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림 부친, 김해림(왼쪽부터)
-뒷바라지에 부모들 생업포기…자식 성공위해 방해 공작도 서슴지 않아
-과도한 골프대디 부작용 속출…선수들 경기력 향상에 걸림돌 우려 제기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올 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의 간판스타인 김해림이 돌연 사과문을 발표하며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특히 그는 경기 결과가 아닌 자신의 아버지 문제로 대신 사과해야 하는 곤욕을 치렀다. 이처럼 한국 골프가 성장하면서 일명 ‘골프 대디’ 문제 역시 확산되는 양상이다. 스타 골퍼 이면에 감춰진 골프 대디의 그림자를 살펴봤다.

 
KLPGA에서 다승·상금 선두를 달리고 있는 김해림은 지난달 30일 KLPGA 홈페이지 통해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KLPGA 팬들과 모든 관계자 여론, 그리고 동료 프로 선수와 그 가족분들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전했다.

김해림은 또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조금 더 성숙한 모습으로 인사드리겠다”며 머리를 숙었다.  이처럼 김해림이 사과문까지 올린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아버지가 ‘갈질’ 논란에 휩싸이면서다.

김해림의 아버지는 지난달 초 KLPGA투어 교촌하니 레이디스 오픈이 열린 충북 충주 동촌골프클럽 주차장에서 매니저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등 부적절한 행동으로 물의를 빚었다.

특히 김 선수의 아버지는 매니저를 향해 목소를 높였고 이 과정에서 차 왼쪽 앞바퀴로 매니저의 발을 깔고 지나가기까지 했다.

당시 목격자에 따르면 김해림의 아버지는 “쇼하지 마라”고 소리치며 다리를 절룩이는 매니저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기까지 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이번 사건은 매니저가 신고를 포기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이 같은 ‘골프 대디’들의 지나친 행동은 시즌 내내 구설에 오르고 있다. 더욱이 이번 사건의 경우 피해자인 매니저는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을 수 있어 골프 대디의 갑질에도 묵묵히 참아야 하는 입장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또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선수들이 감당해야 한다. 김해림은 KLPGA투어 선수 중 유일하게 ‘아너스 소사이어티(1억 원 이상 기부자 클럽)’ 회원에 가입하는 등 ‘기부천사’로 알려졌지만 이번 논란으로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
 

가족 논란에
선수들만 애간장


 
장하나 부친, 장하나(왼쪽부터)
골프 대디의 문제는 곳곳에서 드러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싱가포르에서 발생한 일명 ‘가방 사건’의 경우도 골프 대디에서 비롯된다.

당시 장하나의 아버지는 싱가포르 공항 에스컬레이터에서 짐을 떨어뜨렸는데 공교롭게도 그 짐에 전인지가 맞아 엉덩이뼈 부상을 당했다.

결국 전인지는 치료를 위해 몇몇 경기 출전을 포기하는 등 큰 피해를 봤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전인지의 아버지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장하나 측으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가 없었다”고 비난했고 장하나 아버지는 고의성이 없었다고 반박하는 등 큰 갈등을 빚었다.

이에 선수들이 나서 진화에 나섰지만 장하나 역시 온갖 비난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으로 두 달간 투어를 쉬는 등 결국 선수들이 피해자가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8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한 여자골프 선수들은 팀워크를 위해 합숙을 하기로 했지만 한 선수의 아버지가 “왜 내 딸이 합숙을 해야 하냐”고 항의해 논란을 일으켰다.

최근 LPGA투어에서 활약하고 있는 유명 프로 골퍼의 아버지가 16년간 세금 3억여 원을 고의 체납한 사실이 알려지며 공분을 사기도 했다.

이 프로 골퍼의 아버지는 “나는 수입이 없어 세금을 못 낸다. 프로 골퍼인 딸이 돈을 버는 것이지 나는 돈이 하나도 없다”고 주장했지만 이 선수의 아버지는 골프연습장을 운영하고 있고 1억7000만 원짜리 최고급 수입 승용차를 월 400만 원에 리스로 타는 데다 해외 여행도 자주 다니는 걸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해당 선수는 최근 LPGA 투어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등 절정의 기량을 보이고 있지만 아버지 때문에 그를 향한 여론은 차갑기만 하다.

필요한 내조
뜨거운 감자로 전락


 
전인지 부친, 전인지(왼쪽부터)
박세리가 LPGA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이후 한국 골프계도 거듭 성장하면서 스타 선수들을 내조해온 골프 대디들 노력이 부각된 바 있다.

