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씩 옛 나날들을 돌아보는 나이에 섰다. 아련한 기억 속, 푸근해진 가슴이 소환한 눈물 한 방울과 웃음을 빼낸 미소. 그리고 그때로 떠나지 못해 애만 타던 발걸음. 심장 한가운데서 멈춰버린 그 기억들을 다시 두 눈에 담을 수 있는 곳으로 떠났다. 부탄에서 재회한, 생을 사랑하게끔 해줬던 나날들.


푸나카

 
팀푸에서 동쪽으로 약 70킬로미터 떨어진 푸나카는 1955년까지 부탄의 수도였다. 때문에 이곳에 있는 푸나카 종은 팀푸의 타쉬쵸 종에 버금가는 명성을 지녔으며 부탄을 대표할 만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이 외에도 그림 같은 자연과 함께 역사와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한 불교유적과 성지들이 있어 부탄을 찾는 여행객들의 대부분이 푸나카를 찾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부처님 세상, 푸나카 종
 
푸나카에 왔음을 알려준 건, 작은 강을 앞에 두고 우뚝 선 푸나카 종이었다.

초록 잔디 위에 줄지어선 보랏빛 자카란다 나무들이 하얀 성벽의 푸나카 종과 어우러져 화사한 봄날의 향기를 마음껏 피워 내고 있었다. 푸나카 종 아래 모츄 강에서는 여행객들이 그 황홀한 풍경을 만끽하며 래프팅 체험을 즐기고 있었고, 붉은 승복을 훌훌 벗어낸 스님들은 강물에 몸을 담그고 이른 더위를 씻어 내고 있었다.

부탄 사람들이 가장 성스럽게 여기는 인물 중 한 명으로 부탄을 통일한 샤브드롱이 푸나카 종을 이 땅 위에 건설하고 보냈을 부탄 역사의 가장 아름다웠던 날들에 잠시 다녀오기라도 한 듯, 부처님의 세상 중에서도 가장 평안하고 여유로운 세상, 부탄 사람들이 그토록 가고자 하는 그 세상을 이곳 스님들의 넉넉하고 인자한 표정과 어느 곳보다도 활기 넘치는 사원의 분위기 속에서 만나고 온 것만 같다.
 
푸나카의 주요 볼거리들

 
<캄섬 율레 남갤 초르텐>
 
푸나카계곡을 지나 깊숙한 산 속 마을의 전원 풍경을 스치며 30분쯤 산길을 따라 오르면 캄섬 율레 남갤 초르텐이 모습을 드러낸다.

약 8년 6개월 이상의 건축 기간이 필요했던 이 초르텐은 부탄 전통 건축물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사례로 손꼽힌다. 
      초르텐 자체의 건축미도 뛰어나지만 이곳의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본 풍경은 부탄 여행의 백미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산속에 오밀조밀 무늬를 새긴 계단식 논과 옛날 방식으로 소와 함께 땅을 일구는 농부의 모습, 그 곁에 길을 내고 유유히 흐르고 있는 강물이 하나 돼 만들어 내는 풍경에 산을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마저 잊고 만다.
 
<치미 라캉 사원>
 
부탄 불교의 이색적인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사원. 1499년 지어진 이 사원은 드룩파 쿤리의 불교 교리를 벗어난 기행에 관한 전설로 유명해졌다.

남근을 내놓고 아녀자를 농락했던 기행 때문에 치미 라캉은 다산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때문에 부탄의 수많은 신혼부부들이 찾아와 아들·딸을 점지해 달라며 불공을 드리고 절 아래 마을에는 남근이 그려진 벽화와 조각물 등이 가득하다.

남근은 다산을 기원하면서 액운을 쫓아내는 토속 신앙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Info> 드룩파 쿤리(1455~1529)
부탄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스님 중 한 명으로 여러 기행을 일삼아 ‘신성한 미치광이’로 알려져 있다. 그는 남근을 내놓고 아녀자들을 농락하면서 다녔는데 이는 당시 불교 사원에 만연해 있던 라마의 권위주의를 꾸짖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드룩파 쿤리는 악마를 제압해 치미 라캉 사원에 가둔 성자이기도 하며 부탄 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별이 빛나는 밤에, 팜스테이

 
남근이 군데군데 그려진 치미 라캉 사원 아래 마을에서 하루를 묵어가기로 했다. 해가 산 너머로 그 모습을 조금씩 감출 때쯤 도착한 마을의 공터에는 아이들이 뛰어 노는 소리가 가득했다.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 함께 즐겨했던 놀이와 비슷해 보여 궁금증에 한참을 그 모습을 지켜봤다. 어느새 어둠이 짙게 깔리고 아이들도 나도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집 마당에는 준비 중인 음식 냄새가 가득했다.

그 시절 엄마가 부르던 집 안에서도 늘 비슷한 냄새가 났던 것 같다. 방 안에 음식이 준비됐다. 뚜껑을 닫은 채로 상도 없이 바닥에 늘어놓은 오늘의 요리들. 할머니는 따로 저녁을 들겠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함께 식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방에 오붓하게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데 누군가 빠지면 안 될 것 같았다. 집과 가족, 부탄에서도 그 단어들이 갖는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밤이라고 하기에는 이른 시간이지만 푸나카의 작은 마을에는 이미 정적이 흘렀고 불빛들이 사라졌다. 밤하늘에 별이 초롱초롱 빛을 내고 있었다. 별을 보는 것이 그 밤에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반가운 일도 없었다.
    잃어버린 별을 다시 찾기 위해 마당에 방석을 깔고 앉았다. 주인장이 내어온 전통주 한 잔이 더욱 맑게 빛을 냈다. 어쩌면 앞으로도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인생의 마지막 추억을 쌓고 있었다.
 
