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진영 내 ‘두 번의 배신’이 보수를 몰락 시켰다!”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한국 보수의 최대 위기다. 가히 보수의 몰락이라 할 만하다. “이대로라면 현 정권이 서너 번은 더 집권할 것”이라는 말이 정가에 심심찮게 나돈다. 보수 진영은 왜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일까? ‘최순실 게이트’가 그 불씨였다면 이를 산불로 키운 이들은 바로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바른정당 의원들이라는 게 중론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 국면 당시 이들이 보여준 모습은 참여정부 때 ‘박연차 게이트’가 불거졌을 당시 똘똘 뭉쳐 방어에 나섰던 진보 진영과 확연히 대비됐다. 바른정당 의원들이 탄핵을 주도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국회 문턱조차 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조기 대선도 치러지지 않았을 것이고 12월 정상적인 대선이 열릴 때까지 보수 진영에 재정비의 시간도 주어졌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바른정당 의원 13명의 한국당 복당 파문은 보수 진영의 몰락에 방점을 찍고 말았다.

이들의 복당은 대선 정국에서 자멸해가던 유승민 후보를 동정론의 주인공으로 만들었고 한국당이 ‘보수의 심장’ TK에서조차 지지율 50%를 넘기지 못하는 믿지 못할 결과를 야기했다. 대선이 끝난 뒤에는 한국당 내 케케묵은 계파 갈등의 불씨까지 재점화시켰다. 바른정당 탈당파 13명 의원들이 보수 몰락의 ‘화약고’가 됐다는 지적이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탈당파, 가는 곳마다 분열·자충수 야기
- 親朴이든 洪이든, ‘반쪽 정당’ 불가피…


사방을 둘러봐도 자유한국당에 활로가 보이지 않는다. 자유한국당은 1997년 전신인 한나라당 당시에도 정권을 뺏겨본 경험이 있지만 지금의 외상(外傷)은 그때와 비교가 안 된다.

단순한 공수 교대를 넘어 보수와 진보라는 정치 지형도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보수’라는 정치 이념 하나만으로는 영원히 정권을 잡지 못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보수를 넘어 중도까지 영역을 넓혀야 그나마 승산이 있다는 얘기다.

탈당파 복당 파문, 계파 갈등 불씨 재점화

상황이 이러한데도 자유한국당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면서 쇄신에 박차를 가하기는커녕 되레 자중지란에 빠져들고 있는 실정이다. 바른정당 의원 13명의 한국당 복당 파문은 당 내 뇌관이었던 계파 갈등에 불씨를 붙였다. 당 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내 주류인 친박계와 복당파 13명의 위시를 받고 있는 홍준표 전 지사와의 전면전을 촉발시킨 것이다.

이들 13명 의원들이 가는 곳에는 분열과 자충수가 잇따랐다. 우선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졌을 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데 일등공신이었던 이들이 바로 이들 13명 복당파를 포함한 바른정당 의원들이다. 보수가 본격적으로 몰락의 길로 접어드는 시발점이 된 사건이었다.

이들이 ‘배신’을 택하지 않았다면 박 전 대통령은 지금쯤 구치소가 아닌 청와대에서 레임덕을 최소화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 사이 ‘최순실 게이트’로 흔들렸던 보수층도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이들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던 이유는 하나다. 친박계가 중심인 보수 진영 내 주도권을 단번에 가져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자신들은 박 전 대통령과 선을 그으며 ‘새로운 보수’를 외친다면 기존의 보수 지지층이 자신들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기대에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조기 대선 정국에서 바른정당 유승민 대선 후보의 지지율은 밑바닥을 맴돌았고 이들에게는 ‘배신자’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대선 유세 당시 유승민 당시 후보가 ‘보수의 심장’ 대구 서문시장을 찾았을 때 물벼락을 맞을 뻔했던 사건은 이들의 현주소를 분명히 알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러자 이들 중 일부 의원들의 ‘두 번째 배신’이 시작됐다. 배신의 대상은 바로 자신들이 속한 당의 대선 후보인 유승민 의원이었다. 이들은 유 의원에게 사퇴 압박을 가하는가 하면 자유한국당과 단일화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 의원의 지지율이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는 반면 자유한국당의 대선 후보였던 홍준표 전 지사의 지지율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이들은 자칫 자신들의 정치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단숨에 바른정당을 탈당해 한국당 복당 의사를 내비쳤다.

洪의 탈당파 복당 승인 자충수, 최대 수혜자는 劉

자유한국당의 대선 후보였던 홍 전 지사는 이들의 배신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는 대선 정국에서 꾸준히 바른정당과의 단일화를 주장해왔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보수가 분열돼서는 안 된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그의 속내에는 차기 당권까지 그림이 그려져 있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즉 ‘골든 크로스’의 가능성이 사실상 크지 않기에 대선 이후 당권을 노리는 홍 전 지사 입장에서는 당 내 자신의 세력을 만들어 나가는 게 급선무였고, 이런 상황에서 바른정당 탈당파 소식은 그에게 뜻하지 않은 희소식이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자유한국당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세력은 여전히 친박계다. 당의 수장인 정우택 원내대표와 최고위원들 역시 친박계다. 비박계로 분류되는 의원은 심재철, 나경원, 이철우, 강석호, 안상수 의원 정도다. 원외 위원장과 당원들은 비박계도 적지 않지만 현역 의원은 태부족인 셈이다.

