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웅 기자>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재계가 떨고 있다. 그동안은 검찰의 수사 칼날이 무서웠다면 이제는 대선후보들의 ‘입(공약)’이 무섭다.

대선후보들의 말 한마디에 일부 시민단체와 동조하는 세력이 힘을 모으면서 기업 경영의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후보 중 누군가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공약이 이행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기업이 떠안아야 한다.

한 기업 관계자는 “선거를 앞둔 시점에 표몰이 때문에 기업을 옥죄고 선거 이후에는 재계의 힘이 필요하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정치인을 보는 악순환이 이번에도 이어지고 있다”며 기획 담당자들이 최근 들어 많이 쓰는 표현이 “안녕들 하십니까”라며 씁쓸해 했다.

‘공정위 실권 강화’ ‘큰 정부론’ ‘최고세율 인상안’ 등 기업 옥죄어
“어떤 후보가 당선 되도 어렵다” 부정적 견해 많아…이유는

19대 대통령선거 후보들이 기업을 때려잡겠다며 입을 모은다.
문재인·안철수·홍준표·심상정·유승민 등 대선 후보 5명은 저마다 재벌개혁을 주창하고 있다.

재계는 경제민주화 취지는 존중하지만 과격한 개혁은 국내 경제의 과반을 책임지는 대기업들의 순기능까지 억제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대선주자들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 정도로 받아들여진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대선후보들의 공약을 들여다보면 대주주의 사익 보호를 지적한다. 하지만 대주주의 사익보호가 경영권 방어로 이어지는 일도 부지기수다. 다 일궈놓은 밭을 앉은자리에서 제3자에게 빼앗겨도 항의하지 말라는 말과 똑같다”고 말했다.

이어 “대주주의 사익을 근절하려 한다면, 균형을 맞춰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장치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5인 후보들, 공약 들여다보니…

재계가 가장 두려워하는 공약은 단연 공정거래위원회의 실권 강화다. 안철수 후보의 공약이자 직접 대표발의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공정위가 독과점적 시장구조가 장기간 지속될 때 사업자에게 주식 처분, 영업 양도 등을 명령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정위 상임위 정수도 5명에서 7명으로 늘렸다. 제윤경 민주당 의원은 기업 공동행위·일감 몰아주기 행위 조사에 한해 공정위에 압수수색권을 부여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외에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일감몰아주기 규제 및 처벌 강화 ▲과징금 경감 제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국외 계열회사 거래 공시 의무 등이 심사 대상이다.

또 규제 강화 등으로 대표되는 ‘큰 정부’ 관련 공약도 자칫 기업의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시장경제를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후보는 이전부터 ‘작은 정부’를 ‘미신’에 빗대며 자신의 정책적 색깔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문 후보는 공공부문 80만 개 일자리 창출 공약과 함께 ‘재벌 적폐 청산’을 기치로 삼성·현대차·LG·SK 등 재벌 개혁을 전면에 내세우며 경제 부문에서의 정부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다중대표소송제 ▲전자투표제 ▲서면투표제 등 소액주주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정책들을 통해 정치권이 대주주와 총수 일가의 전횡을 막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안 후보는 정부 주도의 일자리 및 산업정책 등 고전적인 ‘큰 정부론’에는 선을 그으면서도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도입 등의 공약을 내걸어 대기업 규제 강화를 명확히 하고 있다.

친기업의 ‘작은 정부론자’로 분류되는 홍 후보마저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 기준 지분을 상장 여부와 관계없이 20%로 강화하는 공약을 포함시켰다. 유 후보와 심 후보도 각각 총수 일가의 개인회사 설립을 전면 금지하고,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 대기업의 횡포에 대해서는 정부가 나서 적극적으로 막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법인세 인상에 따른 후보들의 입장도 기업 입장에선 곤욕스럽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제외하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등 주요 대통령 선거 후보들이 향후 법인세 인상 방침을 밝혔다.

현재 최고 22%인 법인세율에 대해 주요 정당 후보들은 증세 필요성을 제기하며 그 수단으로 법인세 인상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문 후보는 “법인세 명목세율 25% 인상이라는 것은 발표 공약에 있다”며 “우선 부자증세부터 해야 한다. 고액 소득자에 대한 과세강화와 실효세율 인상,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으로 국민들의 동의를 받겠다”고 설명했다.

안 후보는 “증세해야 한다”며 “중부담중복지는 ‘안철수의 생각’이란 책에서도 밝혔다. 그런데 순서가 있다. 국가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밝혔던 유 후보는 “법인세는 법인소득이 많은 대기업한테 이명박 정부 이전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밝혔다.

“시장경제 틀 지켜달라”
 

단연 재계에선 투자와 고용 위축 등을 들며 이들 법안 대다수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기업경영을 하라는 건지 하지 말라는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푸념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 기류와 여론을 감안할 때 일정부분 현실화할 가능성 또한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다.

지난달 24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경총 등 경영계에선 특단의 경제 활성화 대책 없이 무조건 세금을 더 걷어 복지지출을 늘리려는 공약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제 5단체는 잇단 경제계 제언을 통해 “기업이 일자리 창출과 경제 살리기에 전념할 수 있도록 과도한 규제적 입법을 지양하고 고용친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시장경제원칙이 존중돼야 한다”며 경계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앞서 대한상의는 국회에 법인세율 인상 유보를 호소한 바 있다.

경기가 나쁜 상황에서 법인세율을 올리면 세수와 일자리가 오히려 줄어드는 부메랑 효과가 나타나는 만큼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한상의는 ▲불경기에 증세하면 경기 후퇴가 우려되고 ▲국제적 법인세 인하경쟁에 역행하며 ▲입법 의도와 달리 중장기 세수감소 ▲최고 복지인 일자리 감소 ▲증세 실질 부담은 소액주주 등 국민 몫이라는 결과가 예상된다는 ‘법인세율 인상 5가지 문제점과 정책대안’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또 대한상의는 박용만 회장 등 상의 회장단이 지난 3월 23일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등 5개 정당 대표를 만나 ‘제19대 대선후보께 드리는 경제계 제언문’을 전달했다.

상의는 제언문에서 대한민국의 새 희망공식을 바라는 17만 상공인의 열망을 담아 ‘공정사회·시장경제·미래번영’의 3대 틀을 담았다.

상의 관계자는 “이번 제언문은 특유의 ‘박용만식 소통법’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박용만 회장은 “특정 이슈에 대해 찬반을 얘기하는 것도, 절박감에 법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떼쓰는 것도 아니다”라며 “장기적으로 선진국 진입을 위한 변화, 누구나 지적하지만 고쳐지지 않는 정책, 시장경제원칙의 틀을 흔드는 투망식 해법 등에 대해 신중히 고민해 달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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