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낱같은 희망이 있다’…“도와 달라”

실종자 가족들이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는 ‘구명벌’(구조 보트) <사진=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 제공>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침몰한 지 한 달째가 됐다. 지난 3월 26일 브라질 구아이바에서 철광석 26만t을 싣고 중국으로 출발한 ‘스텔라데이지호’가 5일 후인 31일 우루과이 인근 남대서양에서 갑자기 침몰했다. 이 사고로 한국인 선원 8명을 포함해 22명이 실종됐다.

실종자 가족들은 상당한 시간이 흘러 힘든 상황이지만, ‘구명벌’(무동력 구조 보트)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다. 사고 일대 수색을 진행했던 미국 정찰기가 구명벌 추정 물체를 발견했다는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간 외교부에 확인해 달라는 요청을 여러 차례 했지만 확답을 받지 못한 가족들은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게 편지까지 보낸 상황이다.
 
‘구명벌’ 4척 중 1척 아직 발견 안 돼…가족들 ‘기대’
당시 ‘구명벌로 보인다’ 밝힌 미군 측에 ‘사진’ 요청

 
14만 톤급 화물선 스텔라데이지호가 3월 31일 브라질 도시인 산토스 남동방 2,500km 지점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침몰했다. 사고가 없었다면 5월 6일 중국 칭다오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현재까지 필리핀 선원 2명은 구조됐으나 한국인 8명, 필리핀인 14명 등 선원 22명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사고 초기 미군과 브라질군이 지원하던 초계기(항공수색 정찰기)는 지난달 중순 수색 중단을 알려왔다. 우루과이 해군과 중국 구난선 등 선박 7척이 사건 초기 투입됐으나 현재는 4척으로 줄었다. 이마저도 점차 수색을 중단할 계획이고, 5월 첫째 주에 투입이 확정된 배는 1척이 전부다.

‘구명벌 사진’ 요청
트럼프에 ‘편지’ 발송

 
사고 발생 후 한 달이나 됐지만 실종자 가족들이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구명벌’이다. 스텔라데이지호에는 모두 4척의 구명벌이 실렸다. 이는 배가 침몰하면 자동으로 펼쳐지게끔 돼 있다. 현재까지 3척의 구명벌만 빈 상태로 발견됐고, 1척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실종자 가족 대표는 “구명벌에 생존을 위한 낚시 도구, 손전등 등 유사시 사용할 수 있는 물품이 있다”면서 “또 사고 해역에 비가 많이 왔다고 들어 식수도 충분히 있을 것”이라며 한 가락 희망을 걸고 있다.

 
‘구명벌’에 있는 물품 중 낚시 도구 <사진=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 제공>
  가족들이 또 강력하게 요구하는 부분은 사고 당시 구명벌 추정 물체에 대한 ‘사진’이다. 사고 초기인 지난달 9일(한국시각) 미 초계기(P-8A)는 노란색 또는 오렌지색으로 보이는 구명벌 추정 물체 등을 발견했다는 전문(yellow/orange raft and oil/fuel slick)을 주변 선박에게 보냈다. 현재 국제 수색 구조 협약에 의해 사고 해역을 관할·지휘하고 있는 우루과이 MRCC(해난구조통제센터)의 상황보고서에도 미 초계기가 구명벌을 발견했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러나 이후 미군 측은 구명벌이 아니라 기름띠(oil slick)로 정정했다. 이에 가족들은 당시 전문에 또는(or)이 아니라 그리고(and)라고 돼 있는 데다, 미군의 우수한 장비 성능 등을 이유로 들며 사진 확인을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는 상태다.
 
가족들은 이를 위해 수차례 외교부에게 사진 확인을 요청했지만 ‘받기 어렵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한다. 실종자 가족 대표는 “사진 하나 받는 데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며 “외교부는 이를 노력하고 있는 건지 의심이 든다. 오히려 확인 시켜줘서 아니라고 반박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했다.
 
이어 “구명벌이라도 발견이 됐다면 어떻게 희망을 거두겠지만 미군 측이 발견했다고 한 이상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가족들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최근 미국 백악관과 국방부에 편지를, 미 해군에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편지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수신자로 돼 있다.

 
우루과이 MRCC(해난구조통제센터) 상황보고서. 상황보고서에는 미군 초계기가 구명벌(life raft)를 발견했다는 문구가 있다.(빨간선) <사진=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 제공>
       진전 없이 ‘답보’ 상태
“정부·선사 의지 없어” 토로

 
사고 발생 한 달이 지났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는 상황이다. 가족들은 “정부와 선사가 수색 의지가 없는 것 같다”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매일 진행하겠다고 약속했던 정부 브리핑은 이제 일주일에 1번 정도만 하고, 수색 선박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가족 대표는 “선사는 ‘배를 늘릴 계획이 없다’고 하고, 이런 상황에서 정부에게 ‘추가 투입 가능한 선박을 알아봐 달라’고 물어도 ‘없다’는 식의 답변만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지난 17일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와의 면담을 위해 총리 공관을 찾기도 했다. 며칠 전부터 외교부를 통해 면담을 요청했지만 답변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당시 경찰이 갑자기 에워싸면서 이에 항의하자 가족들을 강제로 끌어냈다고 주장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17일은 미국 펜스 부통령이 방한하던 시점이었다”고 해명하면서 “(수색에 대해) 가족들이 희망하는 한 수색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추정 물체 사진에 대해서는 “미군 측에서 당시 상황을 확인했을 때 추정 물체가 없으면 주지 않는다는 게 원칙인 것으로 안다”고 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수색과 관련해 “수색 범위가 워낙 광범위해서 기존 수색 구역 제외하고 특정 구역을 지정해 수색을 진행 중”이라며 “우리도 애 타는 마음은 똑같다. 우리가 관할하는 해상이 아니라서 선박 투입 역량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대선 정국과 외교·안보 위기 속에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건이 소외되고 있는 모습이다. 이에 가족들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최근 서울 주요 도심 몇 군데에 현수막도 설치했다. 그러나 이 중 4개의 현수막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철거돼 현재 상황 파악에 나선 실정이다.
 
가족들은 현재 선사가 마련해준 서울 중구의 한 임시 상황실에서 머물고 있다. 하지만 이 곳도 곧 나가야 할 처지에 놓였다. 다른 회사가 상황실이 위치한 해당 층을 임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5월 10일 전후로 비워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들은 향후 대응을 선사와 함께 협의해 나가고 있지만 현재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답보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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