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 우리말인 얼굴이라는 단어는 영혼이라는 ‘얼’과 통로라는 ‘굴’이 합쳐진 결과이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얼굴은 ‘영혼의 통로’라는 뜻이다. 영혼의 통로는 이 푸른 별 지구의 모든 인류가 지나가고 싶어 하는 영원의 길이다. 이집트에게 영혼의 통로를 지나갈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이집트는 답을 했다. 지금 당신은 그 얼굴 앞에 서 있다고.

세상에서 가장 큰 수수께끼, 피라미드

 
4500여 년 전, 높이 147미터와 각 밑변의 길이 230미터 그리고 평균 2.5톤의 석회암과 화강암 230만 개로 쌓아올린 지구상 가장 위대한 건축물. 카이로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13km의 거리. 우리는 그저 이 정도만 알고 있으면 된다.
       그리고 피라미드를 세계 7대 불가사의에 포함시키는 것은 이 절정의 영험한 건축물에 대한 대단한 실례일지도 모른다는 것도. 이것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피라미드는 그 자체, 무엇과도 같은 선에 나란히 설 수 없는 오직 단 하나, 바로 그것이다.
       피라미드는 건축물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의 종교이며 높디높은 하늘이고 광활한 우주임과 동시에 우러러보고 믿으며 의지하는 전지전능한 당신이다. 지구상에 이런 건축물은 없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물론 그래서도 안 된다.
       불가능과 기적 그리고 완벽한 실제와 영원한 환상의 집합체, 피라미드. 피라미드를 바로 앞에서 본다는 것. 이제 당신은 진짜 영혼의 통로 앞에 서 있는 것. 이집트의 모든 파라오들은 이곳에서 잠들고 영생의 삶을 얻은 후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됐다.

불멸, 스핑크스에 새겨진 이름

어떤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모자란 역사상 가장 아름다우며 오래된 듀엣. 스핑크스는 기자 피라미드 세개 중 가운데에 위치한 카프레왕의 피라미드 남쪽 방향에 위치하고 있다. 이 절대적인 권력이자 상징인 피라미드 앞에 스스로 영원히 머물기를 바랐던 것일까, 스핑크스는 피라 미드 앞에서 70m의 길이와 높이 20m의 모습으로 스스로 박제가 돼버린 채 오랜 세월을 기꺼이 피라미드와 함께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의 상상의 동물로 사람의 머리와 사자의 몸을 가지고 있으며 왕의 절대 권력을 상징한다는 스핑크스의 모습은 단순히 몇 가지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표정을 지니고 있다. 현세의 모나리자가 그토록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지닌다면 스핑크스의 얼굴은 모나리자가 표현해 내고 있는 그림 속 눈동자와 수많은 물감으로 덧칠된 색깔 등의 부수적인 재료 없이도 이토록 충분히 오묘한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무수한 풍화에 깎인 얼굴은 정확하게 가늠되지 않을 정도로 본 모습을 잃어가고 있으나 오랜 시간동안 그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 얼굴은 극도로 무표정하되, 자신의 허락 없이는 피라미드에 더 이상 가까이 갈 수 없다는 엄숙한 결의마저 풍긴다.

언젠가 피라미드 속에 잠들고 있는 파라오가 부활해 세상에 나타난다면 그제야 자신은 조용히 뒤로 물러날 뿐이라고 스핑크스는 굳게 다문 입술로 이야기한다. 영원히 남아 사라지지 않을 스핑크스. 불멸이란 이런 것이다.

최초의 피라미드, 사카라

사카라 피라미드는 기자 피라미드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 정도를 달려, 한편에는 허허한 사막 벌판과 그 반대편엔 무성한 야자수로 숲을 이룬 오아시스 사이에 나타난다.
     사카라 피라미드가 위치한 이곳은 고대 이집트의 수도였던 멤피스의 정서 방향에 위치해 오랫동안 왕가와 귀족들의 장례를 집행했던 도시. 이 장구한 역사의 이집트에서, 그토록 장대한 크기의 기자 피라미드를 제치고 이집트 최초라는 타이틀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우선 입구를 통과해 굵은 열주들이 늘어서 있는 회랑을 통과하면 사카라 피라미드 부지에 들어선다.
     반듯하고 세련되며 엄정한 사선으로 곧게 내려오는 기자의 피라미드와는 달리 사카라의 피라미드는 계단형으로 현재 이집트 전역에 남아 있는 크고 작은 80여 개의 피라미드 중 가장 독특한 형태와 외관을 지녔다고 평가받는다.
     6층 높이인 사카라는 기자의 피라미드보다 이른 시기인 기원전 2660년경에 지어졌으며 높이 62m에 밑변은 123m와 109m. 물론 이 피라미드의 지하에도 많은 비밀이 숨겨진 채 공개 되지 않고 있으며 아직 수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 신비감은 어느 곳들과 다르지 않다. 발굴과 보수 공사를 동시에 하는 까닭에 피라미드의 모습은 공사 재료들이 감싸고 있지만 그래도 본 형태는 짐작될 만큼 유지돼 있어 충분히 독특한 모습을 담을 수 있는 사카라 피라미드.
     영화 등을 통해서 익숙해진 이름인 이모텝이 바로 이 사카라의 최초 설계자이자 최종 검수자였다. 주변에 허물어진 10개 정도의 다른 피라미드들이 산재해 있어 현 시대의 말로 바꾼다면 ‘피라미드 파크’로 불러도 좋을 곳. 이곳은 세상 모든 피라미드들의 가장 깊은 뿌리이자 그래서 모든 이집트 피라미드들의 가장 오래된 요람이다.

