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세 연상의 마크롱 부인 vs 24세 연하의 트럼프 부인’ 이목 집중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한 국가의 퍼스트레이디가 됨으로써 올해 아방궁에 입성, 세계 여성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세 여인이 있다. 한국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그리고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부인 브리지트 트로뉴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각국 대통령과 어떤 인연과 능력이 있어서 이렇게 행운의 여인이 된 것일까. 그들의 특별한 인연과 내조의 방식에 대해 알아봤다.
 
 
문재인(65)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사상 처음으로 ‘캠퍼스커플(C.C)’ 출신의 퍼스트레이디가 탄생했다. 문 대통령의 아내 김정숙(64) 여사는 40여년 전 남편과 같은 대학 캠퍼스에서 만나 꽃피운 사랑의 결실을 토대로 청와대에서 부부생활의 ‘제2막’을 열었다.

청와대의 새로운 안주인이 된 김 여사는 1954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나 숙명여중·고를 졸업한 뒤 1974년 문 대통령과 같은 대학인 경희대 음대 성악과에 입학했다. 김 여사는 74학번이고 문 대통령은 경희대 법대 72학번이다.

문 대통령과 김 여사의 첫 만남에서부터 결혼까지의 연애 스토리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연상케 할 정도로 극적인 요소들이 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대학 축제 때 시작됐다. 친구 오빠가 “과대표(당시 문재인)가 하나 있다. 학교 축제나 행사에 안 나오는 사람인데 여자 소개시켜주면 나오겠다더라”며 소개해준 것. 김 여사는 당시 문 대통령이 프랑스 영화배우 알랭 들롱(Alain Delon)을 닮았다고 해서 나갔는데 문 대통령의 성의 없어 보이는 차림새에 마음이 상했고, 결국 두 사람은 인사만 나누는 사이가 됐다.

이듬해 학내에서 열린 유신 반대 시위 현장에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 최루탄에 기절한 문 대통령을 발견한 김 여사가 문 대통령의 얼굴을 닦아주면서 본격적으로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김 여사는 유신 독재 반대로 수감되고, 강제 징집돼 특전사에 배치됐을 때, 사법고시를 준비할 때도 문 대통령의 곁을 지키며 뒷바라지를 했다. 두 사람은 문 대통령이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1981년 결혼했다. 현재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김 여사의 화끈한 성격 덕분에 문 대통령과 결혼에 골인할 수 있었다. 캠퍼스 커플로 7년간 연애하며 결혼을 기다리던 김 여사가 먼저 프로포즈한 것. 지난 4월 3일 더불어민주당이 공개한 문 후보의 ‘59문 59답’에서 “프러포즈는 어떻게 했나”라는 질문에 문 후보는 “아내가 먼저 했다. 친구들과 있는데 아내가 와서 갑자기 ‘재인이 너 나랑 결혼할 거야 말 거야? 빨리 말해’라고 해서 깜짝 놀라 ‘알았어’라고 했다”고 답했다.

김 여사는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자유롭게 해줄 것 같아 좋았다”고 했다. 자유를 꿈꾸는 여성이었지만 부산에서 법무법인을 개업한 남편을 내조하기 위해 단원으로 있던 서울시립합창단을 흔쾌히 그만뒀다.

김 여사는 다소 차분하고 조용한 문 대통령과는 달리 밝고 활달한 모습으로 ‘유쾌한 정숙씨’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선거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은 이번 대선 과정에서도 김 여사의 특유의 붙임성이 빛을 발했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특유의 쾌활함으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문재인 안사람입니다”라고 소개하며 스스럼없이 다가갔다. 성악과 출신인 점을 적극 활용, 나이 든 유권자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특히 문 대통령에 대한 ‘반문(反文) 정서’가 퍼져 있던 호남지역을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꼭 방문해 바닥 민심을 열심히 훑어 ‘호남특보’라는 별명을 얻었다.

