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이어 또 성과급 잔치 벌이나

한전 홈페이지 화면 캡처
한전, 누진제 개편으로 올 여름 요금폭탄 현상 안 나타나
 
전력 평소보다 많이 써야 전기료 절감되는 이중적 정책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 원고 첫 승
 
최대 영업이익 기록한 한전 경영실적평가 높은 등급 예상

 
[일요서울 | 오유진 기자] 한반도 전체가 ‘가뭄’과 ‘무더위’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가전 업체들은 에어컨 등을 출시하며 여름철 특수를 누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서민들은 ‘전기 요금 폭탄’ 걱정에 에어컨도 제대로 틀어보지 못한 채 힘겨운 여름나기가 반복되는 실정이다. 이런 문제의 발생 원인은 ‘누진제’의 공포로부터 시작된다. 과거 누진제는 고소득층이 더 많은 전기를 사용함에 따라 더 많은 요금을 내도록 만든 제도다. 하지만 현재는 소득 수준과 별개로 전기사용량이 많아지면서 유용한 제도가 아니라는 지적이 일었다. 논란이 지속되자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는 지난해 ‘누진제 개편안‘을 내놓으며 이 같은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나섰다. 하지만 실질적인 효율성이 떨어지며, 산업용 전기 누진제도 개편 누락 등의 이유로 다수의 소비자는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일요서울은 누진제를 둘러싼 각종 논란들을 짚어봤다.
 
전기요금 누진제는 1973년 1차 석유파동에 따라 전력사용을 억제하기 위해 가정용 전력사용량에 3단계의 누진제를 첫 도입했다. 당시 최저·최고배율은 1.7배에 불과했지만, 1979년 제2차 오일쇼크 때는 최저·최고 배율이 약 20배에 달한 바 있다. 개편안 전의 6단계 누진제는 2007년에 도입된 것으로 최저·최고 배율이 약 12배에 달한다.
 
이에 소비자들은 국내 전력소비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요금은 그대로 두고 비중이 낮은 가정용에만 누진제를 적용해 누진제의 원래 목적과 상이하며, 6단계 주택용 누진제를 적용할 경우 전기요금 폭탄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이 같은 불만의 목소리에도 한전과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 됐고, 이에 정부는 지난해 여름 한시적으로 전기요금 20% 가량 할인하겠다며 누진제 완화 정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미 높아진 ‘개편’ 요구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논란이 계속되자 한전 측은 지난해 12월 종전 누진 6단계에서 누진 3단계로 개정된 ‘누진제 개편안’을 내놨다. 누진제 개편안은 지난 1월부터 적용돼 시행 중이다. 한전 측은 전기요금 부과체계를 개편 시행함에 따라 올해 여름 요금폭탄 현상은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누진구간도 당초 100㎾h 단위에서 200㎾h 단위로 조정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4인 가구의 94%에 해당하는 평균 전기소비량 350㎾h로 계산할 경우 월 전기요금이 기존 5만5330원에서 4만8445원으로 14% 인하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전의 6단계인 전력구간 요금을 보면 1단계 100kw이하 60.7원, 2단계 101~200kw 125.9원, 3단계 201~300kw 187.9원, 4단계 301~400kw 280.6원, 5단계 401~500kw 417.7원, 6단계 500kw 초과 709.5원이었다. 누진제 개편 후의 전력요금을 보면 1단계 200kw이하 93.3원, 2단계 201~400kw 187.9원, 3단계 400kw초과 280.6원, 4단계 1000kw초과 709.5원으로 책정됐다.
 
서민들을 위한 정책인가
 
한전 측이 내놓은 14% 인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평균 값일 뿐이며 300kw 전후로 전기를 사용하는 가구가 다수로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월 300kw를 사용할 경우 전기 요금 개편 전 총 전기요금이 3만7450원이었으며 개편 후 전기요금은 3만7450원으로 개편 전과 개편 후의 300kw 사용량 가구의 전기 요금은 차이가 없다.
 
또 실제 지난해 우리나라 1인 가구 비율이 전체 27%이며, 서울시 1인 가구 비율은 36.38%로 1980년 4.5%에 비하면 9배나 늘어났다. 이들의 경우 평균 200kw 이하로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 월 150kw을 사용하는 1인 가구의 요금을 계산해보면 개편 전 합계 1만2365원을 냈지만 개편 후에는 1만3995원 즉, 1630원을 더 내야 한다. 늘어난 1인 가구와 전기를 적게 사용하는 서민들의 경우 오히려 전기요금을 많이 내야 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400kw 이상을 사용할 경우 전기요금이 많이 줄어 결국 평균보다 전력을 많이 써야 전기료 절감 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전력 사용을 부추기는 정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여름철마다 전력사용량이 최고조에 달해 블랙아웃을 걱정하지만 전력을 많이 사용해야 요금이 감면되는 모순적인 정책을 쓰고 있다는 해석이다.
 
