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 작전 방불 “말하지 말고 고개만 끄덕여”

.<뉴시스>
LG G6 20만 원대, 삼성 갤럭시S7 5만 원대
방통위 수뇌부 부재, 장기간 업무 공백 예상


[일요서울 | 남동희 기자] 최근 휴대폰 시장에서 불법 보조금 지원이 기승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현행법에 따르면 정부에서 정한 단말기 보조금 상한선은 33만 원. 제보에 따르면 시중에 이 두 배가 넘는 보조금 지원이 자행되고 있으며 판매자들은 마치 첩보행위를 방불케 하는 방식으로 휴대폰을 판매하고 있었다. 일요서울이 현장을 찾아가 실상을 파악하고 원인을 살펴봤다.

지난달 28일 오후 3시 서울 구로구 소재 휴대폰 판매점들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법 개정으로 잠잠했던 불법 보조금 지급이 만연한다는 제보를 받아서다.

인근 한 이동통신사 정식 대리점 관계자는 취재 전 기자에게 그곳 판매자들의 경계가 심해 취재가 쉽지 않을 것이라 일러줬다. 몇몇 점포가 불법보조금이 기승한다는 기사 보도로 영업정지를 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또 이 관계자는 불법보조금 지급 행위를 신고하는 이들이 있어, 판매자들이 금액을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고 귀띔해 줬다. 그래서인지 신도림 테크노마트 내 매장의 휴대폰 판매자들은 모두 계산기, 태블릿PC 등을 놓고 고객들과 상담하고 있었다.

한 휴대폰 판매자는 최신 휴대폰의 가격을 묻자 한참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더니 휴대폰 구매 이유를 물었다. 휴대폰의 잔 고장 때문이라고 하자 이 판매자는 사용 중인 휴대폰을 보여 달라는 등 몇 가지 사실을 검증한 뒤 최신 휴대폰들을 보여줬다.

판매자가 제시한 LG G6의 가격은 29만 원이었다. 조건은 통신사 이동과 지정 요금제 사용 등이었다. 지난달 10일 LG전자가 출시한 G6의 출고가는 89만9800원. 불법 보조금 지원으로 출시 한 달도 안 된 휴대폰을 60만 원가량 싸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이 판매자는 가격을 제시하자마자 원하는 가격이면 고개만 끄덕이고 아니면 바로 다른 곳으로 가라고 말했다.

계산기 사용, 가격 발설 금지

또 다른 곳의 한 판매자는 G6를 20만 원도 안 되는 가격을 제시했다. 이 관계자가 제시한 금액에 따르면 무려 70만 원 가까이를 싸게 사는 셈.

대신 이 판매자는 통신사 이동 외 2년 뒤 이 가게에서 휴대폰을 바꾼다는 조건을 덧붙였다. 그는 가격을 말해주는 내내 계산기를 사용하며, 소비자도 그 금액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하게 했다.

이 밖에 두어 곳을 다니며 휴대폰 가격을 알아본 결과, G6는 평균 20만 원, 삼성전자의 갤럭시S7은 5만 원에 구매가 가능했다.

일부 매장은 예외적으로 이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이 또한 방송통신위원회가 정한 보조금 상한선 33만 원을 훌쩍 넘는 가격이었다.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제3조에 따르면 이동통신사업자, 대리점 또는 판매점은 요금제, 번호이동, 기기변경 등으로 부당하게 차별적인 지원금을 지급해선 안 된다.

또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르면 이동통신사업자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정한 상한액(33만 원)을 초과한 지원금을 지급해서는 안 된다, 다만, 출시된 지 15개월이 경과한 이동통신단말장치는 제외한다.

이 법령 시행으로 시장에서 불법 보조금 지원이 한 동안 잠잠해졌으나 최근 다시 기승하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각 통신사들이 올해 1분기 마감 직전 실적을 올리기 위해 평소보다 두 배가 넘는 리베이트를 줬기 때문이다.

지난달 24일 한 언론사의 보도에 공개된 A 이동통신사의 리베이트 단가표에 따르면, 갤럭시S7는 번호 이동 조건으로 5만 원대 요금제의 경우 60만 원, 6만 원대 요금제에선 62만 원, 7만 원대 요금제에선 65만 원의 리베이트가 각각 책정됐다. G6의 경우 갤럭시S7보다 2만 원씩 리베이트가 더 높았다.

이는 번호 이동과 통신사 변경 수치에 바로 반영됐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이동통신 3사의 번호 이동 건수는 2만3927건. 지난 1월 2일 2만4733건 이후 두 번째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방송통신위원회는 시장 과열 기준으로 삼는 2만4000건에 육박하는 수치다.

각 통신사별 가입자 수 증감은 같은 날 SK텔레콤이 388명, LG유플러스가 450명 줄어든 반면 KT는 838명 증가했다.

출시 앞둔 S8, 영향 있을 듯

업계 관계자들은 오는 21일 출시를 앞두고 있는 삼성전자의 갤럭시S8 등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 단언했다. 수뇌부 교체로 방송통신위원회의 장기간 업무 공백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3인 김재홍 부위원장과 이기주 위원, 김석진 위원 등은 지난달 26일 임기가 만료됐다.

그중 김석진 위원만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연임 결정으로 남아있는 상태다. 오는 7일에는 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임기도 종료된다. 업계는 대통령 몫인 위원장 선출이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놨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시장 과열 현상을 감지하고 있다”며 “상황을 좀 더 지켜보다 실태 점검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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