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통령 선거가 5월 9일로 다가섰다. 새로 뽑힐 대통령도 지난날 대통령처럼 탄핵되거나 수감 또는 살해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역대 대통령들은 청와대에만 들어가면 모두 만신창이가 되어 나온다. 대통령 중심제를 거친 9명의 대통령 모두가 그랬다. 대통령 비운의 연유로는 대통령의 무능과 아집, 독단과 권위주의 의식, 친인척 관리 소흘, “제왕적 대통령제” 등이 지적된다. 대통령 개인과 제도 탓으로 귀착된다. 모든 게 대통령 “네 탓”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9명의 대통령이 모두 불명예로 끝난 데는 우리 국민의 후진적 ‘정치문화’ 탓도 적지 않음을 자성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후진적 정치문화가 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으로 일탈케 했고 최순실을 설치게 했다. 우리나라에는 선진국처럼 민주주의를 멋지게 영위할 수 있는 정치문화가 성숙되어 있지 못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도 우리와 같이 대통령 중심제이다. 1789년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취임한 이후 45명이 백악관을 거쳐 갔다. 하지만 한 명도 탄핵된 바 없고 검은돈 먹었다가 자살한 적도 없으며 한 명도 구속되지 않았다. 대통령 친인척의 권력형 부패나 최순실 같은 대통령 측근의 국정농단도 없었다.
똑 같은 대통령제인데 미국 대통령제는 만인의 부러움을 사는 데 반해 한국 대통령제는 악순환을 되풀이 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앞서 지적 한 대로 한국인들의 정치문화가 민주주의를 제대로 향유하리만큼 성숙되어있지 못한 탓이다. ‘법률과 제도가 잘 되어 있어도 운용하는 국민의 정치문화가 후진적이면 그 나라 정치는 후진적일 수밖에 없다’는 정치학의 기본이론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우리 국민의 정치의식은 아직도 조선조 왕권체제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대통령은 관료·당원들을 국민을 위한 공복(公僕)으로 존중하지 않고 자신의 몸종으로 여긴다. 그리고 관료·당원들은 대통령을 국민의 심부름꾼이 아니라 임금님으로 섬긴다. 이런 수직적이며 반민주적 군신(君臣) 관계에서는 과잉 충성을 위한 순장조(殉葬組)나 호위무사(護衛武士)만이 득세한다. 객관적이며 바른말하는 공복은 불충(不忠)으로 찍혀 쫓겨나고 만다. 여기에 측근의 국정농단과 권력형 부패가 끼어들게 된다. 끝내 대통령은 언론 자유와 3권분립의 견제 속에  탄핵당하거나 감옥에 가지 않으면 머리 숙여 국민에게 사죄해야 한다. 
한편 야당은 대통령을 국가의 최고 지도자로 존중하지 않고 제거해 버려야 할 적으로 간주하며 협치 대신 맞서기만 한다. 일반 국민은 야권의 반정부 선동에 박수 보내며 덩달아 저주한다. 지역감정도 한 몫 한다. 후진적 정치문화가 빚어내는 국가 망조(亡兆)가 아닐 수 없다.
후진적 정치문화란 반민주적 군신관계, 준법과 합리적 의식 결여, 떼법 지배, 여야 간의 적대적 관계, 지역감정, 양보와 타협 거부, 반대를 위한 반대, 맹종과 아첨, 인맥과 파벌 형성 등을 말한다. 이 따위 후진적 정치의식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분권형 내각제로 개헌한다 해도 총리는 ‘제왕적 대통령’ 못지않게 ‘제왕적 총리’로 군림하게 된다. 아니면 한때 이탈리아처럼 내각이 아침저녁으로 바뀌는 정치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후진적 정치문화 속에선 5월9일 새로 선출되는 대통령도 또다시 ‘제왕적 대통령’으로 군림하게 되고 불행을 피할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역대 대통령의 비극을 대통령 개인과 제도 탓으로만 떠넘기지 말고 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으로 병들게 한 우리 자신의 후진적 정치의식에도 책임이 적지 않음을 직시해야 한다. 대통령 “네 탓”만이 아니고 “내 탓”도 자성해야 한다. “내 탓”이라는 통렬한 자기반성만이 새 대통령의 불행을 막고 정치 악순환 고리를 끊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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