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쪽지’ 공개 後 정치권, 소용돌이에 빠져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송민순 회고록’이 또다시 정치권 이슈로 등장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내용은 똑같다. 2007년 11월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우리 정부가 북한에게 의견을 구했느냐 아니냐다. 또 그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 후보가 적극적으로 개입했는지 등이 쟁점이었다. 문 후보 측은 당시 대화록·메모까지 공개하며 ‘기권’ 결정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판단이었다고 밝혔다. 회의록을 통해 문 후보는 애초 ‘찬성’ 의견이었던 점도 확인됐다. 논쟁의 여지는 아직 남아있지만 송 전 장관의 주장이 힘을 잃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문 후보 측은 송 전 장관을 검찰에 고발했다. 여기저기서 왜 하필 이 시점에 ‘송민순 회고록’ 속 북한인권결의안이 이슈가 됐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다. 대선을 코앞에 둔 예민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30여 년간 국제정치 누빈 베테랑 외교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서울대 선후배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이 지난 24일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직에서 사퇴 의사를 밝혔다. 북한대학원대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총장께서 자신의 회고록으로 인해 북한 문제를 다루는 학교에 대한 외부의 시선 등에 부담을 느껴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송 전 장관은 지난해 자신의 회고록에서 지난 2007년 참여정부가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결정 과정에서 북한 측에 의견을 물어봤고, 이를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이 주도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 후보 측은 이 같은 사실을 부인해 왔다. 그런 가운데 송 전 장관은 지난 21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관련 메모를 추가로 공개해 또다시 파장이 일었다. 문 후보 측도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당시 관련 회의에 참석했던 인사들의 대화록까지 공개했다. 자료가 공개되자 문 후보 측 주장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결국 문 후보 측은 이날 송 전 장관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공직선거법 위반, 대통령 기록물관리법 위반, 공무상 비밀누설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한마디로 ‘부메랑’을 맞았다. 한 칼럼에서는 송 전 장관이 처한 상황에 대해 “‘빙하는 움직인다’라는 회고록을 썼는데 빙하가 녹는 바람에 바다에 빠질 딱한 처지가 됐다”고도 했다. 안타깝다.

‘송민순 회고록’으로 불리는 송 전 장관의 회고록은 정식이름은 ‘빙하는 움직인다: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이다. 송 전 장관이 지난 30여 년간 국제정치 무대를 누비며 경험한 일들을 기록했다.
 
‘빙하는 움직인다’
출간 후 정치권 핫이슈로

 
특히 북한 핵과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장전(章典)으로 불리는 9·19 공동성명의 합의와 이행 과정을 중심으로 한국 외교가 어떻게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미래를 움직이는 지렛대가 될 수 있을지 그 비전을 제시했다.

또 1976년 판문점 도끼사건부터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1994년 제네바 합의, 2005년 4차 6자회담,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 등 굵직한 계기를 징검다리 삼아 경수로, 방코델타아시아(BDA) 제재, 군사작전권 회수, 사드(THAAD) 배치, 소고기 협상 등 중요한 외교 쟁점에 대한 그의 생각이 담겼다.

이 밖에 책에는 ‘김정힐’이라는 말까지 들을 만큼 일본과 네오콘의 견제를 받은 미국 대표 크리스토퍼 힐, 만나면 담배부터 권하는 호방한 스타일의 중국 대표 우다웨이, 일본인 납치 문제를 수시로 꺼내드는 일본 대표 사사에 겐이치로, 늘 한 발 물러나 어떤 이익이 돌아올지 관망하는 러시아 대표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 그리고 ‘도살장에 들어온 느낌’이라며 복잡한 심경을 내비치는 북한 대표 김계관 등 자국의 이익과 개인적 입장 사이에서 고뇌하는 4차 6자회담 주역들의 모습이 실감 나게 묘사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 전 장관의 회고록은 당시 정치권에서 핫이슈로 떠오른 덕에 1쇄 1500부가 다 팔려 추가 인쇄에 들어갔다.
 
