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경기서 단 1승도 챙기지 못한 슈틸리케…경질됐지만 연봉은 고스란히 챙겨

-안일하게 방치한 협회, 반복된 문제 발생에도 대안 없이 소방수 찾기에만 급급

 
카타르전 <뉴시스>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카타르전 후폭풍을 넘지 못하고 끝내 물러났다. 대한축구협회는 슈틸리계 감독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새 사령탑 찾기에 돌입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 역시 협회의 안일한 대응과 승부에 집착해 온 잘못된 관행이 빚어 낸 위기라는 점에서 국민적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감독 경질로 책임 회피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에는 어떤 해법도 내놓지 못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2년 9개월간 A매치 대표팀을 이끌어온 슈틸리케 감독이 사실상 경질됐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15일 파주 NFC(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에서 기술위원회를 열고 슈틸리케 감독과 상호 합의하에 계약을 종료했다고 밝혔다.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슈틸리케 감독이 유소년 축구 저변 확대, 지도자 교육 등 여러 면에서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애썼지만 최종예선 성적이 우리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며 “감독과 상호 합의로 계약을 종료하기로 했다. 감독에게는 미리 알렸다”고 전했다.

이로써 슈틸리케 감독은 2014년 9월 부임한 이후 한때 ‘갓틸리케’로 불리는 등 국민적 호응을 이끌어냈지만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부진한 모습으로 일관하면서 결국 지휘봉을 내려놓게 됐다.

이번 경질은 카타르 전의 패배가 결정적이었다. 앞서 한국축구대표팀은 지난 14일 열린 카타르 원정경기에서 2-3으로 패하며 충격을 안겼다. 더욱이 슈틸리케 호는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원정 4경기에서 1무3패라는 극심한 부진을 보였다. 또 이날 사상 처음으로 한 경기에서 3실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더욱이 슈틸리케 감독은 계속되는 원정경기에서의 부진에 대해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면서 실망감을 키웠다.

지난해 9월 열린 시리아전에서는 상대의 밀집수비에 고전하며 무승부를 기록했고 이란 원정에서는 상대 기세에 눌려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참패했다.

이 같은 부진은 중국 원정경기서 반복되며 월드컵 예선에서 사상 처음으로 중국에 패하는 수모를 당했다.

지난 3월 슈틸리케 감독은 재신임을 받았으며 카타르전을 앞두고 “국민들이 믿어주시고 힘을 주신다면 더 잘할 수 있고 좋은 경기가 가능하다”고 말했지만 참담한 결과를 내놓으며 월드컵 본선행에 찬물만 끼얹게 됐다.

 
협회 골든타임 놓치고
참사만 반복
울리 슈틸리케 감독<뉴시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슈틸리케 감독이 물러났지만 남은 일정과 본선 진출 문제에 대해 협회 측은 마땅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특히 슈틸리케 감독 사퇴는 협회 측의 안일한 태도와 잘못된 관행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축구협회는 사태가 악화되기 전 문제를 해결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지난 3월 중국전 패배 이후 슈틸리케 감독 문제를 논의했지만 기술위원회는 한 번 더 믿어보겠다는 뜻을 고수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카타르 원정까지 3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던 상황이었기에 협회 측의 안일한 결정으로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지적했다. 또 이미 지난해 10월부터 제기된 슈틸리케 감독의 지도력 문제에도 안일한 대처가 화를 키웠다며 당시 후임 인선까지는 아니더라도 원론적으로 후임자 명단을 만들어 대비했어야 했다는 아쉬움도 나오고 있다.

실제 이 위원장은 “과거에도 선수들이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월드컵에 진출했던 저력을 믿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기로 결정했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발언과 결과는 A조 최약체인 카타르에게 33년 만에 패배를 당하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면서 안일함이 도마에 올랐다.

물론 이 위원장은 슈틸리케 감독과의 계약해지를 밝히면서 스스로 사퇴했지만 당장 기술위원장부터 공석이 되며 공백이 커지게 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와 함께 협회 측은 이 같은 문제를 2010 남아공 월드컵 이후 반복하고 있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남아공 월드컵 이후 대표팀을 이끌었던 조광래 감독은 축구팬들의 큰 지지를 받으며 2014 브라질 월드컵까지 이끌 것으로 보였지만 레바논(월드컵 3차예선 1-2 패배), 일본(친선 경기 0-3 패배) 원정 참패 등으로 물러났고 이 바톤을 K리그 최고의 감독으로 손꼽히는 최강희 감독이 이어 받았지만 최종예선까지만 이끌고 물러났다.

이후 월드컵 본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 주역인 홍명보 감독이 소방수로 나섰으나 본선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는 초라한 성적으로 퇴장했다.

특히 감독들의 원칙 없는 선수 선발과 무너지는 조직력에서 반복되는 한국 축구의 문제점은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고 이를 수습할 마땅한 사령탑조차 찾지 못하는 협회의 근시안적인 행보가 참사를 반복하고 있는 상황이다.


