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 출소 김경준 ‘꼭 밝히겠다’…다음은 MB 차례?

<정대웅 기자>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BBK 주가 조작 사건’으로 징역형과 벌금형 노역을 만료한 김경준 씨가 출소 하루 만에 미국으로 출국했다.

김 씨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40분 인천 발 미국 로스앤젤레스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인천공항 출국장으로 몰려든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았다.

김 씨는 200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을 투자자문사 BBK의 실소유주라고 주장했다. 김 씨는 이 회사의 대표였다.

주가를 조작해 회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2009년 징역 8년, 벌금 100억 원을 선고받았다.

출소 전 김 씨를 만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BBK 사건에 개입한 증거가 있다. 정권 교체 후 한국에 올 수 있도록 법적 조치를 해달라”며 진상 규명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피력했다.

이에 ‘BBK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검찰의 칼날이 겨눠지는 게 아니냐는 예상도 제기된다.

“정권이 교체돼 진상이 밝혀졌으면 좋겠다”
이 전 대통령 무혐의 처분, 재수사 가능성?

BBK사건부터 알아보자. 김 씨는 미국 명문 코넬대, 시카고대 석사, 펜실베니아 워튼 경영대학원을 나온 수재였다.

1999년 4월 투자자문회사 BBK를 설립한 김 씨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동업해 인터넷 증권회사 LKe뱅크를 설립하고 공동대표를 맡았다.

김 씨는 2001년 7월에서 10월 사이 옵셔널벤처스코리아를 인수한 후 319억 원대 회사 자금을 횡령해 미국으로 도피했다. 이때 인수에 BBK자금이 들어갔는데 김 씨는 2007년 11월 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돌연 입국해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BBK의 실소유주이며 주가 조작에 관여했다고 폭로했다.

또 이 전 대통령이 속했던 한나라당에서 대선 후보를 가리던 2007년 6월, 경쟁자였던 박근혜 후보 측이 “BBK의 실소유주는 이명박 후보”라고 주장하면서 대선을 치르던 내내 논란이 됐었다. 박 후보 측은 “이 후보의 형인 이상은 등 친인척이 자동차 부품기업 (주)다스를 소유하고 있지만 실질적 소유는 이 후보이며 다스가 소유한 서울 강남구 도곡동 부지도 이 후보의 차명 계좌”라고 주장해 파장을 일으켰다.

그러나 검찰은 BBK 주가조작은 김 씨의 단독 범행이라고 결론 냈다. 같은 해 12월 한나라당의 요청으로 이뤄진 특검도 같은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 전 대통령이 BBK 실소유주라는 김 씨의 주장은 모두 조작됐다는 거였다.

결국 김 씨는 2009년 옵셔널캐피탈의 자금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8년에 벌금 100억 원 형이 확정됐다. 그는 2015년 11월 8년 형기를 채웠지만 벌금을 내지 않아 노역장에 유치되면서 지난달 28일 만기 출소했다. 이 과정에서 노역 기간이 3년 이내로 제한되는 바람에 일당 2000만 원의 황제노역을 하고 있어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그는 “벌금형에 대한 시효가 완성돼 석방 신청을 했으나 천안교도소가 이를 거부했다”며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형법은 벌금형이 확정된 뒤 그 집행을 받지 않고 3년이 지나면 시효가 완성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은 복역 기간이 지난 김 씨에 대해 그동안 3년마다 노역장에 일시적으로 유치시켜 벌금형 시효를 살려왔다. 복역 도중 벌금형 시효가 끝나버릴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서다. 재판부는 “처분에 대한 하자가 중대하거나 명백하다고 볼 수 없다”며 기각 이유를 밝혔다.

김 씨는 지난해에도 “검찰이 벌금형 시효 연장을 위해 3년에 한 번씩 나를 노역장에 보내는 건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지만 법원에서 각하됐다.

