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이하 국정기획위)는 역대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같은 역할을 한다. 국정기획위는 5월 22일 현판식에 이어 24일부터 22개 정부 부처 업무보고를 받고 있으며, 7월 초 ‘문재인표’ 국정운영 5개년 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할 계획이다.

통상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새 정부의 대선공약을 단기·중기·장기 국정과제로 구체화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기조를 설정하는 과업을 수행한다. 이번 국정기획위는 대통령의 탄핵에 따른 보궐선거로 출범한 비상조직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다소 걱정스런 눈길로 예의 주시하고 있다.

새 정부의 핵심 국정 기조로 제시한 ‘소득주도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비롯하여 창의력 있는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제도 개혁, 노동시장의 유연화, 가계부채 해소, 양극화 해소, 4차 산업혁명시대 기반조성 등이 새 정부의 국정 우선순위로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대 반 우려 반이라 할까. 출범한 지 열흘밖에 되지 않았는데 국정기획위에 보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첫째, 김진표 위원장은 5월 23일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국내 공공기관들은 3분의 2 정도가 영업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어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성과연봉제는 신이 내린 직장으로 불리는 공공기관의 ‘철밥통’과 ‘복지부동’ 풍토를 깨기 위한 공공개혁 방안이며, OECD 회원국의 3분의 2가 도입한 제도이다. 개혁을 앞세운 정부가 개혁의 반대 방향인 수구(守舊)로 복귀하는 것을 국민이 어떻게 볼까. 이제 겨우 자리 잡아가고 있는 성과연봉제 후퇴는 안 된다.

둘째, 국정기획위가 각 부처에 “과거 정부 정책을 평가하고 새 정부 기조에 따른 개선방안을 제시하라”고 주문했다 한다. 어떤 정권도 공과(功過)가 있을 수 있다. 대북·외교 정책 등 국정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분야까지 모조리 적폐(積弊)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반성문을 쓰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국정개혁의 선봉에 서야 할 관료들을 군기잡고 알아서 기라는 엄포는 완장 찬 점령군이나 홍위병들이 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이런 억압적 분위기 속에서 창의적이고 합리적인 개혁방안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라 하겠다.

셋째, 김진표 위원장은 5월 27일 언론 인터뷰에서 “(재계가) 압박으로 느낄 땐 느껴야 한다”는 전날의 발언에 이어 “재벌 기득권에 대한 반성을 먼저 해야 한다”며 4000여 개 기업을 회원으로 둔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을 재차 압박했다. 발단은 경총의 김영배 부회장이 5월 25일 경총포럼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획일적으로 추진할 땐 산업 현장의 갈등이 심해질 것”이라며 “회사별 특성이나 개별 근로자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비정규직은 안 된다’는 인식은 현실에 맞지 않다”고 얘기한 것이었다.

경총의 회원사 90%는 중소기업이고, 우리나라 비정규직 644만 명의 95%가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비정규직 해소가 어려운 쪽은 공기업과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들이다. 경총 부회장은 중소기업을 대표해서 “정규직 전환 요구로 중소기업들은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는 원론적인 문제제기를 할 수 있고, 경제계의 고충을 들어주는 것이 소통(疏通)이고 정부의 역할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강제로 바꾸는 것 보다 더 시급한 일이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를 해소하고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추진하는 일이다. 한국(2016년 기준 32.8%)보다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일본(2015년 37.5%)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아니라 불합리한 대우 차이를 좁히는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국정기획위의 2개월 활동이 문재인 정부의 성패를 좌우한다. “완장 안 된다”던 김진표 위원장이 군기반장으로 변신하고 있는데, 국정기획위는 더 늦기 전에 새로운 활동좌표를 설정해야 한다. 우선 실현 불가능한 포퓰리즘 공약을 걸러내 폐기(廢棄)해야 한다. 표를 얻기 위해 한 선거용 공약이었음을 국민들에게 솔직히 고백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벌써부터 진보 좌파 진영에서 청와대 인사까지 ‘감 놔라 배 놔라’ 하고 있다. 강성 귀족 노조와 전교조 등에 휘둘려서 정책의 우선순위가 뒤바뀌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에 반대한 60% 국민의 요구도 아우르는 정책을 내놔야 국민통합이 된다.

87년 민주화 이후 직선제로 당선된 대통령들은 모두 ‘성공한 대통령’을 넘어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본인들의 희망과는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것은 ▲짧은 임기 ▲단임제에 따른 조기 레임덕 발생 ▲SNS 등 반대 선동 ▲종편 등 언론의 포퓰리즘적 폭로 ▲복지수요 증가 등을 들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장기적인 국가계획 추진이 어렵다는 점과 도덕적 우월감에 기초한 ‘우린 다르다’는 선민의식(選民意識)이 정권의 성공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최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 ‘문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잘할 것’이라는 응답이 88%다. 출발이 좋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해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관료를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동반자로 삼고, 과거 정권의 공과(功過)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실패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새 정부의 적폐청산이 보수정권 9년 지우기의 ‘한풀이’ 정치보복으로 비춰진다면 민심이 떠나게 된다. 새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정당화하는 것만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독선과 오만은 실패의 첩경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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