지난해 9월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1박2일로 광주 등 호남지역을 방문했고 갈 때마다 호텔 대신 허달재 의재미술관장이 운영하는 ‘춘설헌’에서 묵으며 지역 유권자들을 만났다. 대선 본선이 시작되면서는 활동 반경을 더욱 넓혀 호남뿐 아니라 충청도, 경상도 등지까지 다니며 문 당선인의 발길이 미처 닿지 않는 동네 구석구석에서 지지를 호소했다. 김 여사는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하루에만 무려 10곳에 달하는 공식일정을 소화하는 강행군으로 남편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당당하게 나이 차이
극복한 마크롱 부부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기 사흘 전인 지난 7일(현지시간) 프랑스 새 대통령에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은 1977년 12월 21일생이다. 태어난 연도만을 따지는 우리나라 언론의 계산법으로는 40세이지만 월일까지 따지는 서구식으로 계산하면 아직 생일이 되지 않아 한 살을 더 깎기 때문에 39세다.
  마크롱이 프랑스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으로 당선됨에 따라 영부인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마크롱의 부인 브리짓 트로뉴는 63세로 마크롱보다 24세 연상이다.

마크롱 부부는 20여 년 전 학생과 교사로 프랑스 아미앵의 한 사립고교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마크롱은 15살이었다. 두 사람의 인연은 고등학교 연극반에서 시작됐다. 브리짓이 담당하던 연극반에서 활동하던 마크롱은 대본 회의를 위해 매주 선생님을 찾았다. 만남이 반복되면서 둘 사이엔 애틋한 감정이 싹텄다.

안느 풀다가 쓴 ‘에마뉘엘 마크롱: 완벽한 청년’이란 책에 따르면 마크롱의 부모는 처음에는 아들이 브리짓의 딸을 좋아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을 알고 크게 놀랐다. 일부 외신에 따르면 교제를 반대한 부모는 이들을 떼어놓기 위해 고교 졸업반이던 마크롱을 파리로 보냈을 정도였다.

하지만 FR3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마크롱에게 고향을 떠나도록 권한 이는 브리짓이었다. 원인이 무엇이건, 마크롱은 떠나기 전 “나는 돌아올 것이며, 당신과 결혼할 것이다”라고 맹세했다. 두 사람은 전화통화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결국 브리짓은 남편과 이혼하고 파리로 갔고 연애 12년 만인 2007년 결혼식을 올렸다.

앞서 트로뉴는 20세 때 은행가인 앙드레-루이 오지에르와 결혼해 세바스천, 로렌스, 피펜을 낳았다. 마크롱과의 사이에선 자녀가 없다. 세바스천은 마크롱보다 두 살이 많고, 로렌스는 동갑이며, 피펜은 현재 30세다. 로렌스는 고교 시절 마크롱과 같은 학교에 다닌 동급생이다. 변호사인 피펜은 마크롱의 캠프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을 통해 브리짓은 손주 7명을 보았다.

두 사람의 ‘비관습적 관계’는 정치인의 연애·결혼에 대해 무심한 프랑스 대중의 호기심마저 빨아들였다.

‘비관습’ ‘구습 타파’는 마크롱이 이끄는 정당 ‘앙마르슈(전진)’의 정신이기도 하다. 마크롱은 2016년 4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인터넷 기반의 중도파 정당을 창당할 때부터 브리짓과의 이색 러브스토리를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해 8월 대중잡지 ‘파리마치’가 이들의 해변 데이트를 포착한 사진 이래 브리짓은 파파라치의 단골 표적이 됐다. 30대 마크롱은 60대 아내와 손잡고 거니는 모습을 ‘당당하게’ 내보였고 브리짓이 잡지 표지로 등장할 때마다 잡지 판매부수도 치솟았다. 마크롱의 인지도가 함께 치솟았음은 물론이다.

브리짓은 남편에게 정치적 조언자 역할을 했다. 이번 대선전에서도 유세에 동행해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가 하면 남편의 연설문 작성도 도왔다.

남편을 돕기 위해 2015년 교단을 떠난 브리짓은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남편이 당선되면 영부인으로서 청년 문제에 집중하고 교육 문제를 위해 싸울 것이라면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바 있다.

