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커피의 맛은 ‘쓰다’라고 이야기 한다. 그런데 커피가 가지고 있는 맛은 쓴맛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신맛, 짠맛, 감칠맛, 심지어 단맛까지 가지고 있다. 혀가 느끼는 모든 맛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복합적인 맛을 가지고 있는 커피의 맛을 제대로 느끼며 마시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에 처음 원두커피의 붐이 시작된 건 1999년 이대 앞에 1호점을 열었던 스타벅스의 진출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인스턴트커피에 길들여져 있었던 우리의 입맛에 쓰고 떫은 듯 한 원두커피는 생소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맛이었다. 그러나 색다른 커피음료라는 개념과 매장 인테리어가 주는 편안함 그리고 차는 자리에 앉아 마셔야한다고 생각했던 고정관념을 깨고 들고 다니면서 마실 수 있는 커피라는 개념은 그야말로 획기적이었다.

이후 커피시장은 맛을 떠나 새롭고 강렬한 테이크아웃 문화를 창조해냈고 커피산업을 넘어 외식산업 전반에 걸쳐 테이크아웃 문화로 발전하게 되었다. 지금도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실 때면 이동을 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일회용 잔을 이용하여 커피를 마신다.

우리는 일회용 잔으로 마시는 커피에 매우 길들여져 있다. 어쩌면 처음 원두커피를 마시게 되면서 가장 매료되었던 문화였기에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커피는 매우 민감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종이컵에 담기면 그 맛을 다 보여주지 못한다.

커피는 쓴맛으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다양하고 매력적인 맛을 가지고 있는데 종이컵의 향이 원두의 향을 가려버리기 때문이다. 황금색 크레마가 올라가 있는 에스프레소를 도기잔에 마셔본다면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신선한 원두와 숙련된 바리스타의 솜씨로 만들어진 에스프레소는 원두가 가지고 있는 상큼한 과일 향과 고소한 아몬드, 달콤한 카라멜의 맛을 적은 양으로도 충분히 표현을 해낸다. 그래서 커피는 잔의 선택도 매우 중요하다. 어느 잔에 담기느냐에 따라 맛의 차이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커피 잔은 두께가 일정하고 열전도율이 낮으며 입이 닿는 전(입이 닿는 부분) 부분이 두툼한 투박하게 생긴 잔이 좋다. 도자기를 빚는 장인들이 잔을 만들 때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이 바로 ‘전’이다. 전의 두께와 모양새는 차가 입으로 흐를 때 혀에 가장 처음 닿는 부분을 결정해준다. 그만큼 커피 맛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이 바로 잔이다.

식품의약품 안전처에 따르면 2016년 국내 일회용 컵의 사용량은 약 166억 개로 1인당 연간 소비량은 240개, 직장인 하루 소비량은 평균 3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 7년간(2009~2015) 일회용 컵 사용량은 약 2억4천만 개가 증가(환경부발표) 했다고 하니 일회용 컵의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대부분 커피를 음용할 때 습관적으로 사용을 하기도 하지만 일회용 컵이 주는 편리함과 함께 바쁜 일상에 따뜻한 커피가 함께한다는 안도감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잠시의 시간을 내어 투박한 도기잔에 방금 내린 에스프레소 한잔과 온전하게 만나보기를 추천한다. 쓴 맛에 담긴 달콤하고 향긋한 과일 향은 잠시 복잡한 현실을 잊게 해준다. 커피 한잔의 미학은 그릇의 미학이기도 하다.

이성무 동국대 전산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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