빛과 소리의 쇼, 피라미드 야경

어둠이 내린 가운데 차 소리도 잦아들고 사방이 온통 고요해진 밤에 다시 피라미드를 찾았다. 어쩔 수 없이 마치 피라미드에서부터 거대한 끌림이 작용하는 듯 사람들의 동선은 밤의 피라미드로 향한다. 빛과 소리의 쇼라고 불리는 피라미드의 야간 공연. 사람들은 낮 시간에 피라미드에서 보았던 인파에서 10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북적이지 않는 곳에서 피라미드를 감상한다는 것. 세팅은 완벽해졌다.

8시, 쇼가 시작되고 이후 약 30분. 멀리 세 개의 피라미드가 스핑크스를 앞에 두고 갖가지 화려한 색의 조명을 받은 채 음악을 덧붙이고 또 이야기를 칠해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나일강의 물은 풍요롭게 넘쳤다가 다시 말랐고 사막에는 가녀린 초승달이 떴다 구름 속으로 다시 잠겼다.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문 채 깊고 깊은 오랜 역사와 아주 멀리에서 온 신화 속으로 빠져 들었다. 사막의 밤 추위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광막하고 아득하며 정말이지 차원이 다른 우주에 다녀온 것 같은 시간. 어둠을 배경으로 오롯이 세 개의 피라미드가 솟아올라 벌이는 피라미드 연대기. 쇼를 마치고 돌아가던 사람들의 알 수 없는 쓸쓸한 뒷모습은 그들이 어떤 정점을 보고 갔기 때문일 것.

피라미드를 낮에만 본 사람은 분명 인생에서 하나의 실수 또는 후회를 할 것이다. 또 다른 피라미드 하나를 완전히 놓치고 가는 것이니 말이다. 피라미드 2부작 중 마지막 편을 못 본 셈. 그것은 피라미드에 대한 감상의 완성이 아니다.
 
카이로를 지켜온 심장, 시타델

카이로를 수식하는 표현은 많다. 아랍어로는 ‘승리의 도시‘라고 불리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크고 또 가장 오래된 도시라는 이름도 있다. ‘천 개의 미나렛-첨탑을 가진 도시’라고도 불릴 정 도로 크고 작은 모스크가 산재해 있는 카이로는 수백 년간 다양한 이름을 얻으며 발전해 이집트를 넘어 항상 이슬람의 리더 역할을 해왔다.
   카이로에 들어온 이상 바로 이곳을 스쳐 지나갈 수는 없는 것. 그것이 카이로 남동쪽의 무카탐 언덕에 세워진 시타델에서 카이로를 바라보면 느낄 수 있는 단순하고 당연한 결과다. 시타델은 1176년부터 1238년에 걸쳐 건설된 요새로 십자군 전쟁으로부터 이집트를 지키기 위한 용도로 세워졌다.

1860년대에 카이로 중심부에 위치한 압딘 궁전으로 정부가 이전되기까지 오랫동안 이집트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시타델은 30미터 높이의 견고한 외부 성벽으로 오랫동안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시타델의 정문인 아자브 게이트를 통해 들어서면 먼저 알 나세르 모하메드 이븐 콸라운 모스크가 보인다.
   14세기 초 당시 술탄이었던 알 나세르가 그들의 금요 예배를 위해 특별히 지은 이 모스크는 단순하고 가지런하게 도열해 있는 기둥들로 모스크를 곧고 바른 공간으로 만든다.

카이로에 있는 모든 모스크들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 중 하나로 손꼽히는 모하메드 알리 모스크는 시타델을 찾는 가장 중요한 이유. 카이로 시내 어디에서도 보인다는 모하메드 알리 모스크는 비교적 현세인 19세기 초에 세워졌다.
   모스크를 표현하고 있는 뾰족하게 높이 솟은 2개의 연필 모양은 이집트에서도 이곳 외에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로 이집트 화폐 20파운드에 도안이 될 정도로 이집트를 대표하는 중요한 건축물이다. 모하메드 알리 모스크는 성벽을 따라 다시 언덕의 꼭대기로 올라가면 정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복장 규제는 크기에 관계없이 모스크를 방문할 때는 당연한 절차. 신발은 벗어야 한다.