때문에 홍 전 지사는 바른정당 13명 의원들을 반드시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이에 그는 대선 후보의 특권인 당헌 104조 ‘당무 우선권’을 통해 바른정당 탈당 의원들의 복당을 지시했던 것이다.

결국 홍 전 지사의 의도대로 재입당한 이들 13명 의원들은 이미 어쩔 수 없이 친洪계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홍 전 지사가 대선후보 시절 결단으로 최초 입당 결정이 났기 때문이다. 더욱이 홍 전 지사가 2020년 총선 공천까지 보장해준다는 ‘딜’을 제안한다면 이들은 기꺼이 진(眞)洪계가 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홍 전 지사가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기 위해 지불한 대가는 상상을 초월했다. 이들 탈당파에 대한 독단적인 복당 지시는 홍 전 지사가 ‘보수의 심장’ TK에서조차 득표율 50%를 넘기지 못하는 최악의 자충수가 됐다. 재집결 움직임을 보였던 보수 지지층을 또다시 분열시키고 만 것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이들에 대한 복당 지시는 박 전 대통령을 ‘향단이’에 빗댄 홍 전 지사가 탐탁지 않음에도 어쩔 수 없이 그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던 TK 유권자들에게 투표 당일 기권표를 던지게 하는 자충수가 됐다는 지적이다.

반면 이들 13명 의원들의 탈당에 최대 수혜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유승민 의원이었다. 유 의원은 단숨에 ‘동정론’의 주인공이 됐다. 당초 언론들은 이들의 탈당을 시작으로 바른정당이 공중분해될 것이라 전망했지만 유 의원은 꿋꿋이 버텼고 이 모습이 국민들의 ‘동정심’을 자극한 것이다.

13명 의원들의 복당 후폭풍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당장 제1야당으로서 활로를 모색해야 할 자유한국당에 계파 갈등 불씨를 지피면서 보수 진영을 몰락으로 이끌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이번 대선에서 어쩔 수 없이 전략적 동거를 했던 홍 전 지사와 친박계는 이들의 복당으로 인해 적당한 시점에 결별을 택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그 시점으로는 7월 3일로 예정된 전당대회와 2018년 6월 지방선거가 점쳐진다.

洪, 당 장악 후 바른정당에 또 한 번 손 내미나?

만약 전당대회에서 홍 전 지사가 당권을 장악한다면 친박계는 당에 끝까지 잔류해 투쟁을 하거나 탈당해 재창당한 새누리당에 합류하는 두 가지 선택지만 남게 된다. 지금으로서는 친박계 대다수가 탈당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어차피 잔류해도 공천을 받지 못할 바에야 탈당해 재창당한 새누리당에 합류하는 게 낫기 때문이다. 다만 친박계 중에서 핵심과는 거리가 멀었던 범(凡)친박계 상당수는 잔류해 홍 전 지사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친洪계로 변신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국면까지 이른다면 당권을 장악한 홍 전 지사는 바른정당에게 또 한번 손을 내밀 가능성이 크다. 대선 정국에서 바른정당 의원들이 통합의 전제 조건으로 내건 당시 소위 ‘친박 8적(서청원, 최경환, 윤상현, 김진태, 홍문종, 이장우, 조원진, 이정현 의원)’ 이 떠났으니 이제 돌아오라는 제안이다. 이렇게 되면 바른정당 의원들도 명분상 거절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반면 전당대회에서 또다시 친박계 대표가 탄생한다면 전혀 다른 국면이 펼쳐질 전망이다. 일단 비박계의 동요는 불 보듯 뻔하다. 차기 대선에서도 패배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더불어 대선에서 이긴다 하더라도 본인들은 찬밥 신세가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친박계가 2020년 총선에서 공천권을 장악한다면 아예 자신들을 몰아낼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극에 달할 것이다. 2020년 총선에선 이른바 ‘진박(진짜 친박) 공천’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차기 전당대회에서 친박계 대표냐 비박계 대표냐에 따라 어느 한쪽이 당을 다시 떠나야 할 상황은 불가피해졌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몰락의 길에 들어선 자유한국당이 되레 반쪽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한편 전문가들은 “향후 자유한국당 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불확실하나 분명한 것은 범(凡) 보수 진영의 정계개편이 임박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계개편이라도 해서 완전히 새롭게 거듭나야 차기 총선과 대선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 여론 역시 보수의 완전한 변신을 바라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대선 직후인 5월 10일 전국 성인남녀 1044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탄핵 국면에서 쪼개진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진로와 관련해 ‘각 당이 자체 혁신을 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응답(57.7%)이 ‘보수 혁신과 재편을 통해 통합해야 한다’는 응답(35.2%)을 앞질렀다.

국민은 보수정당의 통합보다 혁신이 더 급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대선에서 나타난 민심을 정확히 읽고 새 지향점을 제시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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