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소’ 시작됐다…2018년까지 ‘혁신-1기’ 고강도 개혁 예고

<뉴시스>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한동안 잠잠했던 적폐(積弊)가 전면 재등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7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감사원의 수리온 헬기 비리 감사를 언급하며 참여정부 때 운용하다 사장된 ‘반(反)부패기관협의회’ 부활을 선언, 적폐 청산 신호탄을 날렸다.
 
이에 맞춰 검찰은 수리온 헬기를 개발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납품 관련 기업들에 대한 대대적 압수수색을 진행하며 칼날을 뽑아들었다. 이런 가운데 19일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의 제1실천과제는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으로 설정돼 고강도 개혁을 예고했다. 일요서울은 국정과제 100대 과제 가운데 적폐 청산 관련 리스트를 살펴봤다.
 
‘방산 비리’ 뽑기로 청산 돌입…부처별 전방위 ‘개혁 모드’
‘최순실 재산 환수’ 로드맵 천명…형사 판결 후 본격 추진
편 가르기·사회적 갈등 자초·보복 정치 곳곳 우려 목소리
입법 과제 산적해 협치 중요성↑…재원 부실 비판에 ‘증세 카드’
 

국정 5개년 계획 보고서는 문재인 정부 5년을 3단계로 구분했다. 출범 이후 2018년까지 1년 6개월여 기간을 ‘새로운 대한민국 혁신 1기’로 설정했다. 국정 농단 추가 조사와 권력기관 개혁, 방산 비리 척결, 낡은 정치 제도 개혁 등 전방위적 국가 개조 계획이 포함됐다. 재벌개혁과 언론개혁은 물론 과거사 문제 등도 주요 개혁 과제로 선정됐다.
 
이 가운데 특히 최순실 관련 문제와 방산 비리는 장기간 고강도 청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서는 부처별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 국정 농단 실태 분석에 돌입할 예정이다. 현재 진행 중인 국정 농단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재판 판결이 확정되면 최순실 씨가 부정 축재한 것으로 의심되는 국내외 재산에 대해 본격 환수를 추진한다.
 
이와 관련 이미 국회에서도 ‘최순실 방지 특별법’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안민석 더불어민주당은 여야 의원 40여명과 함께 ‘최순실 재산몰수 특별법 추진 초당적 의원모임’을 출범했다. 최순실 방지 특별법은 국정농단 행위자의 부당수익과 재산을 조사하기 위한 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회가 압수수색 등의 영장을 발부받아 재산을 조사한다. 그렇게 밝힌 재산은 소급해 국가에 귀속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앞서 지난 3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한정된 수사 기간에만 파악한 최 씨 일가 재산 규모가 약 2730억 원에 달했다. 독일에만 500여개의 페이퍼컴퍼니가 존재하고 스위스, 이집트까지 광범위하게 해외로 재산을 은닉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법무부는 부정축재 재산 환수를 위해 법률 제정도 지원할 방침이다. 해외재산 추적 등 검찰의 범죄수익 환수가 쉽지 않을 것을 고려해 그 과정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법률적 뒷받침을 하겠다는 의미다.
 
검찰 개혁 로드맵 제시
‘수사권 조정안’ 연내 마련

 
권력기관 개혁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도 나왔다. 개혁대상 1호 권력기관인 검찰을 견제하기 위해 올해까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관련 법 제정에 나선다. 공수처 설치는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검찰 개혁을 위한 첫 번째 실행과제였다.
 
공수처 설치 시기도 관심이 모아졌는데 정부는 연내에 관련 법제화까지 마쳐서 설치를 완료할 방침이다. 이와 더불어 검찰과 경찰 간 견제·균형 원리가 작동하도록 올해까지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마련, 2018년부터 수사권 조정안 시행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공권력 남용 지적을 받았던 경찰을 인권 친화적으로 유도하기 위한 실행 방안을 세워 이와 연계해 조정한다.
 
경찰은 이를 위해 과거 인권침해 논란이 있었던 사건들의 전면적인 진상조사를 진행한다. 지난달 16일 출범한 경찰개혁위원회는 지난 19일 과거 경찰의 인권침해 사건의 재조사를 담당할 ‘진상조사위원회’를 설치하라고 경찰에 권고했다.
 
조사 대상으로 ▲백남기 씨 사망 ▲용산 철거민 화재 ▲쌍용차 노조 파업 ▲제주 해군기지 반대 ▲밀양 송전탑 반대 등 사건이 유력시된다. 경찰이 개혁위 의견을 전향적으로 수용하고, 책임이 규명되면 수사를 통해 형사처벌하겠다고 밝힌 만큼 결과에 따라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특히 사안에 따라 당시 경찰 수뇌부나 정부 고위직에게도 칼날이 미칠 가능성도 있다.
 
또 다른 대표 권력기관인 국가정보원은 100대 국정과제에서 해외 정보 기능을 강화하는 해외안보정보원으로 개편하는 큰 틀만 제시됐다.
 
