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문은 뚫렸지만 걱정은 여전히 남아"

해결책 제시않는 부산도시공사에 감정

농장주 김씨 부부가 지게 대용으로 사 들인 당나귀와 함께 작업을 하고 있다. 뒤로 해운대비치골프장이 내려다 보인다.
[일요서울 | 부산 전홍욱기자] 부산 동부산관광단지 개발의 폐해를 다룬 ‘‘지게꾼’으로 사는 한 공무원의 기막힌 사연‘(본지 2017년 2월24일) 주인공 김모(55)씨는 얼마 전부터 지게를 메지 않고 농장을 오르내린다. 보도 이후 해운대비치골프&리조트(회장 구천서/법인명 HB골프&리조트) 측에서 농장으로 올라가는 출입문을 개방했기 때문이다.

당시 골프장 한쪽에서 시작해 농장으로 올라가는 도로의 진출입로가 철문으로 막혀 김씨는 40Kg이 넘는 짐을 지게에 지고 1Km가 넘는 산비탈 길을 하루에도 몇 번씩 왕복했다. 출입문 개방으로 이제 자동차로 농장 입구까지 갈 수 있지만 김씨의 고민은 여전하다.

“지게를 지지 않는 것만으로 만족하기에는 산적한 문제가 많습니다. 골프장 끝 한쪽을 통과하는 이 출입로는 언제 다시 막힐 지 알 수 없습니다. 출입구와 농장으로 이어지는 250M 남짓한 포장도로 자체가 골프장 소유이기 때문이죠. 농장을 그만 둘 때까지 안심하고 다닌다는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동부산관광사업을 진행하고 골프장 부지를 수용 후 매도한 부산도시공사는 여전히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원인제공한 부산도시공사는 해결책 제시않고 방관

김씨의 불만은 결국 부산도시공사를 향한다. 도시공사가 골프장 부지를 해운대비치골프리조트 측에 매도할 때 이미 농장으로 향하는 출입로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즉 골프장 측이 공사를 하면서 출입로를 없앤 것이 아니고 부지매각 당시 이미 김씨의 농장은 맹지(盲地:도로가 없는 토지) 상태가 되어버렸다는 것이 김씨 주장이다.

“동부산단지 개발 이전 골프장 부지와 농장은 ‘새마실’로 불리는 하나의 마을이었습니다. 동부산관광단지 계획의 일환으로 도시공사가 이 마을의 대다수를 강제 수용합니다. 당시 제 농장도 반 이상 수용이 되었지요.“

김씨의 농장은 전체 9천여평 중에 6천여평이 수용되고 3천여평이 남아 현재의 농장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마을을 가로 지르던 출입로는 골프장 부지에 편입되었고 산 정상 가까이 자리한 김씨의 농장 3천여평은 진출입 도로가 없는 맹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김씨가 이 사실을 깨달은 것은 2013년 골프장 건설 공사가 진행되면서 부터다. 도시공사가 당연히 진출입 도로를 만들어 줄 것으로 판단했지만 골프장 완공 이후 어느 쪽에서도 농장으로 갈 수 없게 됐다.

이후 김씨는 부산도시공사, 기장군청, 골프장 등에 민원을 제기했다. 김씨의 민원에 부산도시공사는 당초 출입로를 만들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다 어찌된 일인지 도시공사, 골프장 측이 협의를 거쳐 골프장 가장자리 쪽으로 출입구와 출입로가 만들어진다. 2014년 1월 경이다. 덕분에 골프장도 정문이 아닌 골프장 출입문을 하나 더 가지게 돼 관리동 직원들은 이 진출입로를 사용했다.

골프장 측의 출입로 부지제공, 포장공사가 화근 남겨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김씨가 민원을 제기한 곳은 부산도시공사인데 정작 도로 부지를 제공하고 출입문, 출입로 공사를 한 곳은 골프장 측이었다.

이에 대해 부산도시공사 관계자는 “부지 매매 계약 당시 골프장으로 인한 민원은 골프장 측이 해결한다는 단서조항이 있었다. 때문에 골프장에서 부지 제공과 공사를 진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골프장 관계자는 “해운대비치골프&리조트는 부산시 기장군 대변리 일대에 골프장, 리조트, 호텔, 레지던스, 의료관광단지, 체육관광단지 등 방대한 규모의 사업계약을 부산도시공사 측과 체결했다. 이 중 첫 사업이 2013년 오픈한 골프장이다. 추가 사업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주무기관인 부산도시공사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현재 부산도시공사와 골프장 측은 골프장을 중심으로 한 네 곳의 부지에 사업계약을 체결,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 중 골프장을 제외한 3곳은 초기단계의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부산도시공사 동부산사업처 관계자는 “HB골프&리조트는 2018년 6월까지 골프장 내 리조트 등의 준공을 완료해야 한다. 이와 맞물려 부지 소유권등기 이전이 같이 이루어지는 계약이다. 현재 부지의 등기상 소유권자는 부산도시공사다”라고 밝혔다.

2014년 1월 경, 김씨의 농장이 맹지에서 도로를 갖게 되면서 문제는 해결되는 듯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골프장 측은 “농장의 개 짓는 소리 때문에 골프장 영업에 방해가 된다”면서 차츰 김씨의 출입을 단속하다 2017년 초 결국 출입문을 걸어 잠근 것이다. 이후 김씨와 골프장은 각각 상대방을 고소, 고발하는 등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2017년 초 설치된 농장 출입로 입구의 철제대문. 골프장 측은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후 이 문을 개방했다.
  골프장 경비원 1명 통행방해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 받아

사실 김씨의 사연이 알려진 이후 그는 상당한 유명세를 탔다. KBS2 프로그램 '제보자들‘에 출연하면서 전국 방송을 탄 것이다. 제작진은 당시 김씨, 골프장과 부산도시공사 관계자들을 같이 만나게 했다. 이 자리에서 부산도시공사 동부산사업처는 "원만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특별한 해결책을 내놓지는 않았다.

방송 이후 김씨는 해운대비치골프&리조트 본부장, 경비원 등 3명을 통행방해 혐의로 기장경찰서에 진정했다. 이 사건은 부산동부지청에서 “철문을 내가 막았다”고 진술한 경비원 한명을 기소유예 처분함으로써 종결됐다. 범죄혐의를 인정하는 기소유예 처분 이후 골프장 측은 출입문은 개방했고 김씨는 다시 출입로를 통해 농장을 오가고 있다.

김씨는 요즘 다소 편안해 보였다. 한 더위가 찾아오기 전 그나마 지게라도 벗어 고생을 면하게 된 이유일까.

“부산도시공사, 골프장과의 본격적인 싸움은 이제부터라고 생각합니다. '일부러 개를 짖게 한다'는 등 골프장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숱한 비방에 그동안 무방비로 시달려 왔습니다. 도시공사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뒤로 빠져 있습니다. 결국 법적인 권리를 확보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 부동산중개사 양원동씨는 “지자체 등에서 도시개발을 시행할 때 맹지를 만들지 않는 것이 일반적 관행이다. 맹지의 경우 민사적 권리인 주위토지통행권이나 통행방해 금지 가처분 등을 법원에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부산도시공사, 김씨, 골프장의 경우는 출입로가 4년 가까이 현황도로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토지 소유주인 부산도시공사가 관련 행정기관에 ‘현황도로의 도로지정 신청’을 통해 해결하는 방법도 있어 보인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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