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만 총기사고 18건…‘총기 청정국은 옛 말’

<뉴시스>
불법 밀반입 총기 수 ‘증가세’…‘사제 총기’ 제작은 인터넷에 널려 있어
관리·단속 근본 점검 필요…警, 콘트롤 타워 구축·전담 수사팀 신설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남의 나라 얘기로 들렸던 총기 관련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시민 안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해 10월 ‘오패산 총격사건’에 이어 최근 경북 경산에서 40대 총기범이 대낮에 은행을 턴 사건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실제 총알이 발사되기도 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18건의 총기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총기 청정국’은 옛 말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사제 총기’ 제작 정보는 인터넷에 널린 실정이며, 최근에는 해외 직구 등을 통해 총기를 불법 구입하는 사례도 적발되는 상황이다.
 
지난 20일 정오 무렵 평화롭던 한 시골 마을의 은행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방한 마스크와 모자 등으로 얼굴을 가린 한 남성이 권총을 들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남성은 총을 들고 위협하다 제지하려던 은행 남자 직원과 몸싸움을 벌인 끝에 권총 1발을 발사했다.
 
당시 은행에 손님은 없었으나 남직원과 여직원 2명이 있었다. 총기범이 쏜 총알은 다행히 사람 쪽으로 가지 않아 부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아찔했던 순간은 총기범이 현금 1563만 원을 훔쳐 달아나면서 일단락됐다.
 
긴급체포 뒤 구속
총기 입수 경로 ‘미스터리’

 
총기 강도범은 이후 경찰의 폐쇄회로(CC)TV 영상 분석과 통신 수사 등에 의해 사건 발생 2일 후인 22일 긴급체포됐고, 며칠 뒤 구속됐다. 이 남성은 마을 인근에서 대추, 감 농사를 짓던 농사꾼으로 밝혀졌다. 평범한 농사꾼이 어떻게 총기를 구했는지에 대한 입수 경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경찰은 범행에 사용된 총기를 국립수사과학원에 문의한 결과 이 권총이 1942년∼1945년 미국 총기업체가 생산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감정 내용을 통보받았다. 경찰은 당시 사건 현장에서 발견한 탄피와 탄두를 분석한 결과 탄환은 45구경(11.43㎜)으로 1943년 미국에서 만든 것으로 확인했다.
 
국과수의 감정 결과로 볼 때 범행에 사용된 총기는 사제 총기가 아니라 미군용 실제 권총일 가능성이 높다. 정식 제조 권총이라면 군부대나 경찰서 등에서 분실된 것이 밀거래로 피의자 손에 들어왔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하지만 수사당국에 따르면 최근 전국적으로 군부대와 경찰에서 45구경 권총이 분실됐다는 신고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남아나 러시아 등에서 총기 완제품을 밀수했거나 부속품을 몰래 들여와 국내에서 조립했을 가능성도 있다. 또 드물긴 하지만 실내사격장에서 총기를 탈취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 2015년 10월 부산의 한 실내사격장에서 20대 남성이 업주를 흉기로 위협해 45구경 권총 1정과 실탄 19발을 빼앗은 뒤 강도 행각을 벌이다 붙잡히기도 했다.
 
특히 최근에는 해외 직구 등을 통해 총기로 개조 가능한 장난감 총기나 부품 등을 밀반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국내로 몰래 들여오려다 적발된 불법 총기 수가 2013년 140정, 2014년 170정, 2015년 180정으로 증가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총기 사용 범죄도 크게 증가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국내에서 총 64건의 총기 사고가 일어났으며 지난해에만 18건이 발생했다. 29명(자살 6명)이 목숨을 잃었고, 46명이 부상을 당했다.
 
최근 6개월만 보더라도 수차례 총기 범죄가 발생했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북구 오패산 터널 부근에서 40대 남성이 사제 총을 10여 차례 난사해 경찰관이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같은 해 11월엔 음주운전 단속에 불만을 품고 파출소를 찾아가 경찰을 향해 엽총을 쏘는 사건도 발생했다. 12월에는 서울 도심 주택가에서 산악회에서 탈퇴하게 된 데 앙심을 품은 40대 여성이 산악회 동료에게 엽총을 쏘기도 했다.
 
국내 대부분의 총기는 수렵 면허 소지자의 수렵용 공기총 등으로 파악되며 이는 지역 경찰서에서 보관된다. 수렵 기간 중 오전 7시~오후 7시 사이에만 반출 가능하고 이를 어기면 과태료를 물게 된다.
 
총기 관리 부실 ‘지적’
警, 점검·단속 강화 방침

 
문제는 경찰의 총기 관리 부실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감사원이 지난해 3~5월 경찰청 등 대상으로 안전 관리 실태를 감사한 결과, 총기 소지허가자 10만1607명 중 2378명은 주민등록번호나 이름이 잘못 입력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42명의 전과자가 총기 소지 허가를 받은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개인정보를 시스템에 부정확하게 입력한 탓에 부적격자까지 정상적인 허가자로 관리된 것이다.
 
한편, 인터넷 영향으로 쉽게 제작할 수 ‘사제 총기’는 현실적으로 규제 단속조차 힘든 실정이어서 사정당국에서도 한 숨이 나온다. 총포·화약류의 제조 방법이나 설계도 등을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유튜브에 올리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돼 있다. 하지만 유튜브 등 해외에 서버를 둔 사이트는 국내법으로 규제하기 힘들어 실효성이 떨어진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처벌 조항은 있지만 범죄 수법을 담은 유해 정보가 인터넷에 워낙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일일이 확인을 해 적발하기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서버가 외국에 있는 사이트는 우리 사법관할권이 미치지 못해 불법 사이트가 있다는 것을 알아도 제재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런 상황에서 불법 총기를 관리하는 콘트롤 타워 구축과 총기범죄 전담 수사팀 신설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총기, 폭발물 제조법이 급속히 전파되고 국제 테러위험이 확산된다는 점을 고려해 근본적인 총기관리 체계 점검과 관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경찰은 또 불법무기 검거보상금을 상향(30→500만 원)했고, 밀수총기 단속 강화를 위해 관세청과 검색장비 추가 정보 공유 등도 협의해 나갈 예정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총기범죄로 인한 국민 불안을 차단하기 위해 총기관리를 더욱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며 “5월 한 달간 불법 무기 집중단속도 벌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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