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민족의 정체성은 국가존립의 혼이다. 혼을 찾으려면 역사 속에서 자국을 대표할 수 있는 핵심개념을 찾아야 한다. 중국에는 ‘중화(中華)사상’이 있다면, 일본에는 ‘사무라이(武士) 정신’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한민족의 원종교인 ‘수두제(蘇塗祭)’ 신앙에서 출발한 낭가(郎家)사상이 고구려의 조의선인(皁衣仙人)이나 신라의 화랑제도로 발전해서 조선의 선비정신으로 계승됐다.

삼국 중 가장 후발주자였던 신라가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는 데 초석이 된 ‘화랑정신’에는 지도층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다는 책임과 의무 정신이 있었다. 천년사직 신라의 얼과 혼을 이어받은 대구·경북이 지키고 가꾸어온 정신적 자산은 ‘화랑·선비·호국·새마을’이라는 ‘4대 정신’이다. 선비정신에는 자기성찰과 같은 개인적 목표도 있지만, 무엇보다 국난을 당했을 때 목숨을 버리는 대의(大義) 정신이 오롯이 깃들어 있다.
 
조선 건국의 초석을 놓은 정도전, 성리학의 대부 이황을 비롯해서 조선 최고의 재상 서애(西厓) 유성룡은 대구·경북(TK)이 낳은 큰 인물이다. 특히 유성룡은 임진왜란 시 왜군의 침략에 맞서 명과 왜의 강화협상(조선분할획책)을 막아내고 조선을 온전히 보전했다. 전쟁 중에 굶주린 백성들이 인육(人肉)을 먹는 상황이 되자 그는 ‘중강개시(中江開市)’라는 해법을 내놓았다. 중강개시는 조선의 면포와 명나라의 곡물을 교환하는 오늘날 한미 FTA와 같은 시장개방 정책이었다.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정신과 경제난 타개를 위한 실용주의가 돋보이는 장면이다. 선비정신은 역사상 되풀이 된 의병운동, 항일 독립운동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경주 최부잣집 등으로 이어졌고, 대한민국 건국 후에는 6.25 한국전쟁 때 낙동강 전선을 사수한 학도병들의 ‘호국 정신’과 박정희 부국(富國) 대통령이 근대화를 이룩한 ‘새마을운동’으로 발전했다.
 
대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그동안 우파의 구심점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따라 우파표심은 ‘문재인 대항마’를 찾으며 계속 이동했다. 갈 곳을 잃은 우파는 ‘반기문→황교안→안희정→안철수’를 전전하며 결집하지 못하고 있다. 언론이 문재인-안철수 양강 구도로 몰며 군불을 땐 것도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파는 ‘혼돈의 국가’를 막을 수 있는 국가정체성이 있는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 안보와 경제라는 쌍끌이 위기를 극복하고 열강의 우파 지도자들과 자웅을 겨룰 수 있는 ‘강한 후보’ 말이다. 친북좌파들이 주도한 대통령 탄핵에 부역하고 가혹한 비난만 하는 유승민은 우파의 자격이 없다.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우파 유권자들은 ‘3가지는 없다’는 철학을 가져야 한다. ‘절망은 없다. 불가능은 없다. 좌파 승리는 없다.’ 이것이 보수 재건을 위한 불퇴전의 정신자세이며, 그렇게 될 경우 우파가 회생할 길이 열린다.
 
그러나 ‘보수의 성지’로 불리는 대구·경북(TK)의 표심이 심상치 않다. 지난 1987년 직선제 대선 이후 우파 대 좌파의 대결은 4승2패로 우파가 앞섰다. 그이유는 우파가 좌파보다 유능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한 정통 보수는 강력한 우파 후보에게 표를 던져왔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기울어진 운동장 탓에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문재인은 안보관이 불안하니까 덜 불안한 안철수를 찍겠다”는 것이다. 최악(最惡)을 피하기 위해 차악(次惡)을 선택하겠다는 ‘전략적 투표’ 행태이다.

그러나 안철수가 ‘4자-5자’ 구도에서 자력으로 당선되기 위해서는 보수 표심을 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론과는 반대되는 사드 배치 찬성으로 소신을 바꾼 것처럼 ‘우클릭’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될 경우 문재인의 공격으로 호남 지지율이 이탈할 수도 있다. 이처럼 호남과 영남의 지지를 동시에 받는 안철수의 지지율이 본격적인 검증대에 오르면 하락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좌파는 이념에 따른 ‘가치 투표’를 하는데, 우파는 ‘사표(死票)’를 우려해 대세에 동승하려는 경향이 있다. 보수우파가 가야할 길을 모색해 보자. 첫째, 구태의연한 선거구호에 현혹되면 안 된다. ‘홍찍문’, “홍준표 찍으면 문재인이 당선 된다”는 주장은 허구이다. 홍준표를 찍으면 홍준표가 대통령이 되는 법이다. 2002년 노무현 후보도 3등 후보에서 1등으로 올라서는 데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둘째, 정체성에 따른 투표를 해야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 우파가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를 주장하는 ‘보수팔이 좌파’ 후보를 선택한다는 것은 보수의 정체성을 스스로 저버리는 행위이다.

셋째, 대구·경북(TK)의 자존심을 지키는 투표를 해야 한다. 쇳덩이가 금덩이 될 수 없다. 안철수는 호남당 후보로 ‘보수를 청산세력으로 규정’하고 보수의 가치를 대변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비판 없이 맹목적 지지를 하는 것은 보수 정신에 역행하는 것이다. 넷째, 홍준표가 의미 있는 반전(反轉)을 이루지 못해 우파정권 창출에 실패하더라도 5년 후 권토중래(捲土重來)를 위해서라도 보수표의 집결은 필요하다. 다섯째, 박근혜 대통령의 실패가 보수우파의 궤멸로 이어지면 나라가 불행해 진다.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정신이 선비정신이고 대구·경북(TK)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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