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최근 대우조선해양이 최대 10척(9000억 원 규모)의 초대형유조선(VLCC) 선박을 수주하자 ‘셀프 수주’라는 지적이 거세게 일고 있다. 생사의 기로에 놓인 부실기업 대우조선에 모회사(산업은행)가 같은 현대상선이 일감을 줬다는 게 골자다. 이는 대우조선을 살리기 위한 ‘정부 차원의 밀어주기’라는 의혹을 낳았고, 선박펀드의 취지가 본래 목적과 어긋난다는 비판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양사가 체결한 건조의향서(LOI)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5척을 우선 발주하고, 추가로 최대 5척까지 발주할 수 있는 옵션을 포함한다. 지난 3월 22일 현대상선이 이 같은 내용의 입찰제안서 공고를 내자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 등 ‘조선 빅3’가 입찰에 참여했다. 현대상선은 대상선형 이행실적 및 프로젝트 이행능력, 기술역량, 가격, 운영비용 등의 기준으로 평가를 마친 뒤 대우조선과 계약을 맺기로 결정했다.
 
업계는 다소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대우조선이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져 있는 데다, 대주주가 양사 모두 산업은행으로 같은 회사이기 때문이다. 외견상 공개경쟁입찰 방식을 취했지만 결국 대우조선을 살리기 위한 ‘셀프 수주’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우조선은 현재 초단기 법정관리 P플랜(프리패키지드 플랜)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초대형 유조선의 1척의 시세는 8000만 달러(약 900억 원) 규모다. 대우조선이 최대 10척을 짓게 되면 총 9000억 원의 자금이 마련되는 셈이다.
 
이번 수주는 지난해 10월 정부에서 발표한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일환으로, 2조6000억 원 규모로 조성한 ‘선박 신조(新造) 프로그램’의 첫 프로젝트다. 그런데 선박펀드는 KDB 산업은행이 최대 투자자이자 주관 기관이다. 사실상 산업은행의 성향과 입김에 따라 업체 선정이 결정된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앞서 이번 수주 입찰조건에 대우조선해양의 건조선박 사양대로 견적을 요구하면서부터 업계에서는 ‘대우조선 해양을 위한 수의계약’이라는 소문이 일었던 바 있다.
 
문제는 공적자금인 이 펀드가 특정업체 밀어주기 도구로 전락한다면 본래 취지와는 전혀 다르게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수주물량 단절로 오는 6월 가동 중단 등 폐쇄 위기에 놓인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는 현재 상갓집 분위기다. 군산조선소가 폐쇄되면 협력업체와 조선기자재 업체 등 150여개 기업이 줄도산하고, 5000여 명의 근로자를 포함한 가족 2만 여명의 생계가 위협받을 처지이기 때문이다.
 
이에 전라북도와 정치권에선 군산조선소 물량배정을 위한 현대중공업 본사 방문과 함께 범 도민 100만 서명부를 전달하는 등의 노력을 펼쳤다. 10척 가운데 5척 정도의 물량 배정을 기대했던 선박펀드를 통한 1조 원 규모의 수주는 물 건너갔고, 남은 1조6000억 원 규모의 추가 발주에 기대를 걸어야하는 상황이다.
 
한편 현대중공업은 군산조선소 근무 인력 가운데 계열사인 현대삼호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으로 전직 신청을 받고 있다. 희망자에 한해서다. 이는 군산조선소 인력을 안아야 하는 울산조선소 역시 일감이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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