이번 개편안을 두고 일부 소비자들의 불만이 가중되고 있다. “중산층, 부유층의 전기요금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600kw를 사용할 시 개편 전에는 21만7350원이었지만 개편 후에는 13만6040원으로 약 7만 원 정도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는 ▲서민층의 기본요금 상승 ▲부자감세 가능성 등의 이유로 누진제도 개편 불가 입장을 고수한 바 있다. 이 같은 지적이 나올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뾰족한 묘수 없이 개편을 진행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집단소송’으로 이어져
 
특히 누진제는 주택용 전기에만 적용이 되고 산업용 전기 등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에 일부 소비자들은 산업용 전기에는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아 실질적인 부자 감세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런 불만은 소송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누진제 개편’까지 이끌어 냈다.
 
‘한전 소송’은 지난해 여름 한전이 산업용과 달리 가정용 전기요금에만 누진제를 적용해 온 것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표면화됐다. 곽상언 변호사는 이와 관련한 소송을 2014년부터 ‘집단소송’으로 진행해 왔다.
 
곽 변호사에 따르면 법원은 2016년부터 2017년 2월까지 한전을 상대로 한 전기요금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에 대해 여섯 번의 원고 패소 판결을 선고했다. 여섯 차례 패소 했지만 수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한전은 주택용 전기요금 규정을 변경해 새로운 누진제 개편안을 도출시켰기 때문이다.
 
패소 끝에 인천지방법원 제16민사부(재판장 홍기찬 부장판사)는 지난 27일 김모씨 외 868명이 한전을 상대로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앞서 한전 측은 언론 등을 통해 산업용 전기는 계약전력에 따른 기본요금과 전력량 요금이 계절별, 시간대별로 구분돼 부과된다며, 외국과 비교해서도 높은 요금을 받고 있다고 해명한 바 있다. 그러나 여전히 누진제를 가정용에만 적용시켜 대기업 특혜가 아니냐는 의혹이 만연했다. 반면 이번 판결로 인해 가정용과 산업용의 차이 논란의 해결점이 될 것으로 보여 한전 측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성과급 잔치 또 벌이나
 
누진제 개편안이 이뤄진 또 다른 이유는 산업용 전기의 누진제 이슈뿐 아니라 지난해 8월 논란이 일었던 한전의 성과급 잔치 논란도 한몫했다. 지난해 한전이 공공기관 경영실적평가에서 A등급을 받아 한전 임원진에게 평균 1억3000여만 원의 성과급이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임원은 경영실적평가에서 S등급을 받으면 기본급의 110%, A등급 100%, B등급 50%, C등급 30%의 성과급을 받는다. 등급이 전년보다 상향됨에 따라 한전 임직원이 받는 성과급도 전년의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과 국회예산정책처 등에 따르면 한전은 정부가 공공기관의 2015년도 경영관리, 주요사업 성과, 복지후생 등을 평가해 지난해 6월 발표한 공공기관 경영실적평가에서 2011년 이후 5년 만에 A등급(S∼E등급 순)을 받았다. 한전은 2011년(발표연도 기준) A등급을 받은 뒤 2012년과 2013년 B등급, 2014년 C등급으로 떨어졌지만 2015년 B등급에서 지난해 A등급으로 올랐다. 공공기관의 경우 경영실적평가 결과에 따라 성과급을 차등 지급한다.
 
한전은 B등급을 2015년 당시 직원 1인당 평균 748만 3000원(평균 보수액 7876만 2000원)의 성과급을 받았다. 2011년 A등급을 받았을 때 성과급은 평균 1774만 4000원(7392만 3000원)이었다.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로 여론이 들끓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한전은 한전 직원들에게 1인당 평균 1315만 원씩 성과급을 받았다. 이에 대해 한전 측은 경영평가 등급 상승에 따른 기계적 지급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지난 2월 6일 한전에 따르면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5.8% 오른 12조15억 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60조1903억 원으로 2.1% 늘었다. 한전 매출이 60조 원을 돌파한 것은 창사 이래 처음이다. 특히 한전의 영업이익은 2013년 1조5190억 원에서 2014년 5조7876억 원, 2015년 11조3467억 원으로 계속 상승세다.

이는 지난해 장기간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전력 사용량이 크게 늘어났으며, 저유가에 따른 연료비 절감효과가 강화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한전에 따르면 지난해 여름(6월 15일~8월 11일) 4인 가구 평균 전력사용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7% 늘었다. 올해 역시 경영평가에 따른 상여금은 상당한 액수 일 것으로 보인다.
 
한전의 수익 대부분이 전기료임을 감안하면 누진제도 개편 시 영업이익은 최소 9000억 원에서 최대 1조 원까지 이익이 줄게 될 전망이다. 이에 논란이 됐던 한전의 ‘성과급 잔치’가 2018년에는 벌어질 가능성은 낮아졌다. 그러나 올해도 무더위에 따른 폭염과 저유가 기조가 지속되거나 추가 하락할 가능성, 누진제 개편으로 인한 전기사용량 급등 등의 가능성이 있어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감소하는 것은 일정부분 방어할 수 있을 거라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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