전체적인 모습은 19세기에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를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내부는 곳곳에 켜진 샹들리에 전등과 바닥에 깔린 붉은색의 카펫과 조화를 이루어 웅장하고 경건하다. 이슬람 특유의 화려한 색감과 계속해서 이어지는 돔 천장은 확실히 아야 소피아를 연상시킨다. 이 방대한 공간을 고작 몇 개의 기둥으로 떠받치고 있다는 것이 우선 믿기지 않는다.
   알 나세르 모스크와는 달리 알리 모스크에서 사람들은 좀 더 자유로운 모습이다. 기도를 드리는 사람과 가족들과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그리고 다른 모스크와는 달리 자유롭게 사진도 찍을 수 있는 이곳. 아마 당시 카이로의 왕이었던 알리가 그렇게 지시했을 것이다.
   모스크에서 나오면 카이로 시내가 사방으로 펼쳐지고 앞에는 카이로에 있는 이슬람 사원 중 가장 아름답다는 술탄 하산 모 스크와 사막 도시인 카이로에 초록의 공기를 불어넣는 아즈하르 공원도 보인다. 이곳에서 카이로 전체를 호령했을 알리와 더 옛날 카이로를 담았던 이븐 바투타가 동시에 스치며 그들도 똑같이 느꼈을 이런 생각이 미친다. 카이로는 위대하다고.

카이로 시네마, 카이로 타워

카이로 타워는 나일강이 흐르는 강 가운데 있는 게지라섬에 위치하고 있다. 타흐리르 광장에서 도보로 15분. 187m의 높이로 타워로는 세계에서 4번째로 높으며 기자의 피라미드보다 45m나 더 위에 있어 카이로 시내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로 여겨진다.
  카이로 시내 어디에서도 보일 만큼 웅장하고 높이 솟은 타워는 마치 모든 것이 평평한 사막에 홀로 솟아나 대지를 비추는 등대처럼도 보인다. 관광명소라기보다는 거대한 상징에 가깝고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작품이라고 칭해도 좋을 만한 카이로 타워. 1956년에 착공해 1961년 완성했으므로 55년이 넘은 건물이다.
  외관은 연꽃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특유의 아랍식 패턴으로 형상화됐으며 심플하지만 무척 현대적인 모습이다. 카이로의 아름다운 어둠을 보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이 척박하고도 마른 사막의 땅에서 수천 년을 질기게 살아온 위대한 도시 카이로의 모습을 한눈에 보기 위해서는 카이로의 매연이 어느 정도 걷힌 해가 질 무렵이 적당하다. 정상까지는 초고속 엘리베이터가 안내를 해주고 외부로 나있는 전망대 정상에 오르면 드디어 카이로의 맨 꼭대기에 서 있는 셈. 거친 바람이 불어오지만 분명 이 바람은 사막의 어느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일 것이기에 결코 마다하지 않는다.
  해가 진 후 카이로의 어둠은 시내 곳곳에서 켜진 점점의 불빛들을 안고 찬란하게 등장해 한순간에 모든 사람들을 이 카이로 시네마에 몰입시킨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오고 그 소리들이 바람 소리와 섞여 하나의 심포니로 이어지면 드디어 이 영화는 종반부. 멀리 보이는 수억 개의 카이로 불빛들이 반딧불이처럼 춤을 추고 이제 카이로가 더 깊은 시간 속으로 잠기려 할 때. 엔딩크레딧이 뜨며 하루를 닫고, 카이로의 밤은 드디어 시작된다.

지중해와 홍해 그 사이 수에즈

수에즈는 무엇보다 홍해 바다를 볼 수 있고 대규모 운하인 수에즈 운하와 인접하며 척박하고 황량한 북아프리카의 사막지대를 지날 수 있어 카이로에서 한나절 코스로 적당한 곳이다. 수에즈는 이집트에서 여섯째 큰 도시로 카이로의 작은 버전처럼 카이로를 축소해 놓은 느낌을 준다.
 홍해는 수에즈를 기점으로 수에즈 운하와 연결되고 지중해로 이어진다. 붉은 빛을 띠어서 불리는 이름 홍해. 홍해는 아프리카와 아랍 국가들에서는 따로 이 바다로 흐르는 강이 없기에 온전히 바닷물로만 이루어져 있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염도를 지닌 바다로도 알려져 있다. 홍해는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시나이 반도를 중심으로 지중해 방향의 수에즈 만과 아랍땅으로 향하는 아카바만으로 다시 나뉜다.

수에즈에서 시작되는 운하 물길 192킬로미터를 따라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이 손을 잡았고 또 유럽 대륙으로 연결되어 온 것이다. 막상 마주한 홍해는 분명 이집트의 모래가 섞여 바다가 붉은 색을 띨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완전히 반대의 풍경을 펼쳐 주었다. 쏟아지는 햇빛에 반사된 홍해는 때때로 은빛이거나 가끔 금빛처럼도 보였고 지중해보다 더 파랬다.
 이 반짝이며 빛나는 착시를 마음껏 펼쳐준 홍해. 이집트가 지니고 있는 두 아들이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라면 홍해와 지중해는 이집트의 두 공주님. 이집트는 이로써 모든 것을 다 가진 셈이다.

<사진=여행매거진 GO-O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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