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활용’ vs ‘문화재 훼손’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뜨거운 감자로 논란이 됐던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다시금 시끌시끌하다. 설악산은 천연보호구역, 국립공원, 백두대간보호구역,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등으로 지정돼 여러 측면으로 보호받고 있는 명소이지만 지역 주민들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개발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설악산을 활용하려는 측, 지키려는 측 모두 심상치 않다. 또 최근에는 문화재청 내 전문가들인 문화재위원들의 사퇴가 잇따랐다. 일요서울은 이들이 내는 목소리와 잇따른 사퇴 원인에 대해 살펴봤다.

양양군, 20여 년에 걸친 주민들의 ‘숙원사업’···“문화재청 결정 납득 어렵다”
문화재위원 “문화재 훼손 뻔히 보여···이럴 거면 문화재위원 왜 있어야 하나”


설악산은 1965년 천연기념물 171호로 지정된 천연보호구역이다. 천연기념물 217호로 지정된 산양을 비롯해 수달, 하늘다람쥐, 까막딱따구리, 황조롱이, 붉은배새매 등 다수의 천연기념물이 서식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 설악산은 세계자연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정부는 이미 1990년대부터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추진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 강원도 양양군이 추진하는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천연보호구역을 직접 관통하도록 계획하고 있다. 대규모 관광객을 설악산 상부로 실어 나르며 환경훼손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환경‧시민단체 등에서는 세계자연유산에 인공구조물인 케이블카를 등재하는 것이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중국의 경우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지역에서 케이블카 같은 인공구조물을 설치해 사회적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 중국 장가계의 경우 승강기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조직위원회에서 경고를 받아 세계문화유산목록에서 제명될 위기에 놓인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현상 변경 ‘불허’
무시됐다?

 
앞서 2015년 8월 정부시범사업으로 승인받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의 문화재 ‘현상 변경 허가’를 받아야 한다. 문화재위원회는 지난해 현장 조사와 심의 등을 거쳐 ‘불가’ 판정을 내렸지만 양양군은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에 불복해 올해 3월 중앙행정심판위원회(중앙행심위)에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양양군은 청구서를 통해 “정부의 필요성과 주민의 숙원사업으로 20여 년에 걸쳐 사회적 합의에 의해 결정된 사업을 문화재청이 납득하기 어려운 사유로 불허가한 것에 대해 처분 과정에 위법성이 있고, 비례의 원칙을 위반하고 재량권의 한계를 일탈하거나 남용했다”고 주장했다.

또 동물, 식물, 지질, 경관 등 4개 분야 불허가사유에 대해 객관적 사료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반박한 바 있다.

중앙행심위는 사실관계와 쟁점 확인 등을 위해 지난 4월 27~28일 이틀간 양양을 방문해 설악산 현지와 양양군청에서 현장 증거조사를 실시했다.

양양군에서도 지난 15일 최종심의를 대비해 동물, 식물, 지질, 경관 등 관련 분야 전문가와 함께 입증 자료와 논리를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이날 중앙행심위는 양양군의 손을 들어줬다. 중앙행심위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를 위한 문화재 현상변경허가거부처분취소청구 사건에 대해 심리한 결과, 문화재청의 거부처분이 부당하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 같은 중앙행심위의 결정에 환경‧시민단체들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이들은 경제적 측면까지도 비판했다.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과 케이블카반대설악권주민대책위 등은 “양양군이 모 업체와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계약을 체결한 후, 행정자치부에 투자심사를 의뢰, 지방재정투자사업 심사규칙 규정을 위반했다”며 “문화재현상변경 허가를 받지 않고 설비구매계약을 체결해 사업이 중단되면 최대 36억2697만 원의 손실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양양군은 “실시설계 전 지방재정 투자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심사규칙을 위반한 것은 맞지만 평창동계올림픽 개최에 맞춰 사업을 준공해야 한다는 행정목표가 있어 사업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한 조치였다”며 “앞으로 제반 절차를 엄격히 준수해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해명했다.

또 문화재현상변경 허가 전 설비구매계약에 관해서는 “국내에는 자동 순환식 케이블카 설비를 설계할 수 있는 업체가 없어 일반적으로 해외 업체와 기술제휴를 해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며 “개략설계로 사업을 추진하면 환경영향평가, 문화재현상변경 허가 등의 절차에 부실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만큼 전문 외국 업체와 계약을 체결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환경단체 등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2015년 8월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의 날치기 승인’, ‘환경영향평가서의 부실‧불법 논란’, ‘경제성보고서의 위법 논란’ 등으로 사회적인 갈등과 논란을 일으켜 온 대표적인 국토난개발 사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화재청
“사퇴 만류 중”

 
파열음이 들려오는 곳은 환경‧시민단체뿐만이 아니다. 문화재청 내에서도 각 분야 최고전문가들인 문화재위원들이 중앙행심위의 결정에 반박해 사퇴를 표명한 것이다. 지난 15일 문화재위원회 위원 2명이 사퇴서를 제출했다. 이어 지난 19일에도 위원 1명이 사퇴의사를 밝혔다.

현재 사퇴서 제출 및 의사를 밝힌 이들은 총 3명으로 문화재위원회 천연기념물분과 전영우 위원장, 김용준 위원, 이상석 위원이다.

이 중 김용준 위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사퇴 표명에 대해 “문화재 손상이 염려되면 (문화재위원회에서 현상변경허가에 대해) 부결하게 돼 있다. 따라서 부결을 진행했던 것인데 이번 행정심판에서 전문가들인 우리의 의견, 우려사항은 사실상 고려하지 않았다”며 “지역주민들의 입장(경제 활성화)에서 볼 때는 이해되는 일일 수 있으나 영구적으로 보존해야 하는 동식물의 서식지인데 훼손을 감안하고 허용된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문화재) 활용이라는 것이 문화재가 온전히 보장된다는 조건에서의 활용이지 문화재가 훼손되는 상황이 예견됨에도 불구하고 진행한다? 이것은 사실 말이 안 되는 것이다”라며 “(이럴 거면) 문화재 위원들이 왜 있어야 하느냐. 그야말로 전문가들의 의견이 무시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사퇴서를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또 “설악산은 동물 분야에서 볼 때 시간을 알 수 없는 오랜 세월 동안 산양이 보존돼 왔던 곳이다. 또 최적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암석지와 암반지역으로 돼 있어 사람이나 천적으로부터 잘 피할 수 있으며 먹거리도 풍부하다. (하지만) 소음이나 진동이 발생하면 산양은 신속히 도망가지 못한다. 그야말로 철장 없는 ‘우리’와 다름없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현재 개인적인 문제라기보다는 (문화재위원) 몇 분이 사퇴를 표명했다. 그분들과도 서로 의논해 봐야 하고 섣부르게 (이렇다 할) 결정을 내릴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상황을 더 지켜봐야겠다”고 덧붙였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현재 (세 명의 사퇴 이후) 달라진 부분은 없다. (현재는 사퇴를 표명한 위원들에게) 만류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문화재위원들의 잇따른 사퇴 원인에 대해서는 “(위원분들이) 전문성을 가지고 (불가 판정을) 했으나 중앙행심위에 고려되지 않았으니 사퇴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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