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업체 울고 신재생 웃는다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국내 첫 원전이었던 고리1호기가 지난 19일 0시를 기점으로 가동을 멈추면서 여론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 가동 중단을 원했던 지역민들이 '환영'의 뜻을 밝혔다면 일부 관련 업체들은 "생계에 위협을 받게 됐다"며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탈핵 독트린'을 천명하며 탈원전 시대의 문을 열었지만, 안정적 전력 수급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많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일요서울은 탈원전 선언에 따른 각계의 온도차를 알아본다.


 원자력발전설비 기업 타격 불가피, 친환경에너지업체 정책 수혜
 LNG 확대시 전기료 인상→물가 상승 악순환…국민 부담 가중


문 대통령은 19일 진행 된 고리원전 1호기 퇴역식에서 “신규 원전 건설계획을 전면 백지화할 것”이라며 “원전 중심의 발전 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원전 관련 업계는 공약으로 존재하던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현실화된 것으로 해석했다.

일방적 정책, 검증 필요성 재차 강조

문제는 탈원전 정책이 현실화되면서 원자력발전설비 주력업체인 두산중공업을 비롯, 인터뱅크, 성일엔지니어링, 엠텍, 피케이밸브 등 많은 관련 업체가 받는 타격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두산중공업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원자력발전 사업에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두산중공업이 현재 진행 중인 원전 사업은 신고리 5, 6호기 등이다. 공정률 기준 신고리 5, 6호기의 사업 진행률은 50%에 불과하다. 사업 계약금 가운데 약 1조1700억원이 진행돼 약 1조1300억원의 수주잔고가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두산중공업이 수주를 기다리던 신한울 3, 4호기와 천지 1, 2호기 및 대진 1, 2호기 등 총 8.8GW 규모의 원전 6기도 백지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신고리 5, 6호기의 수주액을 고려할 때 예정 사업의 규모는 약 7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정치권도 반발하고 나섰다.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등 야3당은 20일 '탈원전 정책'에 대해 한목소리로 우려를 표명했다. 탈원전·신재생 에너지의 시대로 전환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현재의 에너지 수급 상황 등을 고려할 때 급격한 정책 변화는 국민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당 이현재 정책위의장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탈원전 정책에 대해 "에너지원의 97%를 수입하는 우리나라 현실을 도외시한 위험하고 설익은 아마추어리즘"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장은 "원자력 발전단가가 신재생에너지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탈핵 시대 전기요금은 지금보다 대폭 인상될 수밖에 없다"며 "나라의 존망이 걸린 중대한 사안인 만큼 국회에서 충분한 논의와 국민투표 등을 거쳐서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안전기준 강화와 신재생 에너지 육성 방침은 환영하지만, 신규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전면중단은 우려한다.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인기영합의 무책임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바른정당 이종구 정책위의장은 원내대책회의에서 "탈원전 후 전력수급 로드맵이 부족해 전력대란이 걱정된다"며 "8차 전력수급 계획 과정에서 정부와 여당의 독단이 아닌 여야가 함께 추천하는 인사가 참여해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연혜 자유한국당 의원이 입법조사처에 의뢰해 작성한 '탈원전 시나리오에 소요되는 비용 추계' 보고서를 보면 신재생 에너지를 통한 발전량을 2035년까지 현재 수준보다 17% 가량 늘리면 163조∼206조원의 발전비용이 더 든다.

신재생 에너지 단가는 지난해 기준 kWh당 186.7원으로 원자력(67.9원)이나 석탄(73.9원)의 2배 이상이다. 입법조사처는 최 의원에게 제출한 보고서에서 전기요금이 8% 인상될 경우 물가는 0.16%, 16% 오르면 0.32% 오르겠다고 추산했다.

‘탈원전’이 현 정부의 최우선 공약인 일자리 창출에 역행하는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원자력 건설 기자재업계에 따르면 원전은 전력원으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일자리 창출에도 크게 기여하는 산업인데, 탈원전 정책을 밀어 붙일 경우 내년 이후부터 원전 2기당 연인원 250만명분의 일자리가 사라지게 된다. 화력발전 역시 원전의 80% 정도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어 화력발전을 짓지 않을 경우 2기당(1기당 100만kW) 연인원 220만 명의 일자리가 없어지게 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삼척시민들이 화력발전소 건설에 96% 이상 찬성한 것은 일자리 창출 효과 때문"이라며 "대안도 없이 중추 전력원 건설을 취소하거나 중단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정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과제는 전력 수급이다.

2030년까지 설계 수명이 다하는 원전은 이번에 영구 정지된 고리 1호기를 포함해 모두 12기다. 이들 원전의 설계용량은 모두 9716MW에 달한다.

여기에 문 대통령의 3호 업무지시에 따라 폐기 예정인 석탄화력발전소 10기의 설비용량(3345MW)을 합치면 2030년까지 1만3061MW에 달하는 발전설비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는 2014년 말 기준 우리나라 전체 발전설비 9만3216MW의 14.0%에 해당한다.

이에 따른 부족분은 LNG와 신재생 에너지로 어느 정도 채울 수 있다. 그러나 신재생 에너지의 경우 자연환경에 따라 수급이 들쭉날쭉할 수 있다는 점이 단점으로 제기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신재생 에너지의 현실적 보급 속도를 고려하면서 탈원전·탈석탄 정책에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반면 환경단체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적극 환영하고 나섰다. 원자력업계의 신중론을 반박하며, 단기적 조치가 먼저 이뤄진 뒤, 에너지 중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환경운동연합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지난 40년 원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중단하고, 탈핵·에너지전환의 시대를 처음으로 열었다는 점에서 감격이 아닐 수 없다"며 "그동안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사회를 염원해 왔던 국민들의 뜻을 대통령이 나서서 적극 수용했다는 점에 환영과 지지의 입장을 보낸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그동안 피해를 입어왔던 주변 지역 주민들에 대한 대책도 꼼꼼하게 신경 써야 한다고 정부에 요구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도 "새 정부의 국가 에너지 패러다임 대전환을 환영한다"며 "오늘은 에너지 민주주의의 첫 걸음을 내딛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평가했다.

해체 마무리 15년 6개월 소요

한편 고리 1호기는 핵연료 냉각과 안전성 검사를 거쳐 오는 2022년부터 본격적인 해체 작업에 들어간다.  해체는 해체계획서 마련 및 승인, 사용후핵연료 냉각 및 반출, 시설물 본격 해체, 부지 복원 순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해체과정이 모두 마무리되는 데 총 15년 6개월이 소요될 전망이다.

핵연료를 냉각시키고 임시저장시설을 지어 반출하는 데만 5년이 넘게 걸리고, 방사능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시설물을 철거하는데 추가로 8년 이상 소요된다. 여기에 잔류방사능을 제거하고 부지를 복원하는 데 걸리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최소 15년이 필요하다.

오는 2019년 상반기까지 해체계획서 초안을 마련해 주민 공청회 등을 거쳐 의견을 수렴하고 해체계획서를 보완해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한다. 해체계획서는 해외 선진기업의 자문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평가를 받아 그 적합성을 검증받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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