‘군 사법개혁’ 눈길
‘2기 진실화해위’ 출범

 
국방개혁과 관련해서는 방산 비리 문제가 최우선 과제다. 하지만 군 사법개혁을 위해 ‘심판관’ 제도를 폐지하기로 한 것도 주목을 끌고 있다. 최근 군대 내에서 폭행으로 인한 사망 등 사건·사고가 계속됐고, 그때마다 군은 철저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약속했으나 공염불에 그쳤다는 비판이 일었기 때문이다.
 
심판관은 군 판사 2명과 함께 재판부를 구성하는 장교로 부대 지휘관이 임명하게 돼 있는데, 이는 심판관이 부당하게 재판에 관여할 수 있는 구조여서 군 사법 체계에 대한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정부는 ‘국방의 문민화’를 설정하고 장병 인권 보호에 나설 계획이다. 정부는 국가인권위원회 내 ‘군인권보호관’ 신설하고, 군 의문사 진상 규명을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정치 개혁과 관련해 가장 큰 이슈인 개헌도 차질 없이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헌법 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방안이 검토돼 왔다. 지난 1월 5일 출범한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는 공청회 등 개헌 논의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정부는 해당 논의에 참여하고 지원할 계획이다.
 
또 국민의 참정권을 확대하기 위해 국민투표 확대, 국민발안제와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 투표시간 연장 및 선거연령 만18세로 하향 등을 추진키로 했다. 아울러 장기간 논의돼 왔으나 이뤄지지 않았던 대선 결선투표제와 국회의원 권역별 비례대표제(전국을 몇 개 권역으로 나눠 인구 비례에 따라 권역별 의석수를 먼저 배정한 후 그 의석을 정당투표 득표율에 따라 배분) 도입을 추진한다.
 
한편, 이번 국정과제에 개헌의 한 축인 권력 구조와 관련한 구체적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4년 중임 대통령제 개헌을 공약한 바 있다.
 
이 밖에 정부는 ‘과거사 문제 해결’에도 발 벗고 나설 계획이다. 518광주민주화운동과 제주4.3사건이 대표적으로 거론됐다. 문 대통령은 올해 5.18 기념식에서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에 대한 군의 최초 발포 명령 등을 포함한 진상 규명을 약속한 바 있다.
 
아울러 내년 상반기에는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을 재개, 과거 미해결 사건을 접수하고 진실 규명에 나설 방침이다. 진실화해위는 과거 각종 의문사·인권침해 사건 등 국가 폭력을 바로잡자는 취지로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출범했다. 5년간 활동하다 2010년 이명박 정부 시절 종료됐다.
 
“정의 실현” vs “갈등 자초”
입법·재정 등 과제도 산적

 
문재인 정부가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국가 비전으로 설정하고 적폐 청산을 제1국정과제로 선정했지만, 통합과 협치보다는 갈등과 분열을 자초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또 국민 편 가르기, 국정 안정성 훼손 우려, 갈등에 따른 국민 피로도 증가 등의 목소리도 나온다.
 
야당은 보복 정치에 나선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태흠 최고위원은 “적폐 청산이라는 미명하에 정치보복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바른정당 전지명 대변인은 “적폐청산과 반부패, 과거사 해결 등은 구체적 내용이 나오기도 전에 문재인 정부가 보복 정치를 하려 한다는 인상을 남겨 빛이 바랜 상태”라고 지적했다.
 
국민의당도 100대 국정과제가 ‘좋은 말 대잔치’로 끝나서는 안 된다며 우려에 동참했다. 국민의당 양순필 수석부대변인은 “(정부·여당이) 지금처럼 여론몰이를 앞세워 야당은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으로 밀어붙인다면 국정 혼란만 초래할 뿐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또 발표한 국정과제 상당수가 국회 입법을 필요로 하고 예산이 수반돼야 한다는 점에서 향후 추진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100대 과제 중 91개가 입법 조치가 필요하며 특히 공수처 설치 법안, 과거사 문제 해결과 관련된 과거정리기본법, 국방 개혁 법안 등은 여야 입장이 첨예하게 갈려 처리에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국정과제를 뒷받침할 재원 마련 문제도 논란거리다. 국정운영 5개년 계획 보고서에 재원 마련 방안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정부 발표 이튿날인 20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가 100대 과제 달성에 178조원이 필요하다고 발표했는데 지금처럼 세금이 잘 걷힌다는 전제 아래 짠 것 같다”며 “거꾸로 말하면 재원에 대해선 ‘무대책’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주로 ‘재정 지출 개혁’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정의당은 물론 정부 내부서도 비판이 나오자 ‘증세 카드’를 꺼내들었다. 지난 20일 새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초 대기업과 초 고소득자에 대한 법인세 및 소득세 과세 구간을 신설하자고 제안했고, 당·정·청이 관련 내용을 협의했다.
 
국정과제에 대한 논의는 증세 공방으로 전선이 형성되는 분위기다. 한국당 이현재 정책위의장은 “정부가 국정 100대 과제를 발표하며 증세 없이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불과 하루 만에 증세 없이 달성할 수 없는 무리한 날림 공약임을 정부 스스로가 자임했다”며 증세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반면 문 대통령은 21일 증세 논의에 대해 “증세를 하더라도 대상은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에 한정될 것”이라며 “일반 중산층과 서민들, 중소기업들에는 증세가 전혀 없다”고 국가재정전략회의 마무리 발언을 통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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