염려되는 차기 감독,
선택 폭도 좁아져

 

여기에 선수들 간의 내부 파열음도 대표팀의 성적 부진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부 선수들의 경우 태극마크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지난해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고 유독 원정에서 균열의 강도가 높았다.

또 팀 내 ‘세대 단절’를 실감케 할 정도로 끼리끼리 몰려다니는 행태가 곳곳에서 발견되면서 감독들이 원하는 ‘원팀’이라는 명제에는 한참 부족했다. 이 때문에 슈틸리케 감독을 비롯해 외국인 감독들은 주변인에 불과하며 팀을 장악하기에 역부족이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이에 새 사령탑을 맡을 감독후보군을 두고 기대보다 염려가 앞서고 있다.

우선 이 위원장은 퇴진을 의사를 밝히며 시간상 국내감독들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차기 감독 풀은 상당히 축소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최종예선뿐 아니라 월드컵까지 함께할 감독이 왔으면 한다. 기본적인 역량이 있는 사람이 선발될 것이다. 위기관리능력이 중요하다. 선수들을 심리적으로 안정시키고 경기 준비 등에서 선수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면서 남은 시간 문제 등을 고려할 때 국내 감독을 선임하는 것이 적합다는 뜻을 전했다.

특히 이 위원장은 기술위원장을 사퇴하며 협회 차원의 쇄신에 방점을 찍었다. 또 지금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조기에 수습하고 선수들을 통합할 감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용수 기술위원장<뉴시스>
   이 같은 의중에 따라 차기 신임감독 후보로 정해성 감독 대행체제를 비롯해 신태용 감독,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최용수 전 장쑤 감독 등이 물망에 올라있다.

이 가운데 허 부총재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허 부총재는 이미 두 차례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했고 2010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4승 4패(승점 16점)라는 성적으로 통과했고 본선 조별리그에서 1승 1무 1패로 월드컵 역사상 원정 첫 16강 진출에 성공한 바 있어 1순위로 꼽힌다.

다만 현장 경력의 공백이 큰 단점으로 떠오른다. 허 부총재는 2012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직에서 성적 부진으로 물러난 이후 5년 가까이 현장에서 지휘봉을 잡지 않았다. 당장 이란·우즈베키스탄과의 2연전을 준비해야 하는 만큼 대비가 쉽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물망에 오른 최 감독은 K리그에서 능력을 입증했지만 최근 장쑤에서 성적 부진으로 인한 경질이 발목을 잡고 있고 대표팀 경험이 아예 없다는 점도 단점으로 꼽힌다.

이에 반해 신 감독은 최근까지 슈틸리케 대안으로 뽑혔을 만큼 팀 내부 사정에 해박한 데다 현장감각도 살아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 신 감독이 ‘형님 리더십’으로 짧은 기간에 선수단을 장악하는 모습을 보여줘 혼란스러운 대표팀을 수습할 수 있다는 기대가 쏠리고 있다.

다만 신 감독 역시 지난 U-20 월드컵에서 용두사미 논란을 불러일으켜 토너먼트 경기 때마다 번번이 한계를 노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고비마다 전술적 자충수와 무리한 경기 운영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는 게 약점으로 꼽힌다.

이처럼 후보군 모두 장단점이 있어 협회 차원에서 쉽게 결정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관계자들은 하루빨리 새 사령탑을 결정해 혼란에 빠진 대표팀을 수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또 본선 진출 시 팀을 이끌어갈지는 이후 논의해도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 한국은 월드컵 최종예선 A조에서 4승 1무 3패(승점 13점)으로 이미 본선행을 확정한 이란(승점 20점)에 이어 조 2위다. 하지만 3위인 우즈베키스탄(승점 12점)과의 격차는 불과 1점에 불과해 남은 두 경기 모두 승리해야 자력으로 러시아행을 확정지을 수 있어 본선 진출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한편 슈틸리케 감독은 자진사퇴가 아닌 경질을 선택하면서 잔여 연봉은 고스란히 챙길 것으로 보여 또 다른 논란을 남기게 됐다. 슈틸리케 감독은 카타르전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자진사퇴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이는 경질을 예상했지만 계약 조건 때문에 자진사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초 슈틸리케 감독은 협회와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까지로 계약했다. 단,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A조) 마지막 경기인 9월 5일 우즈베티스탄전까지가 계약기간이 된다.

협회는 지난 15일까지도 세부 계약 사항을 밝히지 않았지만 이 같은 내용을 명확히 설명한 만큼 중도 해지해도 남은 연봉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자진사퇴의 경우 감독이 모든 책임을 지기 때문에 잔여 연봉을 받을 수 없지만 경질의 경우 협회 또는 클럽이 책임을 지기 때문에 잔여 연봉을 지급하게 된다.

결국 슈틸리케 감독은 불명예라는 치명상을 입었지만 약 20억 원가량의 연봉은 챙길 것으로 보여 결국 대표팀만 실망과 상처를 떠안게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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