우 자칫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지도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자 정치권에는 인명진 비대위원장이 친박계와의 파워게임에서 완전히 밀렸다는 평가가 중론으로 자리매김했다. 인 위원장의 ‘무공천 고집’을 친박계가 꺾은 것은 친박계가 다시 당을 장악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사건이라는 것.
 
당내에서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한 친박계는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한 친박계 재선 의원은 “이제 대선 국면으로 접어든 만큼, 인 위원장의 역할은 끝났다. 비대위원장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인 위원장도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상주 무공천 번복 문제는 제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며 “무공천을 당에서 결정했지만 개인적으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친박계를 향한 칼끝을 거두지 않았다.
 
물론 그에겐 사퇴 의지도 전혀 없는 모습이다. 그는 지난 21일 기자간담회에서 “너무 일찍 퇴원하면 병이 재발할 수 있다”며 당분간 위원장직을 유지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면서 “이 당에서 당권을 잡을 생각도 없다”라고 사심이 없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치권 내에서 ‘당권 욕심 없다’는 인 위원장의 발언을 그대로 믿는 이들은 거의 없다. 인 위원장은 비대위원장에 취임한 직후부터 ‘인적 청산’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워 자유한국당의 ‘보수 공사’가 아닌 ‘전면 재건축’에만 몰두해 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인 위원장이 바른정당의 ‘X맨’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었다.
 
설상가상으로 ‘보수의 심장’인 TK 지역 사수마저 뒷전인 인 위원장의 ‘무공천 고집’은 자유한국당의 부활 나아가 보수의 부활은 관심이 없는 듯한 모습으로까지 비춰졌다.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자유한국당이다. 의석 하나가 소중하다. 그 의석이 TK 지역구라면 더욱 포기할 수 없는 게 당연함에도 인 위원장은 또다시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워 뒷짐만 지고 있었다는 지적이다.
 
印, '플랜 B' 가동?
 
상황이 이쯤 되자 일각에서는 친박계와의 힘 대결에서 패배한 인 위원장이 대선 이후엔 ‘플랜 B’를 가동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가 대선 이후 친박계가 자진해서 새누리당으로 당적을 옮기게끔 유도할 것이고, 이후 자유한국당 내에서 친박계라는 장애물이 사라지게 되면 바른정당과 당을 합친다는 계획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만약 김진태, 윤상현 의원을 비롯한 자유한국당 내 탄핵 반대 세력이 새누리당으로 당적을 옮기고 탄핵 찬성 세력들만이 남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합친다면, 새누리당은 의석수에서 자유한국당-바른정당에 크게 뒤처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보수 정당 주도권을 뺏기게 되는 것도 시간문제인 게 사실이다.
 
한편 4·12 상주·군위·의성·청송 국회의원 재선거 후보등록 첫날인 23일, 상주시선거관리위원회에는 자유한국당 김재원, 더불어민주당 김영태, 바른정당 김진욱, 무소속 박완철·배익기·류승구 후보 6명이 등록했다.
 
만약 선거일이 2017년 4월 12일이 아닌 2016년 4월 12일이라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누구나 ‘보수의 심장’ TK에서 자유한국당 의원의 당선을 확신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2017년이다. ‘최순실 게이트’ 후폭풍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은 고공행진 중이고 심지어 TK에서조차 자유한국당에 앞선다. 더민주 내에선 기세를 몰아 상주를 TK 확보의 교두보로 확보하자는 말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인용 판결 이후 급상승한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에 주목한다. 데일리안이 의뢰해 여론조사 기관 알앤써치가 무선 100% 방식으로 실시한 3월 넷째 주 정례조사에 따르면, TK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이후 한국당의 지지율은 전 주(13.8%) 대비 10.3% p 급상승한 24.1%를 기록했다. 이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이 탄핵 심판 이후 ‘동정심’과 ‘연민’으로 바뀌고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이를 잘 알고 있을 한국당 김재원 후보 역시 공약을 발표하면서 “대통령이 탄핵되기에 이른 것에 대해 대통령을 모셨던 한 사람으로서 비통한 심정”이라며 “헌법재판소가 정치 논리에 휘둘린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의 시각도 감출 수 없다”고 TK 지지층에 박 전 대통령에의 향수를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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