프랑스에서는 영부인에게 공식적인 지위가 부여되지 않지만, 앞으로 브리짓이 영부인의 역할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마크롱의 보좌진은 브리짓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여사처럼 영향력 있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마크롱은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직후 열린 자축연에서 부인을 무대로 불러 “그녀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다”고 소감을 밝힌 바 있다. 또 유세에서 “만약 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브리짓도 역할과 자리를 가지고 함께하게 될 것”이라며 부인에게 공식 직함을 부여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트럼프 부인 멜라니아
누드화보 찍은 패션모델 출신


마크롱의 부인이 24세 연상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24세 연하인 미국 트럼프(70)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가 비교 대상으로 떠올라 새삼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지난 1월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제45대 대통령이 됨에 따라 멜라니아 트럼프는 공식적으로 미국의 퍼스트레이디가 됐다.

1970년 4월 26일 슬로베니아(구 유고슬라비아) 제2도시 노보메스토에서 태어난 멜라니아는 180㎝의 큰 키와 미모를 앞세워 16세부터 모델로 활동했다. 이탈리아 밀라노와 프랑스 파리를 거쳐 26세 때인 1996년 미국으로 옮겨 모델 이력을 이어가다가 1998년 뉴욕 패션위크 파티에서 트럼프를 만났다.

당시 두 번째 부인과 이혼 절차를 밟고 있던 트럼프는 멜라니아에게 반해 적극적으로 구애했다. 바로 옆에 여자 친구가 있는데도 멜라니아의 전화번호를 알아내려고 안달이었다. 멜라니아가 끝내 전화번호를 주지 않은 건 유명한 일화다. 멜라니아는 지난해 CNN 인터뷰에서 “만약 연락처를 줬다면 나는 트럼프의 수많은 여성 중 한 명이 됐을 것이다. 며칠 뒤 내가 직접 연락해 첫 데이트를 했다”고 말했다.

처음 데이트할 때 밤새 이야기를 나눴던 둘은 이후 연인 관계를 이어오다 2004년 약혼하고 2005년 초호화 결혼식을 올렸다. 트럼프의 플로리다 별장에서 열린 결혼식 비용만 4200만 달러였다. 20만 달러 드레스를 입고 패션 잡지 ‘보그’의 화보에 등장하기도 했다. 당시 트럼프는 59살, 멜라니아는 35살이었다.

결혼하면서 미국 시민권을 얻은 멜라니아는 1년 뒤인 2006년 아들 배런을 낳았다.

모국어였던 슬로베니아어를 포함해 영어ㆍ프랑스어ㆍ세르비아어ㆍ독일어 등 5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멜라니아는 수식어마다 ‘첫’이 붙는다.

첫 이민자 출신, 첫 패션모델 출신, 대통령의 세 번째 부인으론 처음 퍼스트레이디에 오른 것 등이다. 이런 수식어에 이견을 제시하는 이도 있지만, 다음 수식어 앞에선 아무도 토를 달지 않는다. 누드 사진을 찍은 여성이 퍼스트레이디가 된 건 첫 사례란 대목에서다.

멜라니아는 패션모델 시절인 1995년과 2000년 각각 뉴욕포스트, 영국 GQ와 전신 누드 화보를 찍었다.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가장 ‘핫’한 퍼스트레이디라는 평이 주를 이룬다.

그간 백악관의 역대 퍼스트레이디는 지성과 품위를 전면에 내세웠다. 사회운동에 헌신해 남편 프랭클린 루스벨트만큼이나 존경을 받았던 엘리너 루스벨트(32대), 똑똑한 여성의 대표 격으로 빌 클린턴의 국정을 도왔던 힐러리 클린턴(42대), 아동 비만 퇴치와 공교육 강화에 전력했던 하버드 법대 출신의 미셸 오바마(44대) 등 멜라니아의 전임자들은 사회 통념상 정해져 있던 퍼스트레이디의 역할과 이미지에 충실했다.

하지만 멜라니아는 전임자들과 경력이 전혀 달라 눈길을 끌고 있다. 트럼프의 정치 활동에도 무신경한 편이다. 지난해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지지 연설에 나선 게 거의 유일한 내조였다. 하지만 미셸 오바마의 과거 연설을 표절했다는 논란에 휘말리면서 공개석상에 나오는 일이 더욱 줄었다.

미국 대통령 역사가 더글러스 브링클리는 “멜라니아는 재클린 스타일의 퍼스트레이디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정치·사회 이슈에 무신경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패션·인테리어에 애정을 쏟는 점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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