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약 비해 개혁성 후퇴vs세수 마련 계획 후퇴
- 5개년계획 野 설득하는 국정운영 도움 될지 따져야
 지난 19일 문재인 정부의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이 발표됐다. 문 대통령 당선 후 인수위원회 역할을 맡겠다며 출범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작품이다. 지난 13일 김진표 위원장이 대통령에게 계획을 보고했고 최종 조율 후 19일에 공개됐다.

이 계획에서 제시된 비전은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었고, 문재인 정부가 추진할 ‘5대 목표 100대 과제’가 담겼다. 계획에는 이 국정목표와 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세부 전략과 이행과제가 포함됐다.

정리된 PDF 파일만으로 2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계획의 함의와 장단점을 당장 평가 내리기엔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각계각층의 논란과 제언들을 살펴보면 이 계획과 문재인 정부를 둘러싼 논의 지형도를 간단하게나마 파악할 수 있다.

대선 공약과 엇박자? 개혁성 후퇴 지적
먼저 이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보면 대선 공약에 비해 문재인 정부의 개혁성이 후퇴한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주로 해당 사안 이해 당사자나 특정 이슈를 대변하는 이들이다. 보도에 따르면 대학생 단체, 농민 단체, 장애인 단체, 동물권 문제를 제기하는 동물보호단체들이 <5개년 계획>이 대선 공약에 비해 후퇴했다는 의견을 기자회견·성명·논평 등으로 발표했다.

이러한 불만은 지난 대선을 포함한 최근의 선거공약이 해당 임기 동안에 실현 가능한 주제만을 다룬다기보다는, 그 정치인과 정치세력이 지향하는 바의 총체를 담는 식으로 변화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 볼 수 있다. 바람직한 길은 각 정당의 정강과 강령으로 비전이 제시되고, 그 비전이 향후 몇 년 동안 실현될 수 있는 방식으로 선거 공약에 담기는 것이다.

그러나 뚜렷한 정체성의 확립 없이 정당과 계파가 나뉘어 대립하는 한국의 정치지형도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어떤 사람이고 ‘문재인 정부’가 어떤 것을 지향하는지를 말하기 위해서는 대선 공약에 좀 더 많은 것을 담아야 했던 측면이 있다. 이를 나쁜 측면으로 보자면 ‘허위과장 광고’라고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유권자들에게 민주당이란 정치세력의 정체성을 세우는 과정이라 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위에 적은 것처럼 여러 이해 당사자나 시민사회단체의 봇물 터지는 요구에 맞닥뜨리게 되는 지점이 있다. 지난 박근혜 정부 등 보수 정치 세력의 지지자들의 특징은 지지하는 정치세력의 승리를 우선적으로 추구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정책을 요구하는 일은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루며 쉽게 양해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노년층의 적극적 지지를 받았던 박근혜 정부가 노령연금 공약에서 후퇴했을 때도 당시 야당은 거세게 비난했지만 정작 노년층의 지지가 결정적으로 이탈하지는 않았다.

개혁 정치세력의 지지자들은 일부 다르다. 민주당의 승리만을 중심에 두고 사고하는 이들은 이 사실에 개탄하며 민주당 지지자가 보수 정치세력 지지자들처럼 행동해야 한다 촉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지층의 성격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다. 또한 그들이 원하는 개혁을 위해서도 맹목적 지지자는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이들의 요구를 일정 부분 받아들이고 조율하는 길에서 기량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증세 없는 복지’ 시즌2 증세는 ‘두루뭉술’
<5개년 계획>에 대한 보수파의 비판은 일종의 ‘증세 없는 복지’ 시즌2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계획에 적힌 100대 국정과제에만도 178조 원이 추가로 소요된다고 적혀 있는데, 정작 세수마련, 즉 증세계획은 지난 대선 공약에 비해서도 두루뭉술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복지국가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합의는 이미 2012년 대선에서 확립되었다고 봐야 한다. 방법론과 속도가 다소 달랐을 뿐, 당시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 공약을 통해 중도층을 공략하면서 당선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그 합의를 권력을 통해 실천해나갔다고 볼 수는 없고, 우여곡절 끝에 새 정부가 들어섰다.

복지국가로의 길로 나아감에 있어 증세가 피할 수 없는 방책이란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 임기 내내 민주당 등 개혁·진보 정치세력이 주장한 바다. 보수언론은 세수확보 논란을 정부 정책의 비현실성을 강조하는데 활용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와 별개로 문재인 정부가 증세 논란을 피해갈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추미애 민주당 당대표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내세운 ‘여당發 증세 논의’가 어찌 흘러갈지 여부가 문재인 정부의 향후 행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이와 같은 계획이 문재인 정부가 천명하는 협치에 도움이 되는가를 물을 수 있다. 말로는 5개년 계획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사실상 장기계획이다.

야당 입장에선 의회나 국민의 합의를 거치지 않은 노선을 정부 여당이 일방적으로 뿌린다고 곡해하기 쉽다. 참여정부 시절 주체들이 야심차게 내세운 <비전2030>이 정치권에서 냉소당하고 애물단지 취급당한 과거가 떠오르기도 한다. 장기계획은 당내에서만 공유하고, 대중과 야당을 상대론 단기계획을 공개해야 하는 게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여소야대 속 야당과 대국민 설득이 ‘관건’
그러나 그렇다고 <비전2030>의 내용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심지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일부 참조했다고 하며, 문재인 정부의 노선을 정립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판단한다.

또한 <비전2030>은 문재인 정부처럼 임기 초기에 던져지진 않았다. 참여정부가 훨씬 덜 준비된 정부였던 탓이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행보는 참여정부의 노선 위에서 그 다음을 준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야당과 국민을 어떻게 설득할 것이냐가 그들의 과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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