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고조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는 데는 책사에 장자방과 명장 한신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둘은 지혜와 힘을 결합하여 국력이 몇 배나 강한 초나라 항우를 물리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랬던 장자방이 대업을 이루고는 산으로 들어가 버렸다. 반면 한신은 남아서 야망을 불태웠다. 결국 한신은 모략으로 죽임을 당했지만 장자방은 그 후 유방의 거듭된 권유로 말년에 지방의 제후 자리에 올랐다.
조선 개국 일등공신 정도전은 이성계를 왕으로 옹립한 후 떠나지 않고 그대로 곁에 남아 막강 권력을 휘두르다가 얼마 안 가 비록 이성계는 아니었지만 정적이었던 이성계의 아들 방원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꿈을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한 채 그렇게 허무하게 죽었다. 
계유정란을 일으켜 단종을 쫓아내고 세조를 왕으로 만들었던 한명회 역시 정란 성공 후 떠나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서 권세를 누렸다. 세조는 물론이고 예종 성종 때까지 권력을 누렸으나 그는 죽은 후 연산군에 의해 부관참시되는 치욕을 당했다. 
퇴계 이황은 79번이나 벼슬을 사퇴하는 등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쉰 살이 넘어서는 고향으로 내려가 시냇가에 도산서당을 세워 문인들을 가르쳤다. 나라에서 높은 관직을 제수했지만 그 때마다 거절했다. 그의 소망은 높은 벼슬을 갖는 게 아니라 학문에 매진하는 것이었다.
국민이 주인 된 대한민국 건국 후는 이승만 정권부터 지난 박근혜 정권에 이르기까지 숱한 정권 탄생의 공신들이 있었다. 그러나 떠나지 않고 남아서 권력을 휘두른 자들의 말로가 어떠했는가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 
10년 만에 재집권한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정권은 이런 맥락에서 좀 특이하다. 그를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데 공을 세운 측근들은 떠나는 모습을 보였는데 정작 떠나야 할 주체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또 스스로 공신이라 칭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느 시대와 다르다. 이른바 촛불집회를 선도적으로 이끌었다고 주장하는 민노총과 전교조가 그들이다. 이들은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마치 자신들이 채권자라도 된 듯 문 대통령에게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고 있다. 공을 세웠으니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 달라는 것이다. 길거리에 나와 투쟁도 하고 정 안 들어주면 촛불집회라도 또 열 심산이다.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공을 세운 일부 국회의원들 또한 지금 누리고 있는 오만 가지 특권도 모자라 판서(判書) 자리까지 탐낸다. 
노자는 도덕경에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라는 말을 남겼다. 공을 이루더라도 거기에 거(居)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 다음에 나오는 글귀는 더 멋지다. 부유불거(夫惟不居) 시이불거(是以不去)라, 오로지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상적인 사회는 제각기 제자리를 지키는 사회를 말한다. 그 자리에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있다. 또 그 자리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도 있다. 작금의 공신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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