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최고의 왕으로 평가받고 있는 세종은 지인지감(知人之鑑)의 대명사였다. 이를 바탕으로 유능한 신료라면 정적(政敵)이든 반대파든 두루 조정으로 불러들였다. 양녕대군 쪽 사람으로 자신이 왕이 되는 것에 대해 극렬히 반대했다가 유배까지 갔던 황희를 중용하는가 하면, 처음부터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태종의 남자’ 박은과 허조도 포용했다. 특히 박은은 자신의 장인이었던 영의정 심온을 제거하는데 앞장선 인물이었음에도 정치보복조차 하지 않았다. 
  
  정조는 붕당 정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할아버지 영조에 이어 탕평책을 썼다. 나라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여했던 노론파 인사들을 쫓아내는 대신 정치적 동반자로 인정했다. 노론뿐 아니라 남인과 소론 세력 등 각 당의 인재들도 고루 등용했다. 덕분에 '조선의 르네상스기'를 활짝 열 수 있었다.
  
  프랑스 최고의 대통령으로 추앙받고 있는 드골은 엘리트이자 보수주의자였다. 그러나 그는 자유주의자이면서 반항아적 진보 인사였던 앙드레 말로를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 중용했다. 보수, 진보를 따지지 않은 것이다. 둘은 서로의 다른 모습에 매력을 느낀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자신의 최대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윌리엄 수어드에게 두 차례나 서한을 보낸 끝에 국무장관이라는 요직을 맡겼다. 가장 위험한 시대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자신과 짐을 함께 질 인재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링컨은 또 노예제도를 반대했던 정적(政敵) 살몬 체이스와 에드워드 베이츠를 내각에 불러들였다. 상대당인 세 명의 민주당 정치인들도 장관에 임명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하기도 했다.
  
  링컨은 정치적 경쟁자들과 반대당의 리더들까지 자신의 정치적 가족으로 만드는 포용력을 보여주었다. 반대자들을 끌어안은 링컨의 리더십은 훗날 노예해방을 선언하며 미국의 역사를 바꾼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역시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치열하게 경쟁을 벌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임명했다. 그의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힐러리는 재임 기간 국무장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대 대선이 끝난 후 문재인 후보와 경쟁을 벌였던 타당의 후보들이 새 정부 각료 하마평에 오른 바 있다. 또 당 후보 경선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후보들의 이름도 거론됐다. 그러나 그 누구도 문 대통령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우리나라 정치 풍토에서 정적(政敵) 또는 진보 진영이 보수 진영 인사와 한 배를 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랬다가는‘배신자’로 낙인찍혀 자신의 정치인생에 종말을 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어쩌다 지금의 정치판이 조선시대보다 못한 신세가 돼버리고 만 것일까.
  
  리더의 포용은 다름과 차별의 벽을 허물어 연합과 화해를 이루게 하는 위대한 힘이다. 서로의 차이를 넘어 소통의 공간을 더욱 넓혀줌으로써 경쟁자들에 대한 관용을 허락하고, 추종자들의 신뢰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준다. 나라를 잘 되게 하는 대의(大義) 앞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능력만 있다면 정적이든 반대파든 중용해야 한다.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해서라도 말이다. 
  
  다른 당 정부에 들어가서 일하는 것을 색안경 끼고 보는 풍토도 바뀌어야 한다. 그것은 배신이 아니다. 나라가 풍전등화에 처해 있는데도 정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름을 거절하는 것이야말로 배신이다. 비록 당은 달라도 나라를 위한 일에는 힘을 모아주는 것이 진정한 협치(協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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