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평양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간의 남북정상회담 합의의 가장 어려웠던 점은 김정일의 서울 답방 명문화 문제였다. 김정일이 버티자 김대중은 마지막에 인간적으로 호소했다. “나이 많은 내가 먼저 평양에 왔는데 김 위원장께서 서울에 안 오면 되겠습니까. 서울에 반드시 오셔야 합니다.” 그러자 김정일이 마침내 수락했다.

6.15 남북공동선언문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은 2001년 9월 3일부터 5일까지 북한을 방문해서 김정일에게 “중국에는 ‘온 것이 있는데 보내는 것이 없으면 예의가 아니다(來而不往非禮也·래이불왕비례야)’란 격언이 있다”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국을 답방하도록 주선하고 싶다”고 피력했다. 이는 장쩌민이 그해 APEC 정상회담에서 밝힌 내용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7년 2월5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참여정부 초기 남북정상회담이 거의 성사 단계에 갔다가 무산된 적이 있다” “내가 대통령일 때 러시아 측 제안으로 이르쿠츠크 시에서 남북한과 러시아 3자 정상회담이 추진된 적이 있는데, 내가 ‘김정일 위원장이 한국에 와야 한다. 서울이 아니면 제주도나 휴전선 가까이라도 와서 해야 한다’고 거절해 진전되지 않았다”고 비화(秘話)를 공개한 적이 있다.

2007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간에 10.4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됐다. 김대중의 회고에 따르면 노무현 임기 초에 러시아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었는데, 퇴임을 5개월 앞둔 시점에 노무현이 쫓기듯이 북으로 갔다는 얘기가 된다.
 
노무현의 정치적 후계자를 자처하는 문재인 후보는 김대중이 “서울이 아니면 제주도나 휴전선 가까이라도 와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무시한 노무현의 ‘굴욕외교’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문 후보는 한 술 더 떠서 “대통령이 되면 미국보다 북한에 먼저 가겠다”고 했다. 과연 김대중의 햇볕정책과 노무현의 굴욕에 이어 ‘제2의 굴욕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발상인데, 국민들이 대북 굴욕의 재탕이라고 하지 않을까.

대선후보의 선거 슬로건이 오락가락하면 안 된다. 문재인은 자신이 기세를 올릴 땐 ‘적폐·보수 대청소’를 외치다가, 안철수 대안론이 뜨니까 ‘대통합·대탕평’으로 비켜가다가, 홍준표가 2위로 치고 올라오니까 ‘특정 세력 궤멸’을 제기하다가, 보수가 결집하니까 ‘자유한국당도 협치의 대상’이라고 후퇴하고 있다. 조금도 진정성을 느낄 수 없고 실시간으로 표변하는 좌파의 본색(本色)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 혼란스럽다

친노의 좌장인 이해찬 공동선대위원장은 지난 4월 30일 유세에서 “극우 보수세력을 완전히 궤멸시켜야 한다”고 국민 편 가르기에 불을 질렀다. 구체적 궤멸의 대상으로는 “박정희 대통령과 관련된 사람들”이라고 못 박고, “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다음에 쭉 장기 집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뼛속까지 적개심으로 가득찬 이해찬은 오늘의 한국을 만든 주역인 ‘산업화 세력’과 자유수호의 주역인 ‘태극기 세력’, 그리고 국민의 40%를 차지하는 ‘보수세력’을 궤멸의 대상으로 낙인찍고 있다. 나아가 민주당은 ‘이명박·박근혜 9년 집권 적폐 청산’을 국정의 우선순위로 정해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에 대한 한(恨)을 풀기 위한 정치보복의 굿판을 벌리겠다는 심산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안락사 당했던 보수 정당을 기사회생시켰다. 탄핵의 연장선상에 있는 언론·방송의 편파적 보도와 엉터리 여론조사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트럼프처럼 밑바닥에서 양강 대열에 올라섰다. 탄핵의 굴레에서 보수적폐 라는 누명 프레임을 벗겨내고 안보정국으로 전환시켰다. 이처럼 홍준표는 적수공권(赤手空拳)의 개인기로 이미 절반의 성공을 이룬 것이다.

나머지 절반의 책임은 우파 유권자의 몫이다. 우파는 난국 극복과 선진 통일을 위해 하나로 결집해야 한다.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종북·강성노조·전교조의 ‘3대 적폐세력’를 타파하고, 국가대개혁을 위해 국회·언론·검찰의 ‘3대 특권세력’을 개혁하겠다는 홍준표를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
 
이제 선거전은 홍준표, 문재인 간의 양강 대결로 압축되고 있다. 유권자의 23∼30%가 선거 당일까지 1주일 사이에 투표할 후보를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 우파가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분투(奮鬪)하면 승리할 것이요, 생즉사(生卽死)의 기회주의 처신을 하면 패배할 것이다. 보수 우파의 시대적 소명은 친북좌파, 패권주의 세력의 집권을 막고 안보를 지키고 경제를 살리는 일이다. 보수의 궤멸이냐, 보수의 재건이냐. 이것은 나머지 절반의 기적을 이룰 보수우파 유권자의 몫이다. 투표는 탄환보다 강하다. 보수의 미래와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위해 범보수우파 유권자는 투표를 통한 보수 후보 단일화를 이뤄내야 한다. 투표를 포기하는 과객이 아니라, 투표에 참여하는 주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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