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중국, 잔학성 입증 일본군 문서 전격 공개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만행 저질렀지만 처벌 받지 않아

 
지난 2014년 1월 중국(中國) 당국은 세균 무기 개발을 위해 잔혹한 생체 실험을 자행한 것으로 악명 높은 일제 ‘731부대’의 만행을 입증하는 당시 일본군 문서들을 공개했다.

당시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지린(吉林)성 기록보관소는 지난 1950년대 창춘(長春)시의 공사 현장에서 발굴된 일본 관동군 문서 10만여건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최근 731부대와 관련된 문서들을 다수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들 731부대 관련 일본군 기록물은 1936년부터 1945년 5월 사이에 작성된 것들로, 81권의 책자와 400여건의 문서, 70여건의 시청각 자료다. 지린성 기록보관소는 일제 관동군이 패주하면서 미처 소각하지 못하고 땅속에 묻은 이들 문서를 분석한 결과 최소한 372명의 중국인, 조선인, 소련인 등이 731부대로 ‘특별이송’돼 생체 실험 등 세균 무기 개발의 도구로 쓰였다고 전했다.

731부대가 현재의 지린성 창춘시와 눙안(農安)현 일대에서 세균전 준비 활동을 벌였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 관동군 헌병대가 731부대에 수시로 ‘범죄자’들을 특별이송했다는 것이다.

관동군 헌병대가 1938년 1월 제정한 ‘특별이송에 관한 통첩’은 이송 대상자인 범죄자를 크게 간첩(파괴분자)과 사상범(민족해방운동가 및 공산주의운동가) 두 종류로 구분하고 있어 일제가 독립투사 등을 범죄자로 몰아 생체 실험 도구로 사용했음을 보여준다.

문서 중에는 28세의 조선인 이기수가 1941년 7월 20일 지린성 옌지(延吉)헌병특파대에 의해 체포돼 731부대로 특별이송 처리됐다는 기록도 있다. 지린성 기록보관소 관계자는 “특별이송은 일본군이 이용가치가 없는 범죄자를 731부대 등 세균전 부대에 넘겨 실험용으로 쓰게 한 것”이라며 “일본군 문서를 보면 이들 중 다수가 생체 해부를 당하는 등 세균 무기 개발에 희생됐다”고 말했다.

지린성 기록보관소는 이들 문서를 검토한 결과 일제 731부대 등 세균전 부대가 중국의 20개 이상 성(省)·시(市)에서 161차례의 세균 무기 공격을 감행해 237만 명을 감염시켰다고 전했다.

중국 중앙 기록보관소는 자료 분석 결과 일제 침략 당시 세균 무기에 의한 사망자가 27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한 바 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서는 일제 관동군이 주민에게 총동원령을 내려 실험용으로 사용할 쥐를 잡아들이게 했으며 구체적으로 2만 개의 쥐덫을 나눠줘 9만마리의 산 쥐를 거둬들였으며 쥐를 많이 잡아다 바친 주민을 포상했다는 내용도 있다.

중국 연구자들은 “이렇게 많은 산 쥐를 잡은 것은 쥐 박멸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페스트균을 연구·배양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일제의 대표적인 세균전 부대인 731부대의 정식 명칭은 ‘관동군 방역급수부’로, 1936년부터 1945년까지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에 주둔하며 생체 해부 실험과 냉동 실험 등을 자행했다.

중국 학계는 2차 대전 당시 731부대 등 일제 세균전 부대가 생체 실험으로 중국 군(軍)·민(民)은 물론 한국인, 몽골인, 미국인, 소련인 등 1만명 이상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이번에 발견된 문서에서는 중국 점령 일본군이 현지에서도 전몰장병을 위한 참배의식을 진행했다는 기록도 나왔다. 일본군 육군참모총장 우메즈 요시지로(梅津美治郞)가 서명한 ‘야스쿠니 신사 임시 대제 의식 보고’ 문서에는 1943년 4월 25일 창춘에 있는 ‘충령탑’(忠靈塔)에서 일본군 전사자들을 위한 참배의식을 한다고 기재돼 있으며 행사 복장과 무장, 대열 등 참배 세부 절차도 함께 적혀 있다.

731부대는 온갖 생체실험을 자행하고, 세균을 일부러 살포하거나 세균폭탄을 터뜨려 수 십 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류 역사상 가장 비인간적인 범죄 집단으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제국의 영토를 중국으로까지 넓힌다는 야망에 사로잡힌 일제는 가장 적은 물자와 병력으로 중국을 점령한다는 전략을 세웠으며, 의사 출신인 이시이 시로(石井四郞) 장군이 1932년 이를 실행하기 위한 세균전 부대인 731부대를 창설했다.

만주 하얼빈 근교 핑팡에 세워진 731부대는 ‘수질정화국’ 또는 ‘이시이부대’ 등으로 철저히 비밀에 부친 채 포로로 잡힌 중국인과 한국인, 러시아인 등을 상대로 각종 세균실험과 독가스 실험 등을 자행했다.

‘마루타(통나무)’로 불린 실험 대상자들은 산 채로 세균을 투입하는 세균실험이나, 혹독한 겨울에 발가벗겨진 채 실외에 방치되는 동상실험 등의 재료로 사용됐다. 각종 실험을 거친 마루타들은 마지막에 거의 다 생체해부 실험을 받고 소각장으로 보내져 불태워지는 말로를 맞았으며, 여름엔 산 사람을 냉동실에 넣어 동상실험을 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731부대는 부대원들이 외출하려면 모두 중국인으로 위장을 할 정도로 철저히 비밀에 부쳤고, 특별열차나 자동차로 ‘마루타’를 수송하는 과정에는 눈을 가리고, 도착 즉시 일본 군복을 입혔다.

일제는 이렇게 개발한 세균무기를 실전에 투입해 수많은 사람들은 죽였는데, 중국인으로 위장한 일본군들이 우물에 콜레라균을 타거나 세균을 섞은 음식물을 집 앞에 갖다놔 이를 먹고 숨진 사람들만 수십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일제는 2차대전 말기엔 이같은 세균전을 대폭 강화했으며, 세균폭탄을 마구 사용하기도 했다. 한 미국 전문가에 따르면 731부대의 생체실험과 세균전에 희생된 중국인과 한국인, 러시아인은 확인된 것만 58만 명이며, 전체로는 최소한 100만 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또 이 부대의 일에 관여한 일본인만 2만 명에 달한다는 게 이 전문가의 추산이다.

731부대는 이처럼 인류 역사상 유례 없는 만행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2차 대전 종전 당시 미국이 이 부대의 연구 결과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이시이 시로를 비롯한 관련자들을 처벌하지 않기로 해 진상규명과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일제는 패전 직전인 1945년 8월 이 부대의 핵심 시설과 자료, 자금 등은 모두 한국을 통해 빼돌리고 나머지 건물과 시설 등은 파괴시켰다.

부대원과 가족들은 기차와 항공기, 선박 등을 동원해 모두 미리 빼냈으나 다른 부대로 전근해 전쟁을 계속하던 일부 핵심 간부들은 러시아군에 포로로 붙잡혀 이중 12명이 1949년 12월 하바로프스크 전범재판에서 2∼25년형을 선고 받았다. 이들 역시 소련 측에 731부대 관련 자료와 기록을 넘기는 ‘사법거래’에 따라 비교적 가벼운 형(刑)을 받았다고 기록에 나와 있다.

이들은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강제노동을 하다 6년여 만인 1956년 모두 풀려나 일본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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