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빛으로 넘실대던 에게해의 파도가 긴 해안선을 따라 밀려와 숨을 고르고 잔잔한 물결이 돼 이즈미르에 닿는다. 먼 과거로부터 오랫동안 그 바다를 포근히 안아온 이즈미르에 그 푸른 물결이 차분하게 물들고 과거의 영광이 찬란하게 스며든다.

포차Foca

포차는 이즈미르에서 차를 타고 북쪽으로 약 40분 거리에 있는 작고 아기자기한 해안지역으로 과거 이오니아의 고대도시 포카이아가 자리했던 곳이다. 기원전 3000년경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포차에는 오랜 시간 이어져온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만과 만을 잇다, 에스키 포차

이즈미르 시에서 차를 타고 포차로 가는 길. 밀크티 색 바위산과 올리브 나무가 이어지고, 배경으로 펼쳐지는 에게해는 터키석처럼 푸르다. 포차는 에스키 포차와 예니 포차로 나뉘는데 에스키는 ‘오래된’, 예니는 ‘새로운’이라는 뜻이다. 언덕 위에 오래된 풍차가 서 있는 풍경을 지나 에스키 포차에 도착했다. 
      두 개의 만으로 이루어진 에스키 포차를 넓은 만에서 출발해 해안선을 따라 작은 만으로 걸어가기로 한다. 넓은 만에는 많은 요트들이 정박해 있고 그 앞으로 바다표범의 동상이 서 있다. 고대도시 포카이아의 이름은 바다표범을 뜻하는 그리스어 ‘Phoka’에서 유래된 것. 예로부터 바다표범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태양의 신 아폴로로부터 보호를 받는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는데 오래전부터 포차 앞바다에 있는 섬들에 지중해 몽크 바다표범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자연스럽게 포차의 상징이 됐다. 
      이 작은 마을을 자신들의 삶의 터전으로 택한 녀석들. 그런 녀석들을 보호해주었다는 두 신 아폴로와 포세이돈. 작지만 한가로운 포차가 유달리 달라 보였던 이유였다. 해안선을 따라 작은 만과 넓은 만을 나누는 작은 반도로 걸어간다. 이 반도에 세워진 성벽은 1678년 오스만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세계문화유산 후보에 올라 있다. 
      돌조각들은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지만 오밀조밀하게 쌓여 있는 모양새가 더없이 단단하다. 성벽의 외곽에 대지의 여신이자 오랜 세월 포차 사람들이 신성시해온 키벨레의 사원이 있다. 여신을 새겨놓은 돌의 크기는 작지만 이곳에 들러 신의 가호를 빌었을 뱃사람들은 세상 든든한 마음으로 항해를 떠났을 것이다. 
      반도를 돌아 작은 만으로 접어드니 새로운 항구의 풍경이 펼쳐진다. 하나같이 터키 국기를 달고 있는 낚싯배들이 둥그런 만을 따라서 줄지어 서 있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레스토랑들이 서로 어깨를 맞댄 채 자리하고 있다. 세상 느긋한 포차의 고양이와 개들은 배 위에서, 거리에서 달콤한 낮잠에 빠진 모습. 바닷가 마을답게 한편에는 어시장의 모습도 보인다. 시장 입구에 물고기 그림들로 만든 포차의 이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포차의 마법, 카라타스

바다가 잘 보이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이곳 사람들이 즐겨 먹는 생선인 레드 말릿 튀김과 쥐베스라고 하는 에게해 연안의 대표적인 샐러드 그리고 밑반찬 개념의 메제를 주문했다. 
     식전 빵과 쥐베스에 올리브기름을 곁들이고, 작은 레드 말릿을 포차 사람들처럼 손으로 집어 먹는다. 고소하고 기름진 풍미가 입 안 가득 퍼지고, 다양한 종류의 메제가 뒷맛을 깔끔하게 잡아준다. 텁텁한 터키 커피로 입가심을 하고 밖으로 나오니 장바구니를 든 사람들이 눈에 띈다. 사람들을 따라가니 가는 날이 장날이다. 
     신선한 과일과 야채는 물론이고, 다양한 물건을 파는 좌판이 늘어서 있다. 우리네 시골 풍경처럼 꽃무늬 고쟁이를 입고 장을 보는 포차 할머니들의 모습이 정겹다. 자갈길을 따라 이어지는 마을에는 포차의 해안과는 또 다른 오래된 정취가 머물러 있다.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포차에서 신비의 돌, 카라타스를 밟은 이는 마법에 걸려 반드시 포차로 돌아오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 돌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고. 카라타스는 아마 포차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못다 전해들은 포차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날을 꿈꿔본다.
   베르가마Bergama

이즈미르에서 북쪽으로 약 100킬로미터 거리에 위치한 베르가마는 고대 페르가몬 왕국의 찬란한 역사를 품고 있는 도시로 문화, 예술, 철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 놓은 곳이다. 헬레니즘과 로마 그리고 비잔틴과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문화가 차례로 머물다 간 찬란한 흔적들이 여전히 베일에 싸인 채로 호기심 많은 여행자들을 맞이한다.
    붉은 신전, 크즐 아블루

