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정권 힘 빠지면서 자금 줄도 약해져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정권이 바뀌었다. 보수의 시대가 가고 진보의 시대가 왔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기관들의 물갈이가 한창이다. ‘적폐 청산’을 외쳤던 문재인 대통령은 연일 새 인물 새 정책을 선보이고 있다. 국민들의 반응도 좋다. 보수 진영에서는 “무섭다” “철저히 준비한 것 같다”는 말도 나온다. 그만큼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전 정권의 실패가 너무 컷던 탓에 문재인 정부가 반사효과를 보는 것도 사실이다. 새 정부에서 말하는 ‘적폐’는 기득권 세력이다. 관변단체도 그중 하나일 터, 보수 정권 8년은 그야말로 호시절이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뀐 지금 이들은 숨죽이며 불안한 내일을 기다리고 있다.
 
이명박 정권 거치며 몸집 두 배로 키운 자유총연맹
탄핵 정국 맞으며 예산 줄줄이 삭감 “호시절 끝났다” 

 
우리나라에는 3대 관변단체가 있다. 자유총연맹,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새마을운동중앙회다. 관변단체들은 국고를 비롯해 지자체로부터 지원금을 받는다. 이중 규모가 가장 큰 단체는 자유총연맹이다. 자유총연맹은 전국 시·도·군·구에 지부가 설치돼 있는 거대 보수우익 단체로 회원 수가 약 350만 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자유민주주의 가치확산 활동’, ‘생활 속의 자유 실천활동’, ‘한민족 상생을 위한 활동’, ‘국민의식 선진화 활동’, ‘유엔 NGO 및 국제교류 협력활동’, ‘대한민국 보수단체 총본산 역할’을 주요사업으로 정해 활동하고 있다.
 
자총 예산 약 98억 원
지난해부터 이미 예산 삭감

 
자유총연맹의 올 예산 총액은 98억 원이다. 약 4년 전에 비하면 두 배 정도 증가한 액수다. 100억에 가까운 이 자금은 대부분 국민의 세금이다. 보통 정부 지원 국비와 함께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예산으로 만들어졌다.

이명박 정부 시절 감독기관인 행정자치부로부터 매년 10억 원 안팎의 행정자치 예산을 지원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줄면서 올해는 전년 대비 50% 삭감된 2억5000만 원을 받기로 예정된 상태다.

각 지자체 홈페이지에 공개된 예산안 자료를 살펴보면 서울시는 약 8억870만 원, 경기도는 20억 원 정도의 지원예산을 책정해 뒀다.

자유총연맹의 예산이 크게 삭감된 것은 최근 김경재 총재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015년에 청와대 홍보특보를 지낸 김 총재는 지난해 11월 19일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등 보수 단체들이 서울역 광장에서 주최한 박근혜 대통령 하야 반대 집회에서 단상에 올라 “노 전 대통령도 삼성에서 8000억 원을 걷었다. 이해찬 전 총리와 이학영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술 좋게 걷어 안 걸린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김 총재는 여론이 악화되자 “노 전 대통령이 돈을 걷었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았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같은 달 22일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야당 의원들이 김 총재 발언에 대한 질타를 쏟아내며 자유총연맹 지원 예산의 전액 삭감을 주장하는 등 파문은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김 총재는 지난 19일 결국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관제데모 앞장 선 만큼
文 정부 눈치 볼 수밖에

 
자유총연맹은 지난해 2월 김 총재가 부임할 당시 ‘관권선거’ 논란이 일기도 했다. 김 총재의 전임인 허준영 총재 측은 행자부가 청와대 홍보특보 등을 지낸 ‘친박’ 김 후보를 차기 총재로 당선시키려고 불법 개입을 했다며 강력 반발했다.

자유총연맹은 관제데모 논란에도 휩싸여 있다. 지난 2015년 하반기 청와대 지시를 받아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 등 박근혜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각종 시국집회를 개최했고 이런 사실이 언론을 통해 드러났다.

문제는 정권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보수 색채가 강한 자유총연맹 입장에서는 진보 성향의 문재인 정부가 달갑지 않다. 고 노무현 대통령을 둘러싼 막말과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관제데모에 앞장섰던 자유총연맹을 문재인 정부가 좋아할 리 만무하다. 정권 초기 최대한 목소리를 자제하고 있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가 특수활동비 등을 자진 삭감하고 일자리 창출 등에 예산을 쏟아붓는 상황인 만큼 보수정권에서 누렸던 호시절은 ‘다 끝났다’는 말도 여기저기서 나온다. 자유총연맹 입장에서는 당장 국비나 지자체 예산이 줄면 조직을 유지하는 데 무리가 따른다. 350만 명에 이르는 회원을 관리하고 유지하려면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다.

일각에서는 줄어드는 국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 기업 후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소문도 돈다. 하지만 당장 연맹에 지원되는 예산이 줄지는 않을 거란 전망도 나온다. 이미 지난해에 비해 지원금이 삭감된 만큼 추가적인 삭감으로 불수 있는 여론의 역풍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각종 비리 드러난
새마을운동중앙회

 
문재인 정부 눈치 보기는 새마을운동중앙회와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도 마찬가지다. 특히 새마을운동중앙회는 전 정권의 대표 브랜드였다. 이미 지난해 국회에서 2017년도 예산 중 7천800만 원을 삭감 당해 13억1400여만 원으로 편성됐다.

이런 가운데 최근 감사원이 공적개발원조 추진 실태에 대한 감사를 진행한 결과 다양한 부실운영과 위법·부당사례를 발견됐다. 사업 대상 국가별로 현지인 또는 교민 등을 특별한 자격 요건 없이 새마을협력관으로 위촉해 협력관이 사업비를 횡령하거나 제대로 사후 관리를 하지 않은 것이다.

새마을 시범마을 사업은 행자부가 추진하는 ‘지구촌 새마을운동 사업’의 일부로 총 10억3500만 원 규모 사업이다. 지난해 기준 9개국 25개 마을을 지원했다.

‘적폐 청산’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에서 각종 새마을운동 사업은 재조정에 들어갈 확률이 높다. 그런 상황에서 각종 비리나 부실 운영 사례가 드러난 것은 악재다.

3대 관변단체 외에 그동안 다양한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던 보수단체들의 운명도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정부지원금은 둘째치더라도 든든한 지원자 역할을 해 왔던 전경련이 사실상 와해되면서 자금줄이 예전 같지 못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부 단체장들은 각종 사건에 연루돼 검찰에 구속되거나 조사가 예정돼 있어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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