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통수 맞고, 대기업에 치이고 결국엔…

서영필 에이블씨엔씨 창업주. <뉴시스>
협박·폭로 등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와 악연
전문경영인으로 남을 수도… ‘회사 버린 것 아냐’


[일요서울 | 남동희 기자] 저가 화장품 돌풍의 주역 미샤의 서영필 창업주가 17년 만에 회사를 떠난다. 온라인 화장품 사이트를 운영하던 서 회장은 2002년 증정 화장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미샤를 론칭했다.
미샤는 수입·고가 화장품에 지친 소비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무섭게 성장했다. 창업 2년 만에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했다.
사업이 성장할수록 고난도 많았다. 우후죽순 미투 제품·브랜드가 생겨났고, 노하우를 전수해준 이도 뒤통수를 쳤다. 대기업의 공세도 대단해 미샤의 실적은 점차 줄었다.


지난달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화장품 브랜드 미샤를 보유한 에이블씨엔씨 서영필 회장이 보유 지분 29.31% 중 25.5%를 사모펀드 운용사 IMM 프라이빗에쿼티(이하 IMM PE)에 양도했다. IMM PE는 지분 인수를 위해 특수목적법인(SPC) 비너스원을 설립했다.

지분 양도는 비너스원이 에이블씨엔씨의 자회사 리프앤바인의 주식 100%를 넘겨받고, 리프앤바인을 통해 서 회장의 지분을 양도받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IMM PE는 서 회장 지분 외에 오는 22일까지 공개매수로 에이블씨엔씨 주식 최대 1016만9491주를 더 취득한다. 이는 에이블씨엔씨 발행 주식의 60.21%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 작업이 마무리되면 IMM PE는 에이블씨엔씨 87%에 달하는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에이블씨엔씨의 남은 지분 3.77%를 보유한 서 회장은 경영권도 함께 IMM PE로 넘겼다. 지난달 2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리프앤바인은 공개매수 신고서를 제출하며 ‘주식 매매계약 거래는 경영권 이전 거래를 포함되는 통상적인 수준의 선행조건을 충족해야 종결된다’고 공시했다.

이로써 오는 5월이면 서 회장은 본인이 창업한 회사 에이블씨엔씨를 17년 만에 다른 이에게 넘기게 됐다.

3300원 화장품으로 1000억 벌어

미샤는 뷰티커뮤니티 ‘뷰티넷’에서 고객 테스트를 위한 증정용 화장품이었다. 뷰티넷은 2000년 서 회장이 몇 번의 화장품 사업에서 실패한 뒤 고객의 반응을 보기 위해 만들었다.

뷰티넷은 당시 여성고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게시판에 글을 많이 작성하는 고객에게 화장품을 무료로 배송해줬다. 예상 외로 많은 여성 고객들이 이 ‘공짜 화장품’에 환호했다. 배송비 부담 등으로 화장품 무료배송을 중단하자 고객들은 배송비를 낼 테니 보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를 보고 서 회장은 ‘배송료인 3300원을 내고는 이 제품을 사용할 고객들이 있구나’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얼마 후 그는 3300원의 저가 화장품을 주 품목으로 하는 화장품 브랜드 미샤를 론칭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앞 1호 매장을 낸 미샤는 고가 화장품을 사기 힘든 10·20대 고객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2004년에는 전국에 200여 개가 넘는 오프라인 매장이 생겼다. 매출도 상승해 1000억 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곧이어 후발 주자들의 맹추격이 시작됐다. ‘더페이스샵’ ‘에뛰드하우스’ 등이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정운호 더페이스샵 창업주와의 악연도 시작됐다. 정 대표는 업계 1위인 서 회장에게 여러 노하우를 전수받아 더페이스샵을 열었다. 하지만 이 노하우로 정 대표는 미샤를 위협했다.

업계에 따르면 정 대표는 더페이스샵 매장을 미샤 매장 바로 옆에 열고, 유사한 제품을 출시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고 그 후 둘의 사이는 멀어졌다. 2015년엔 정 대표가 사들인 네이처리버블릭에 의해 미샤는 지하철 로드숍 52곳의 점포를 내주는 상황까지 몰렸다.

이 밖에 2012년에는 서 회장이 지하철 로드숍 독점 낙찰받은 것을 못마땅해 한 정 대표가 검찰 조사를 언급하며 협박했다고 폭로했다. 의혹이 퍼지며 진실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정 대표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이에 서 회장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라는 등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대기업의 공세도 거셌다. 이니스프리 등 대기업 소속 브랜드가 약진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올리브영 등 헬스&뷰티숍(H&B)과 홈쇼핑을 통한 다양한 화장품 브랜드가 보급되면서 미샤의 입지는 예전보다 축소됐다.

서 회장이 브랜드 이미지 개선, 신제품 출시 등 돌파구를 모색했으나 에이블씨엔씨의 매출은 2012년 이후 5년째 4000억 원 중반에서 정체됐다.

1위 탈환 호언장담했지만

회사를 떠나는 서 회장을 향한 비판도 있다. 서 회장은 지난 2월 업계에서 3위를 차지하고 있는 미샤를 1위로 만들 자신이 있다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두 달도 안 돼 회사 지분을 매각했다. 일부 업계 관계자는 ‘무책임하다’ ‘급작스럽다’는 등 반응을 내놓았다.

여기에 지분 매각을 통해 경영권 프리미엄이 드러나자 서 회장을 향한 비판은 거세졌다. 서 회장은 경영권 프리미엄 명목으로 일반 주주보다 주당 54.2% 높은 4만3636 원을 받았다. 서 회장이 본인만 살겠다고 이익을 얻고 빠진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에이블씨엔씨 측은 서 회장이 경영난으로 인해 회사 지분을 넘긴 것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에이블씨엔씨 관계자는 “공시에도 보고됐듯이 회사는 계속 수익을 내고 있었다”며 “(서 회장의 지분 매각은) 더 큰 발전을 위한 투자 유치 명목 상 진행된 일”이라고 강조했다.

서 회장이 전문경영인으로 남아있을 가능성도 언급했다. 이 관계자는 “경영권을 넘겨받은 사모펀드 측은 화장품 회사 경영 경험이 없다”며 “지분 양도 계약서 체결을 하며 서 회장이 전문경영인으로 남아있는 방안도 상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곧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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