터키어로 크즐은 붉은색을, 아블루는 뜰을 뜻한다. 붉은 벽돌로 지어졌기 때문에 ‘붉은 대성당’ 또는 ‘레드 바실리카’ 등으로 불린다. 요한 계시록에 의하면 소아시아의 7대 교회 중 한 곳이 이곳에 자리했었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크즐 아블루는 2세기경 로마제국의 하드리안 황제에 의해 이집트의 여신 세라피스에게 바치는 신전으로 지어진 것이며 비잔틴 제국 시기에는 기독교 교회로 쓰이기도 했다. 본토에서 상당한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이집트의 신을 모신 신전이 지어진 것을 통해 당시 이집트 신앙의 영향력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원래 붉은 벽돌로 지은 건물 위에 대리석이 덧붙어 있었으나, 현재는 대리석은 떨어져 나가고 붉은 외벽만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웅장한 위용이 인상적이다. 건물 주변으로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가 널려있고, 복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무너지지 않은 일부 문은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남아 있어 아름다운 조형미로 전성기의 모습을 상상케 만든다.
   찬란한 폐허, 아크로폴리스

헬레니즘 시대부터 일대의 종교와 문화 예술의 중심지였던 베르가마의 유산은 아크로폴리스에 집약돼 있다. 차를 타고 베르가마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의 꼭대기에 위치한 아크로폴리스로 향한다. 
  수천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건물들은 대부분 무너져 잔해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지만 그 터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당시 번성했을 도시를 떠올려보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가장 먼저 발길이 닿은 곳은 헬레니즘 건축을 대표하는 걸작, 제우스 대제단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터이다. 
  1878년 독일에 의해서 베르가마 아크로폴리스 유적과 유물에 대한 대규모 발굴 작업이 진행됐는데 이때 제우스 대제단 유적의 대부분이 바다 건너 독일로 옮겨져 지금은 베를린에 있는 페르가몬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아크로폴리스에서 가장 오래된 신전인 아테네 신전의 남아 있던 입구 부분도 통째로 베를린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어째서 그들이 이 땅의 찬란한 유적을 가지고 갔는지 진심으로 묻고 싶다. 
  제우스 제단과 아테네 신전이 자리했던 넓은 부지에 덩그러니 서 있는 몇 그루의 나무가 쓸쓸한 인상을 전한다.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지어진 원형극장은 베르가마를 대표하는 풍경이다. 위에서 극장을 내려다보면 급경사에 발이 얼어붙을 것 같이 아찔한 기분이 들지만 그와 동시에 정면으로 펼쳐지는 베르가마의 전경은 더없이 극적이다. 무대가 있어야 할 자리에 돌로 된 구멍만이 여러 개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옆에 있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신전을 가리지 않기 위해 공연 때는 간이 무대를 만들었다가 끝나면 철거하는 식으로 운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형극장 위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페르가몬 도서관 터로 이어진다. 베르가마는 오래전부터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로서, 페르가몬 도서관은 당시 최대의 장서를 보유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버금갈 정도였다. 이에 위협을 느낀 이집트가 파피루스 수출을 중단하자 페르가몬에서 그 대체품으로 처음 양피지를 생산하게 됐다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로마시대에 황제의 신전을 건축하는 것은 도시의 큰 영광이었다. 고대 도시 페르가몬도 영광스러운 명령을 받아들여 언덕 위에 위치한 아크로폴리스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하얀 대리석으로 트라이아누스 황제의 신전을 짓기 시작했고 하드리안 황제 때 이를 완성했다. 트라이아누스 신전은 아크로폴리스에서 가장 빛나는 유적이지만 역시 남아 있는 것은 일부 기둥과 신전을 받치고 있는 아치형 구조물 정도. 본디 있어야 할 자리를 찾지 못하고 조각조각 흩어져 있는 빛바랜 고대도시의 흔적들 을 바라보고 있으니, 찬란한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쓸쓸한 풍경이 때마침 먼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교차된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치유,
아스클레피온


신의 이름으로 말하노니, 죽음은 이곳에 들어갈 수 없다’. 입구에 새겨진 글귀를 지나 대로를 따라 걸어 들어가니 고대의 병원, 아스클레피온이 눈앞에 나타난다. 뿌리 부분만 남아 있는 기둥에 뱀의 형상이 새겨져 있는데, 뱀이 허물을 벗고 새 생명을 얻듯이 아스클레피온에 온 환자는 질병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 신전, 회복의 신 텔레스포루스 신전을 비롯해 환자들을 위한 도서관, 목욕탕, 극장 등이 자리하고 있어 고대의 병원이지만 현대의 기준으로 가늠해보아도 상당히 체계적인 시설이었음을 알게 해준다. 지하에 아치형으로 만들어진 통로가 있는 것이 특이하다. 천장의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바닥을 비추고 있는 모습. 아스클레피온에서는 환자를 치료할 때 정신적인 부분을 중요시했다고 한다. 
 환자들은 이 지하통로를 거쳐서 치료소로 이동했는데 좋은 목소리를 가진 의사들이 이 통로 위로 난 구멍을 통해 “너는 곧 나을 것이다. 너는 좋아질 것이다”라고 말하며 환자들에게 회복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주었다고 한다.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희망의 목소리를 들으며 환자들은 치유를 소망하고 회복에 대한 의지를 다잡지 않았을까. 물리적인 치료와 함께 삶에 희망과 소망을 전해주고자 했던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을 떠올려본다.

<사진=여행매거진 Go-O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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