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나치 히틀러’는 금기어(禁忌語) 수준이다. 무엇보다 600만 명의 유태인을 학살한 끔찍한 과거를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히틀러까지는 아니더라도 떠올리기 싫은 지도자들이 없지 않다. 조선시대 선조와 인조 임금이 그렇다. 두 사람은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왜국(일본)과 청나라(중국)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대응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오직 정쟁에만 몰두했을 뿐이다.
지도자가 무능하고 무책임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에게 돌아간다. 백성은 안중에도 없이 오직 자기 목숨만 부지하기 위해서 도망을 다닌 선조와 인조 때문에 백성들이 치른 대가는 참으로 비참했다. 알려진 대로면 임진왜란 때에만 백만 명 가까운 백성들이 죄 없이 죽어나가야 했다. 당시 조선 인구가 700여만 명이었으니 1할 넘는 백성이 희생된 셈이다. ‘조선조 최악의 왕’이었다.
북한의 김일성은 1950년 한국전쟁을 일으킨 동족상잔의 원흉이다. 그의 잘못된 판단으로 한국군 13만여 명과 유엔군 4만여 명 등 우리 측에서만 17만 명 넘는 군인들이 사망했으며 남북한 민간인 250여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또 45%에 이르는 공업 시설이 파괴되어 경제적, 사회적 암흑기를 초래했다. 
그러면 그의 이름은 당연하게 우리 사회에 ‘금기어’로 박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는커녕 오히려 ‘신격화’되고 있는 것이 3대째 세습을 하고 있는 북한에서만의 얘기가 아니다. 6·25의 최대 피해자인 남한에서조차 김일성 신격화 움직임이 나타난다.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종북세력들의 발호가 위험수위를 넘었다.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의 기본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령론’으로 인해 주체사상은 주체성을 잃고 일인독재체제의 도구화된 철학으로 변질되지 않았는가. 북한은 또 국방에서 자위를 강조하지만 지나치게 군사력에 집중하고 혁명노선을 견지함으로써 남북한 군사경쟁을 가속화하여 인민과 국가에 큰 부담을 안겼다. 결국 자원의 비효율적 분배로 인해 국가의 생산성을 약화시켜 세계 경쟁체제에서 뒤처지는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주체사상은 종교화되어 있다는 게 사회학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수령론’에서 김일성을 ‘절대적 지위’라고 함으로써 신앙적 정서를 배양해 권력구축에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에 나라의 주인, 역사의 주체로서의 ‘인민’이 있을 수 없다. 단지 김정은 왕권에 절대 복종하는 ‘신민(臣民)’만 있을 뿐이다. 인민이 아닌 신민이 존재하는 나라, 자유도 인권도 없는 나라인 북한에 민주주의가 숨 쉴 공간은 없다. 
지난 달 23일 대법원은 종북세력 중 하나였던 옛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에게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한 국정원의 구인 및 압수수색영장집행을 방해한 혐의로 유죄를 확정했다. 25일은 6·25전쟁이 발발한 지 67주년이 되는 날의 행사가 있었다. 두 장면을 보면서 국민들은 종북세력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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