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 각서’에도 일방적 추진…‘섬진강 오염될라’ 속 타는 주민들

▲ 전남 곡성 섬진강 침실습지 전경. <뉴시스>
 
청계공원묘원, 화장 뺀 ‘납골당 사업’ 합의 이후 설치신고
“행정법 절차상 문제없다”…일부 ‘곡성군수 입김’ 의혹도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전남 곡성군 곡성읍 신기리에서 한 재단법인과 마을주민이 16년째 갈등을 이어오고 있다. 이 마을에는 화장한 유골을 안치하는 납골당(봉안당)이 있는데, 앞서 재단법인이 이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납골당은 설치 이전부터 마을주민의 반발에 부딪혔다. ‘화장(火葬)’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화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 때문이었다. 이후 16년이 지난 현재, 갈등 해결은커녕 연이은 송사로 번졌다. 마을주민 측은 ‘재단 측이 합의를 파기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고 재단 측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문제의 납골당은 청계원에서 운영하는 ‘청계공원묘원’이다. 논란은 지난 2001년 시작됐다. 그 이전부터 마을에 화장터가 건립될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마을 주민들은 반발하기 시작했다. 시신을 화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유해물질이 공기를 타고 마을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인근 섬진강의 수질오염도 염려됐다. 물론 부동산 가치의 하락도 예상됐을 터였다.
 
주민 측은 이런 이유로 화장 사업을 반대해왔고, 양측은 ‘화장 사업은 제외한’ 납골당 사업만 한다는 합의를 도출했다. 합의 내용에는 재단이 마을 발전기금 1억 원을 제공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대신 주민 측은 사업 기간에 일체의 민원을 제기하지 않기로 했다. 양 측은 동의 후 각서를 나눠가졌다.
 
순조롭게 종료되나 싶던 양측의 갈등은 1년이 채 못 돼 다시 불거졌다. 재단이 약속한 기금을 제공하지 않아서다. 재단 측은 1억 원 가운데 500만 원만 건넸다. 2002년 4월 주민 측은 약정대로 지급해달라며 약정금청구소송을 제기했고, 같은 해 7월 승소했다. 하지만 여전히 기금을 전액 받지 못했다. 2005년이 돼서야 절반가량인 4500만 원을 받았을 뿐이다. 
    
   
청계원과 마을주민이 작성한 합의서 및 법원의 판결문.

10여 년이 흐른 지난해 양 측은 다시 법정에서 만났다. 재단 측이 주민의 동의 없이 돌연 화장시설 설치신고서를 두 차례나 곡성 군청에 제출해 사업을 시작하자 주민들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청계원 관계자는 “사업 변경에 주민의 동의는 필수 사항이 아니다”라며 “행정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곡성군의회는 재단 측이 신고서를 제출하자 ‘주민들의 동의를 받아오라’는 의견을 내놨고 접수는 한 차례 취하됐다. 그 뒤 청계원 측은 당시 마을 이장 최모씨를 만났다. 아직 제공하지 않은 5000만 원을 주는 조건으로 합의서에 동의를 구하기 위해서다. 최 씨는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재단 측은 이 합의서를 첨부해 화장시설 설치신고서를 재차 접수했고, 군청의 승인을 받아 현재 화장 사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주민들은 “해당 합의서가 화장시설 설치에 대한 동의가 아닌 5000만 원의 약정금에 대한 합의였다”며 “마치 화장사업에 대한 합의인 것처럼 제출했다”고 주장했다. 합의서에 도장을 찍은 최 당시 이장은 해당 화장시설 설치를 가장 반대했던 주민 가운데 한명으로 알려졌다. 결국 주민들은 지난해 사용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 광주지방법원은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단 측은 즉각 항소해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주민 측 관계자는 “청계원이 항소를 한 건 최대한 사업을 진행해 수익을 남기려는 전략이 아니겠느냐”며 “납골당은 지역 혐오시설로 인식되기 때문에 국내에서 경쟁자는 많지 않다. 특히 올해는 ‘윤달 특수’이기 때문에 3심제를 최대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궂은일을 해도 탈이 없다’는 속설 때문에 윤달이 돌아오는 해에 화장 건수가 급증하는 경향이 있다. 청계원의 예약 현황(지난해 9월 기준)을 보면 2016년 10월부터 3개월간 총 2만2849기수의 화장 대기행렬이 이어졌다. 화장 비용은 한 기수당 7~8만 원 선으로 알려졌다. 산술적으로 계산해 이 기간에만 수억~수십억 원의 매출이 발생하는 셈이다.
 
주민들의 의구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재단의 화장 사업이 군청의 인가를 받은 데 대해 군수의 영향력이 개입하지 않았겠느냐는 의심마저 제기된다. 화장 시설 설치신고서를 접수한 당시 최종 고시는 유근기 곡성군수가 했다.
 
유 군수는 2001년 청계원 설립 당시 재단의 대표이사였다. 이후 2004년 12월 사임했다. 현 재단의 대표이사인 박모씨는 유 군수와 마을 선후배 사이로 상당한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는 과거 유 군수의 선거운동을 도와주기도 했다고 한다.
 
곡성군청 비서실 관계자는 “당시 (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표이사였던 건 맞다”면서도 “하지만 신고필증이 나간 건 (이사직을 그만 둔) 그 다음이다. 또 납골당 사업은 허가가 아닌 신고제이기 때문에 요건만 갖추면 처리되는 사안이다. 군수가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청계원에서 섬진강까지 직선거리로 184m에 불과하다. <네이버 지도>
  
양측의 공방과 무관하게 ‘환경 훼손’ 우려는 여전히 남아있다. 화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연기와 재,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불순물로 환경이 오염될 것이라는 추측에서다. 묘원은 마을로부터 북서쪽으로 3㎞가량 떨어져있다. 다만 직접적인 피해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 마을 주민은 “여름에는 북서풍(북서쪽에서 부는 바람)이 없고 남쪽에서 바람이 불기 때문에 마을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것 같다”면서도 “가을·겨울에는 또 모르겠다. 아직까지 눈에 띄는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남풍은 납골당에서 불과 184m(도보 2분 거리) 떨어진 섬진강에 영향을 줄 소지가 있다. 강 쪽으로 바람이 불면 해당 오염물질이 충분히 이동 가능한 거리다.
 
곡성군은 지난 1997년부터 47억여 원을 들여 도로, 야영장, 청소년수영장 등을 정비해 관광휴양지로 조성했다. 또 전라남도 지정 자연휴식지 제1호인 청계동 계곡이 위치해 있고, 또 묘원 인근에 20억 원 규모의 ‘치유의 숲 조성사업’으로 힐링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종합적으로 판단해볼 때 이 화장시설은 군에서 펼치고 있는 환경사업에 역행하는 셈이다.
 
마을 측 소송 대리인인 서명심 변호사는 “주민들의 요구는 집단 이기주의가 아니다. 납골당의 필요성도 부정하지 않는다”며 “납골당 설치는 받아들이되, 지역 주민들과 자연환경에 유해한 물질을 배출하는 화장시설의 설치만 반대한 것이다. 이 곳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주민들을 위해서도 원고와 피고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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