SOFA 개정협정 수석대표
‘9·19 공동성명’ 이끌어

 
송민순 전 장관은 참여정부 마지막까지 장관 자리를 지켰다. 1948년 경남 진주 출생인 송 전 장관은 1975년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다. 제 9회 외무고시에 합격하면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외교부 안보과장, 북미과장, 청와대 외교안보실 비서관, 외교부 북미국장을 지냈다.

송 전 장관은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협상 때 이를 담당하며 이름을 알렸다. 1991년 1차 SOFA 개정 때는 주무과장, 2002년 2차 개정 때는 협상 수석대표를 맡았다. 개정협정을 성공리에 마치면서 협상력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추진력이 좋았다고 전해졌다.

송 전 장관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과도 인연이 깊다. 이들은 서울대 선후배 사이로 반 전 총장이 송 전 장관 선배다. 반 전 총장이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에 오르자 귀국해 중용됐다.

2005년 외교부 차관보였던 송 전 총장은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았다. 이후 북한이 모든 핵무기를 파기하고 핵확산방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로 복귀한다는 내용이 담긴 ‘9·19 공동성명’을 이끌어냈다.

이후 송 전 장관은 승승장구했다. 2006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으로 승진했고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 유엔사무총장으로 선출되자 후임 장관으로 임명됐다.
정치 입문은 2008년에 했다. 당시 손학규 통합민주당 공동대표의 추천으로 18대 국회에 비례대표 4번으로 입성했다. 하지만 19대 국회는 불출마 선언을 하고 정치권을 떠났다.
 
철학과 소신으로
쓴소리 아끼지 않아

 
회고록으로 정치권에 큰 파장을 일으킨 송민순 전 장관은 과거 국회의원 시절에도 민주당 내 진보 강경파로 분류되는 친노를 상대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2011년 한미 FTA 비준안 통과 때부터 당내 강경파와 다른 목소리를 냈다고 전해진다.

그 당시에는 ‘한미 FTA 재재협상’이 당론이었지만 송 전 장관은 “야당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재재협상론을 주장하기보다는 국내 보완대책을 중심으로 한 대정부 요구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을 상대로 “한국인인지, 미국인인지 의심스러운 게 많다”고 몰아세운 정동영 의원을 겨냥해 “실체를 가지고 말하라”고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2012년 4월 19대 총선을 앞두고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해 “민주당 정권 10년 동안 북한을 변화시키는 데 실패했다. 우리(민주통합당)는 현실을 직시하고 대북정책 일부를 수정해야 한다”고 비판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송 전 장관이 19대 국회의원 선거에 불출마한 배경에는 당시 그의 행보와 연관이 있다. 송 전 장관의 연이은 소신 발언의 결과로 시민단체인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로부터 ‘심판 대상’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송 전 장관은 2015년 5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만약 (19대 국회에서) 지역구 의원을 하려 했다면 평소의 철학이나 소신을 (고수하지 못하고) 타협했어야 할 것이다. 장관까지 하면서 걸어온 길을 뒤집어 엎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한 바 있다.
 
민주당 세력 비판 이유
사실상 ‘손학규계’이기 때문

 
회고록 논란 속 더불어민주당 측과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이 송 전 장관에 대해 격분하는 이유는 과거 그의 행적 때문이다.

송 전 장관은 참여정부에서 장관 등 요직을 역임했기에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당시 문 후보와 함께 장의위원직을 맡았다. 그런 그가 대선이라는 예민한 시기에 문 후보를 공격한 꼴이 됐으니 그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더욱 더 컸을 것이다.
게다가 송 전 장관을 정치에 입문 시킨 손학규 전 대표가 지금은 국민의당에 가 안철수 후보를 돕는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을 맡다 보니 비판이 더 거셀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송 전 장관은 손 위원장이의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경기도 국제관계 대사를 지냈다. 또 손 위원장이 2012년 대선 후보 경선 캠프를 꾸릴 때 외교 안보 특보를 맡았기에 사실상 ‘손학규계’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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