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탄핵하고 박정희 참배 왔느냐” 비토 정서에 혼쭐

<뉴시스>
[일요서울 | 정치팀] “배신자들 죄 받을끼다. 고마 대구 떠나고 자폭해라.” 바른정당이 대구를 찾았다가 살벌한 민심에 직면했다. 최근 ‘민심잡기 전국투어’로 대구·경북(TK)을 첫 행선지로 선정, 구애를 펼친 것에 혼쭐이 난 모양새다.

개혁보수를 자처하는 바른정당이 보수의 심장인 대구 지역에서 험악한 상황을 겪자 당의 시름이 깊어지는 형국이다. 내년 당의 존립을 결정한 지방선거가 다가오는 가운데 바른정당의 고군분투가 이어지고 있다.
 
이혜훈 체제 이후 첫 민심 행보로 TK 방문…朴 지지자 거센 항의로 ‘당혹’
지방선거 1년 앞으로…갈 길 바쁜 바른정당 보수 적통 경쟁 ‘먹구름’

 
바른정당은 지난 19일 TK지역 민심을 잡기 위해 ‘바른정당 주인찾기 1박2일 캠페인’에 나섰다. 당은 중도 외연 확장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뿌리는 보수에 있음을 나타내는 행보로 해석됐다. 또 TK에서 자유한국당에 우위를 점하면 보수 적자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기대가 깔려있는 행보로도 풀이된다.

이 같은 전략을 보여주듯 이번 행사에는 이혜훈 당 대표와 주호영 원내대표를 비롯, 정운천·김영우·권오을 최고위원과 정문헌 사무총장, 정병국 전 대표, 유승민 의원 등 당 지도부 등이 총출동했다.

그러나 방문지 곳곳에서 당을 반대하는 시민들의 항의가 쏟아졌고, 의원들의 얼굴엔 당혹감이 묻어났다. 방문 첫날 대구의 대표 번화가인 동성로 주변 야외무대에서 ‘대구 바른 보수 찾기’ 행사를 진행했으나 수십 명의 보수단체 회원들이 태극기와 피켓을 들고 찾아와 너도나도 “배신자”를 외쳤다.

한 손에 태극기를, 다른 한 손엔 바른정당을 원색 비난하는 팻말을 쥔 노인들은 한목소리로 “배신자들 죄받을 끼다. 고마 대구를 떠나고 자폭해라”고 고함을 질렀다. 이들의 충돌을 막기 위해 경찰이 바리케이드까지 칠 정도로 험악한 상황이 연출됐다.

다음 날도 험악한 상황은 계속됐다. 20일 방문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에서는 차량에서 내리는 것부터 녹록지 않았다. 보수단체 회원 30여 명이 생가 앞에서 태극기를 들고 오전부터 바른정당 지도부를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이혜훈 대표 차량을 막아서고 “배신자는 가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또 “어디라고 여길 와”, “박근혜 탄핵하고 박정희 참배하러 왔느냐” 등 항의가 빗발쳤고, 한 중년 여성은 이 대표 앞을 가로막고 바닥에 드러눕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되자 이 대표 등 바른정당 지도부는 참배한지 5분도 안 돼 발걸음을 돌렸다.
 
첫 행보부터 ‘삐그덕’
이 대표, 애써 침착

 
이 대표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당혹감을 내비치면서도 수습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이 대표는 “과거에는 두개로 쪼개져 있어서 우리보고 (자유한국당에) 들어가라는 말씀이 많았는데 요새는 그쪽을 많이 데리고 오라고 말씀한다”며 “과거 6개월 전, 4개월 전과 조금 달라진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이 항의 시위를 벌인데 대해선 “TK 주민이 몇 백만 명인데 (그 정도는) 신경 쓸 게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혜훈 대표 체제가 출범하고 한국당과의 보수 적통 경쟁을 천명한 후 처음으로 진행한 민심투어였지만 이 같은 상황에 첫 행보부터 벽에 부딪혔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른정당이 향후 한국당과의 차별화에 실패하거나 ‘배신 프레임’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바른정당 반대 움직임은 전국 곳곳에서 벌어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한국당 TK 민심 본격 겨냥
‘지지율’ 바른정당에 2배 앞서

 
TK지역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운명을 가를 최대 격전지가 될 전망이다. 한국당도 바른정당에 뒤질세라 지난 18일 지역 민원창구 격인 TK발전협의회를 만들었다.

협의회 구성을 제안한 이철우 최고위원은 이 자리에서 “자식이 자라서 부모에게 잘 하듯이 이제는 우리 대구·경북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며 본격 TK 민심 공략에 나설 뜻을 내비쳤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대구 달서병 당협위원장 자리를 직접 맡는 방안과 함께 휴가철이 지난 내달 말 TK 방문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발표된 갤럽 여론조사에 의하면 TK 지역에서 바른정당은 한국당에 2배 이상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지방선거가 1년도 채 안 남은 상황에서 바른정당의 향후 입지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슈 선점을 통한 외연 확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성호 건국대 국가정보학과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심판을 받았다는 자체가 국면이 다음 단계로 넘어간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TK지역 보수 유권자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 여론이 강할 것이라고 본다”며 “바른정당이 새로운 보수 가치를 세우려면 몇 년은 흘러야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지난 16일 바른정당이 주최한 바른비전토론회에서 “보수층의 무기력감이 더해져 바른정당의 입지가 상당히 어려울 수 있다”며 “보수 세력의 통합에 무조건적으로 매달리기보다는 개헌 아젠다의 선점을 통한 바른정당 고유의 이념적 특성을 부각시키고 좌우로 외연 확대를 꾀하는 것이 지금으로선 가장 중요한 전략이라고 생각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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