일당 2000만 원 황제노역 뒷말도

김 씨는 결국 형량을 모두 채우고 출소했다. 1966년생인 김 씨는 지금 51세다.
김 씨는 미국 국적자다.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외국인을 강제 추방하는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청주교도소 외국인보호소로 옮겨져 심사를 받고 29일 미국으로 떠났다.

앞서 김 씨는 28일 청주 외국인 보호소로 옮겨져 강제 퇴거 심사를 받았다. 김 씨를 접견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 씨가 이 전 대통령의 주가 조작 사실을 유죄로 판단할 여러 근거가 있다고 했다”며 “향후 언론 인터뷰에 응하는 등 진상 규명에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이 전 대통령은 2008년 ‘BBK 특검’ 수사를 거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이 BBK 실소유주’라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며 이 전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이 됐다. 모든 혐의를 부인했지만 실소유주라는 정황이 만천하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일례로 이 전 대통령의 BBK명함이 공개됐고 일간지 기사에서는 이 전 대통령이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BBK대표임을 밝히기도 했다. 당시 기사 제목은 ‘이뱅크 증권 중개 대표로 복귀한 이명박 전 의원’이다.

김 씨는 자신의 회고록 ‘BBK의 배신’을 통해 이명박 전 대통령과 권력기관의 음모를 폭로하기도 했다. 책은 ‘BBK의 실체’, ‘BBK의 소유권’, ‘금융당국을 속인 MB’, ‘한국 강제입국의 날’, ‘BBK 가짜편지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다’, ‘회유, 협박, 협상과 검찰의 배신’ 등으로 구성했다.

김경준, ‘BBK 2라운드’ 예고

김 씨가 8년 만에 미국으로 돌아감에 따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주가 조작 연루 의혹이 다시 세간의 관심을 끌 가능성도 점쳐진다. 일각에선 검찰의 다음 수사 대상이 이 전 대통령이 되는 것 아니냐는 예측도 제기된다.

김 씨는 출국장에서 출소 소감을 묻자 “적폐 청산은 이뤄져야 하고, 여기에는 MB 정부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김 씨는 “내가 이미 한국에서 추가로 소송을 제기해서 이긴 것도 많다. 누구나 BBK와 관련해서는 마치 내가 잘못한 것 같이 얘기했지만, 실제로 그것은 한나라당이 잘못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씨의 발언은 2007년 대선 직전 자신의 한국 송환을 둘러싼 기획 입국 의혹과 이후 검찰 수사결과 등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김 씨는 이어 “그걸로 이명박 정부가 혜택을 받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씨는 지난해 의뢰인 정보를 공개한 변호인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일부 승소했고 이른바 ‘BBK 가짜편지’ 사건과 관련한 민사 소송에서도 일부 승소한 바 있다.

김 씨는 공항 출국장을 나서면서 ‘BBK 사건에 MB(이명박 전 대통령)가 관련된 결정적 증거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지금 상태에서 얘기하긴 그렇지만 진실을 밝히겠다. 지금 굉장히 피곤하다”라고만 답했다.

김 씨의 출소 소식을 접한 한 누리꾼 ze***은 “시킨 사람은 따로 있는데 김경준이 혼자 다 뒤집어쓰고 감옥에서 10년 고생했네”라며 배후를 밝힐 것을 촉구했다.

또 다른 누리꾼 김칠**은 “당신이 무조건 잘 했다는 것도 아니지만(중략)이제부터라도 이 전대통령의 비리와 실체를 낱낱이 밝혀 주시오. 모든 건 당신한테 달려 있소”라며 이 전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는 글도 있었다.

한편 김경준 씨가 자신의 주장대로 결정적 증거를 내놓고 검찰 재수사가 시작돼 이 전 대통령이 조사 대상이 될 경우 검찰 조사를 받게 되면 대통령 퇴임 후 검찰수사라는 또 한번의 오명을 쓰게 된다.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 구속까지 간다면 박근혜,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구속되는 4번째 전직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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