골프 선수로 성장해 프로에 입문하기까지는 대략 8억~10억 원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가운데 재정적 문제를 떠나 선수들의 활동거리나 시간이 여의치 않아 가족들의 내조가 필요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실제 골프 선수들은 1년 내내 장거리를 이동하며 3~4일씩 대회를 치르고 있다. 지난해 여자골프투어의 경우 미국은 35개, 일본 38개, 한국 33개 대회를 소화할 경우 겨울인 1~3월을 제외하고 매주 대회 출전과 이동으로 쉴 틈이 없는 살인적인 일정을 자랑한다. 

이 때문에 골프 선수의 부모들의 삶 역시 자식들에게 전념하는 모양새다. 골프 대디의 원조 격인 박세리의 아버지 박준철 씨의 경우 코치, 운전사, 매니저, 캐디를 겸했다.

박인비도 마찬가지, 그의 부친은 미국 2부 투어에서 뛸 당시 사업체를 접고 약 5개월간 직접 캐디가방을 멜 정도였다.

지난해 LPGA투어 첫 승을 거둔 최운정의 부친 역시 경찰관 명예퇴직 후 2008년부터 지금가지 캐디백을 메고 있고 장하나의 부친도 구급약과 음식물 등 딸이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전인지의 아버지도 ‘잘 나가던’ 사업체를 넘기고 딸 뒷바라지에 나섰다. 요즘 잘 나가는 선수들 대부분은 가족들의 희생으로 탄생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선수들의 골프 대디 열풍은 미국 현지에도 불고 있다. 미국 선수 폴라 크리머의 부친은 정년퇴직 후 딸을 적극적으로 뒷바라지하고 있다.

모건 프레슬 역시 할아버지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또 타이거 우즈의 경우도 그를 ‘골프 황제’로 키워 낸 건 다름아닌 아버지 얼 우즈의 역할이 컸다.

다만 이 같은 골프 대디의 뒷바라지는 엉뚱한 데서 불협화음을 내며 우려를 낳고 있다.

골프 대디 세계에서는 ‘불가근 불가원’이라는 말이 불문율로 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경쟁관계라서 서로 친한 척도, 싫은 척도 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일부에선 ‘방해공작’도 서슴지 않는 경우가 목격된다.

선수생활 후 지도자로 활동하는 한 관계자는 “골프 선수들은 특히 소리에 민감한데 샷 하기 직전에 소음이 발생해 진원지를 살펴보면 경쟁 선수의 아버지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방해 행동이라는 의심은 들지만 경기 중이고 (고의성을) 입증할 수 없어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고충을 드러냈다.

지난해 벌어진 가방 사건의 경우도 골프 대디들의 과도한 경쟁의식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별난 자식사랑
보상심리로 변질


 
리디아 고
물론 이 같은 잡음에 대해 관계자들은 골프인들과 선수 가족들 사이에서 스스로 자성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돼 실제 현장의 분위기는 많이 개선됐다고 말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들어 선수나 가족 관계에서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다. 회사마다 사정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체로 선수 혹은 부모님들과 트러블은 거의 없고 사이가 좋은 편으로 알고 있다. 과거 몇몇 사건 이후 분위기가 더 조심스럽고 선수들도 그렇다. 그래서 이번 일(김해림 사건)은 조금 특별한 케이스인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한국 부모의 유별한 자식 사랑은 선수들이 성인이 된 후에도 이어지면서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세계 최정상에 앉아 있는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는 지난 시즌 이후 세계적인 골프 교습가인 데이비드 레드베터 뿐만 아니라 캐디, 골프클럽을 교체하는 등 부진을 떨치기 위해 초강수를 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레드베터는 리디아고의 부모가 지나치게 간섭했다는 등 폭로전이 이어져 논란을 빚었다.

레드베터는 “리디아 고의 부모는 언제 자야 하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어야 하는 지까지 일일이 말해준다. 골프에 대해 잘 모르는 리디아 고의 아버지가 딸의 스윙에 대해서도 참견했다”며 “리디아가 자신의 인생·골프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는 부분을 늘려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애니카 소렌스탐도 “내가 쉴 때는 골프를 생각하지 않고 인생을 즐기려 노력한다. 그러나 한국 선수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표한 적이 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관계자들은 이제는 한국 골프도 해외뿐 아니라 국내투어에서도 보다 체계적으로 선수를 지원하고 가족의 어려움을 덜어줄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또 프로에 입문한 이후에는 선수들 스스로 언론과 팬을 응대하는 것부터 자신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는 것까지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며 해외에서 한국 선수들을 두고 마치 골프만 치는 ‘스윙 머신’같다고 말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골프 대디들이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KLPGA 측은 “이번 논란(김해림 사건)이 고의성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 관계를 확인한 후 상벌위를 여는 등 후속조치를 검토하겠다”면서도 “김해림의 아버지로부터 당분간 골프장 출입을 하지 않겠다는 연락이 왔다. 과도한 경쟁과 대립으로 경기에 지장을 주지 말 것을 선수와 골프 대디들에게 요청하고 이에 대한 교육도 더 철저히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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