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 때문이라지만…” 마약에 취한 일부 운전자들

사진은 본 기사와 무관함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잠시라도 졸 수 없다. 손을 떼서도 안 된다. 사고라도 나게 되면 살길이 막막하다. 도로 위를 누비는 화물차 운전기사(이하 화물운전기사)들 얘기다. 이들은 1평 남짓한 운전석에서 하루를 보낸다. 잠을 자는 공간도 차안, 식사도 차 안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밤낮없이 운전해야 하는 이들은 기껏해야 하루 3~4시간 정도 잠을 잔다. 운행실적에 따라 수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장거리·지속 운전으로 밀려오는 피로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참아 내야만 한다. 피로회복제, 잠 깨는 음료도 소용이 없다. 결국 마약까지 손대는 화물운전기사들도 생겼다.

2015년 기준, 화물차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 1125명
마약 투약 운송기사들에 대한 수사, 화물 운송시장 변화 필요


지난해 12월 SBS는 시사교양 프로그램 ‘맨 인 블랙박스’를 통해 마약을 구하는 마약범들의 검거 현장을 동행 취재해 방송했다. 당시 방송에는 장시간 운전에 시달리는 직업운전자들에게 ‘피로회복제’로 둔갑하는 마약의 실체가 공개됐다.

제작진은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와 함께 잠복수사를 하며 마약범 소탕에 나섰다. 그 결과 경찰이 현장에서 마약범 9명을 검거했다. 현장에서 검거된 마약범은 마약을 구매한 뒤 투약한 채로 운전대를 잡은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화물운전기사들의 마약 투여 사실이 방송을 통해 알려졌지만 그뿐이었다. 화물운전기사들이 마약을 한다는 소문은 오래전부터 떠돌던 소문 중 하나였다. 하지만 단속이 쉽지 않았던 만큼 실제 사례가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뉴시스>
  “마약운전
졸음운전보다 위험“

 
과거에도 마약을 투약한 채 화물차를 운전한 화물운전기사가 검거된 적이 있다.

지난해 10월 11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심야 졸음운전을 피하기 위해 필로폰을 투약한 채 고속도로를 운행한 혐의(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로 화물운전기사 A씨 등 2명을 구속하고 B씨 등 5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또 경찰은 이들에게 마약을 공급한 자동차정비공장장 C씨와 화물 운송영업소장 D씨를 같은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졸음을 이기기 위해 1회당 필로폰 0.03~0.06g가량을 투약했다. 1~2주간 휴일 없이 연속 근무를 하는 등 과도한 근무 환경에 노출돼 쌓인 피로감을 이겨내기 위해서였다.

당시 경찰 관계자는 “마약 운전은 중추신경을 마비시키기 때문에 실제 졸음운전보다 훨씬 위험하다”며 “마약 투약 운송기사들에 대한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화물운전기사의 마약 투여 사건은 올해도 발생했다.

지난 2월 13일 충남 예산경찰서는 북한산 마약을 투약한 상태에서 화물차 운행을 한 혐의로 화물차 운전자 E씨 등 6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또 이들에게 마약을 공급한 탈북자 출신 F씨 등 2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화물운전기사인 E씨 등은 탈북자 출신인 F씨 등으로부터 북한산 필로폰으로 알려진 일명 ‘빙두’를 구입해 투약했다. 마약을 투약한 이들은 고속도로 제설차량이나 택배차량·덤프트럭 등을 운전하던 화물운전기사들로 마약을 한 상태에서 운행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탈북자와 화물운전기사 등을 통해 북한산 마약류의 공급이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과거와 달리 마약을 구할 수 있는 통로가 다양해진 탓이다.
 
운전기사 사고 원인
‘장시간 노동’이 문제

 
지난 2015년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사회공공연구원(이하 연구원)이 조사한 ‘육상 교통·물류 분야의 안전 위협 요인과 개선방향 연구’와 ‘워킹페이퍼’에 따르면 도로에서 발생하는 각종 교통사고의 구조적인 안전위협요소 중 화물·버스·택시운송업 분야의 ‘장시간 노동’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위원은 워킹페이퍼를 통해 “세월호 참사에서도 드러났듯이 교통사고는 여러 가지 구조적인 문제점이 결합하면서 발생한다”며 “장시간 저임금이 교통사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중 ‘화물운송업’은 당시 규제완화 정책으로 인해 영세업체들이 난립했으며 지입제(운수 회사에 개인 소유의 차량을 등록해 일감을 받아 일하는 제도)와 다단계 하청으로 차주들이 정당한 권리와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운송비용은 매년 오르고 있어 차주들은 장시간 노동과 과적 및 과속을 통해 수입을 만회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컸다. 이어 연구원은 화물차 교통사고가 2015년 기준, 연 평균 3만 건에 이르고 사망사고 발생건수도 1125명에 이르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는 2004년 이후부터 화물자동차운송업과 주선사업을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했다. 또 직접운송비율제도 등을 도입하면서 화물운송시장을 규제하는 여러 대책을 추진했다.

다단계 하청 구조 바꿔야
수수료 떼면 남는 돈 없어

 
화물운전기사들의 근무 환경은 날로 열악해지고 있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 다단계 하청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이들의 근무환경도 나아지기는 쉽지 않다.

다단계 하청구조는 제일 위에 있는 기업이 부품이나 완성 품목을 운반하기 위해 그 아래에 있는 기업에게 화물을 맡긴다. 또 화물을 맡은 기업은 그보다 규모가 작은 소규모 운송업체들에게 운반을 맡긴다. 소규모 운송업체들은 알선 업체들을 통해 화물차를 수배해 물건을 운반한다. 결국 최종적으로는 화물차를 소유한 화물운전기사가 부품과 완성품을 운송한다.

이렇듯 다단계 구조를 가진 화물운송 시장 구조는 짧게는 2단계, 길게는 5단계 하청과정을 거친다. 이 때문에 하청과정에서 최초 운반을 의뢰한 기업이 지불한 운송비는 20~ 40%까지 수수료의 명목으로 사라진다.

아무리 많은 일을 해도 화물 운전기사들이 손에 쥐는 돈은 적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도 화물운전기사들은 돈을 벌기 위해 밤낮없이 도로를 달릴 수밖에 없다. 밥 먹는 시간 잠 자는 시간까지 줄여 보지만 피로는 막을 방법이 없다. 마약까지 손댈 수밖에 없는 화물 운전기사들의 상황에 개선책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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