<Info> 팜스테이
부탄의 가정집을 그대로 체험할 수 있는 팜스테이는 사전에 여행사에 요청해야 한다. 부탄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으며 현지식으로 꾸며진 잠자리와 음식들이 제공된다. 시골마을이지만 각종 시설이나 청결 상태 등이 한국의 일반 가정과 크게 다르지 않아 큰 불편 없이 체험이 가능하다.

붐탕


붐탕은 부탄의 중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팀푸에서 차로 약 10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현재 새롭게 건설 중인 고속도로가 완성되면 소요 시간이 훨씬 짧아질 예정이며 공항이 있어 국내선 항공편으로도 찾아갈 수 있는 곳이다. 부탄 사람들이 가장 성스러운 지역으로 생각하고 부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으로 손꼽는 지역이다.
좀 더 특별한 부탄의 이름, 붐탕

 
부탄 여행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함께했던 가이드 니둡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붐탕을 부탄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시라고 얘기했다. 그 어느 곳보다 성스러운 기운이 많이 느껴져 심적으로 편안하고 자연환경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팀푸에서 떠나 붐탕에 도착한 첫날은 도로 사정으로 여행은 생각보다 많이 길어졌고, 늦은 밤의 붐탕에서 그의 이야기를 확인할 길은 없었다.

다음날 아침, 숙소에서 눈을 떠 창밖을 내다봤다. 눈부시게 맑은 하늘 아래 펼쳐진 한 장의 엽서 같은 풍경은 TV속에서 보아 왔던 히말라야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렇게 시작된 하루, 붐탕에는 팀푸와 다른 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부탄의 모습이 있었다. 조금 더 깊고 진중한 마을, 그래서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빠져들면 중독되고 말 것 같은 곳이었다. 많은 여행객들이 거리와 시간을 핑계로 찾아가지 않는 곳, 붐탕은 그래서 나에게 더욱 특별한 부탄으로 남았다.

 
붐탕의 주요 볼거리들

 
<쿠르제이 사원>
 
붐탕을 대표하는 사원이자 볼거리이다. 부탄에서 두 번째 부처라고 불리는 구루 린포체, 파드마삼바바가 수행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사원 내부로 들어가면 동굴 주변에 그가 앉아서 수행했다고 전하는 자리가 남아 있고, 법당 안에는 어느 승려가 수십만 번 절을 하며 남겨놓은 발자국의 흔적도 남아 있다. 전형적인 부탄 양식의 3개의 건물로 구성된 쿠르제이 사원은 종종 부탄 왕실에서도 찾아올 만큼 부탄 불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땀싱 사원>
 
비교적 작은 사원으로 작은 마을에 한가로이 떨어져 있다. 땀싱 사원은 1501년 고승 테르톤 페마 링파가 창건한 사찰로 사찰 내에 링파와 관련된 이야기를 담고 있는 흔적이 여럿 남아 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그 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에 귀기울여보자.
<버닝 레이크, 미바르 소>
 
15세기 고승 테르톤 페마 링파는 원래 도굴꾼이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승려가 된 그의 이야기를 잘 믿지 않았고, 링파는 자신의 말이 맞는지 증명하기 위해 이 호수에 등불을 들고 들어갔다. 불이 꺼지지 않으면 자신의 이야기가 사실, 불이 꺼지면 거짓이라는 것. 결국 등불은 꺼지지 않았고, ‘미바르 소’는 ‘불타는 호수’라는 뜻을 갖게 되며 부탄 불교의 성지가 됐다.
알고가면 더 좋은 부탄 이모저모

 
<부탄여행은 꼭 이렇게>
부탄 정부는 외국인들을 위해 특별한 여행 정책을 펴고 있다. 우선 개별여행, 자유여행이란 개념이 없다. 정부가 공식 지정한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패키지 투어만 가능하며, 현지의 가이드와 반드시 함께 다녀야 한다.
 또한 스케줄과 상세한 옵션 등도 현지 여행사와 협의해야 하기 때문에 부탄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현지 사정에 밝고 현지의 여행사와 계약이 되어 있는 국내의 부탄 전문여행사를 통하는 것이 좋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부탄은 사전에 여행경비를 내야만 비자를 발급해주며 입국이 가능하다. 개인당 1일 200~250달러 비수기 200달러를 내야 하며, 정부는 65달러를 국민의 교육과 복지 등을 위해 사용하기 위해 로얄티 형식으로 가져가고 나머지 비용을 지정된 여행사에서 숙박비와 식비, 교통비 등으로 사용한다.
 부탄은 이렇게 높은 여행비용을 통해 여행객 수를 조절하여 환경 오염을 방지하고 있다. 식사 시 별도의 주류비, 가이드와 운전사 팁 등은 포함되어 있지 않아 별도 지불해야 하며 호텔 및 룸 업그레 이드, 여행지 옵션 추가 등이 필요하다면 협의를 통해 추가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 사진=여행매거진 Go-On 제공>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