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이런 놈의 나라가 다 있습니까? 세상에 급조된 ‘촛불민심’으로 대통령을 쫓아내고, 도주의 염려나 증거인멸의 위험도 없는 사실상 연금 상태의 전 대통령을 구속하는 나라가 어디 있나요?” 희끗희끗한 머리에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꽤나 꿰뚫고 있어 보이는 택시기사의 분노는 이렇게 시작됐다. 택시를 타보면 밑바닥 민심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서민직업이기도 하거니와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실어 나르면서 그들로부터 듣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날 만난 택시기사는 이른바 ‘촛불민심’의 주도세력으로 박근혜 정부와 유난히도 각을 세워온 민노총을 지목했다. 임기 시작부터 박 전 대통령을 반대한 민노총은 한상균 전 위원장의 구속을 계기로 박 전 대통령을 더욱 압박할 만한 수단을 찾고 있다가 최순실 파문이 발생하자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해보였다는 것이다. 택시기사는 “어차피 반대 세력이 주도한 집회인데 이것이 어떻게 전 국민의 민심이 될 수 있느냐”면서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과정에 관한 얘기로 당시 ‘비박계’ 의원들은 최소한의 사람 도리조차 저버렸다며 촛불-국회-헌재가 삼위일체가 되어 꼭 짜고 치는 고스톱 같았다고 조소했다.
또 당장 돌아갈 곳이 준비되지 않아 청와대에 잠시 머물고 있는 대통령에게 정치권이 ‘고발’ 운운한 것에 대해 “사정이 있어 집세를 제때에 내지 않아도 한두 달 정도는 기다려주는 게 인지상정이거늘 우리나라 사람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정 없는 민족이 되었느냐”고 한탄했다.
전 대통령을 구속한 검찰에 대해서도 “아무리 정치검찰이라 하지만 이럴 수는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또 해체된 종북세력이 주장하는 ‘이석기 석방’과 한반도 사드 배치 반대 주장이 촛불집회에서 나오고 있지 않느냐면서 “조만간 이 나라가 좌파 세상이 될 것”이라며 자괴감을 쏟아냈다. 매일같이 등장하는 여론조사 결과란 것도 객관성이나 조사방식이 미심쩍어서 공정성이 많이 의심된다는 속내를 나타냈다.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 얘기에는 “도무지 마음에 드는 후보가 하나도 없어요. 북한과 중국에 이로운 말만 하지를 않나.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없고 주야장천 정권교체만 외치는 사람이 없나. 정권교체만 하면 뭐가 바뀝니까? 정권교체도 해봤잖아요. 그래서 나아진 게 있나요? 어떤 후보는 40석도 안 되는 의석수를 갖고 대통령이 되겠다는데, 그 의석수로 어떻게 정국을 꾸려나가겠다는 건지에 대한 말은 없고 그저 국민과 연대하겠다고만 하지를 않나. 배은망덕하게도 주군을 쫓아낸 일등 부역자가 대통령이 되어보겠다고 지역유세에 나섰다가 시민들로부터 “배신자”라는 소리를 듣지를 않나. 도대체 정상인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번 대선에 투표할 마음이 점점 없어진다고 했다.
투표 생각이 없다는 택시기사의 마지막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가 않았다. 점차 패배주의에 빠져들고 있는 보수층의 생각을 대표하는 것 같았다. 그동안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대한민국의 가치를 수호해온 세력들이 무너지는 작은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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