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호화 여행 즐기는 일본의 부자 노인들

지난해 평생직장에서 받은 전별금 평균 2.3억 원
사치품에 돈 쓰던 노인들, 이제 크루즈 여행 몰려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에는 수많은 철도회사가 있다. 일본사람들이 ‘제이아루’라고 부르는 ‘JR’은 일본 국유철도를 쪼개서 민영화한다는 방침에 따라 출범한 준(準)공영철도로 1987년 4월 1일 국철에서 지역 또는 분야별로 사업을 계승해 12개 법인으로 구성되었다. JR 말고도 수많은 민간철도, 즉 사철(私鐵)이 지역별로 촘촘하게 운영되고 있다. 그 수는 이루 다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한국인 관광객이 자주 찾는 일본 규슈(九州)에서 가장 큰 철도회사의 사장에게 고민이 있었다. 철도 이용객이 너무 적었던 것이다. 독일·이탈리아와 더불어 세계 3대 초고령 사회인 일본에서 인구 노령화가 급속도로 진전되다 보니 출퇴근 인구도 줄고, 은퇴 노인은 기차를 탈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길은 없을까’ 고민하던 사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초호화 열차를 한 번 운행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것은 대히트였다. 곧바로 일본 최대 열차회사 두 곳에서 그 아이디어를 베꼈다. 지난 5월 동일본여객철도(JR 동일본)가 호화 열차를 선보였다. 이 열차는 침대열차 10칸에 승객 34명을 태우고 풍광 좋은 곳을 돌아다닌다. 우리가 영화에서 본 ‘오리엔트 특급’의 현대판으로 실내를 꾸몄다. 
벽과 천장은 유리로 만든 벌집처럼 장식하고 라운지에 피아니스트를 배치하며 미슐랭 별을 받은 요리사들이 내놓는 최고급 식사 메뉴를 갖췄다. 3박4일짜리 열차여행 상품은 그 가격이 8400달러(약 950만 원)나 됐지만 내년 3월까지 예약이 꽉 찼다.     
흔히 사람들은 미국, 중국에 이은 세계 3위 경제국인 일본이 ‘잃어버린 20년’, 즉 지난 20년 동안 7차례 경기후퇴를 겪었기 때문에 나라 경제가 가라앉아 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한다. 그것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일본을 그렇게 보는 것은 한 면만 보는 것이다. 
일본은 부자 나라다. 일본 재무성 집계에 따르면, 2015년 말 현재 일본이 해외에 보유한 순자산(자산에서 부채를 뺀 것)은 339조 2630억 엔(약 3678조원)이다. 단연 세계 1위다. 그 다음 2위는 1위와 격차가 큰 독일(195조 2360엔)이며 3위는 중국으로 192조 3726억 엔이었다. 나라만 부자인 것이 아니라 국민, 특히 노인 가운데 부자가 많다. 
세계적인 경영 컨설팅 회사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일본의 백만장자는 미국을 빼면 세계에서 가장 수가 많다. 중국과 독일의 백만장자를 합쳐도 일본에 못 미친다. 그리고 일본의 사치품 시장은 지난해 세계에서 유일하게 성장했다. 에르메스 가방이나 롤렉스시계 같은 사치품에 싫증난 일본의 부자 노인들이 이제 호화 열차여행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한다.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의 임원 그렉 슐체는 “일본은 대단한 사치품 시장”이라면서 “여행시장이 그 추세를 막 따라잡고 있다”고 말한다. 일본에는 요즘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고 있지만, 요트를 소유한 우메모토 후지오 같은 노인은 고급 관광의 주된 고객이다. 주머니가 두둑한 67세 우메모토는 시간도 많고 돈도 많다. 한국의 전경련에 해당하는 일본 경단련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 직장에서 평생 근무한 정년 퇴직자는 전별금으로 평균 21만 달러(약 2억3000만 원)를 받았다. 우에모토는 “주택대출도 다 갚았고, 아이들도 다 키웠으니 이제 나는 재미나게 노는 데 집중한다”면서 “더 필요한 것은 없다. 추억과 경험에 돈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일본에 빌 게이츠같이 엄청난 부자는 많지 않다. 세계 500대 부자 가운데 일본인은 6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백만장자(재산 100만 달러 이상)는 수두룩하다. 인구가 줄고 있는 나라에서 부유하면서 늙은 사람은 늘고 있다. 확실히 빈부격차는 벌어지고 있다. 일본 국세청에 따르면 일본인의 임금과 수당 등은 한창때인 1997년보다 평균 약 10% 하락했다. 그래서 일본에는 지금 사실상 디플레이션이 진행 중이다. 지난 5월 일본의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고작 0.4%였다. 젊은이들의 취업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되지만 평균적 시민의 살림살이는 넉넉함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사치산업은 그런 전반적인 경제상황과는 전혀 무관하다. 익스피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여객기 1등석 항공권 판매는 이코노미석보다 2배 빠르게 증가했다. 일본 최대 여행사인 JTB에 따르면, 이 회사의 고급 여행상품 회원은 2003년 최초 출시 이래 10배 늘었다. 노인들의 소비 증가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크루즈 산업이다. 일본 국토교통성에 따르면, 지난해 크루즈선의 일본인 승객은 12% 증가한 24만8000명이었다. 
일본 최대 해운회사인 니폰유센은 그 회사가 판매하는 가장 호화로운 여행, 즉 석 달 반에 걸쳐 세계를 일주하는 상품이 발매 첫날 매진됐다고 말한다. 가장 비싼 티켓은 23만 달러(약 2억6000만 원)다. 이처럼 수요가 많다 보니 외국에서 경쟁업체들이 일본 시장을 기웃거린다. 미국의 프린세스 크루즈는 일본에서 연중 출발하는 크루즈여행 상품을 내년 4월 출시할 예정이다. 또 다른 크루즈사인 겐팅 홍콩은 7월 대형 크루즈선을 일본에 보냈다. 
이탈리아의 MSC 크루즈는 내년 처음 일본에 취항할 예정이며 2019년 최대 4척을 일본에 보내는 것을 검토 중이다. 2005년 이래 호화 시설 6곳을 건설한 호시노리조트는 지난해 도쿄 금융가 한복판에 전통 일본식 온천호텔을 개장했다. 사무용 고층건물로 둘러싸인 이 호텔의 부지에 온천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이 호텔은 온천물을 구하기 위해 땅을 1마일 깊이까지 굴착해야만 했다. 18층짜리 이 호텔은 서양식 이부자리를 갖춘 다다미 객실 84개를 보유하고 있다. 일반인들은 버스 여행이 어떻게 사치스러울 수 있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일본 사람들은 호화 버스 여행 상품을 고안해 냈다. 
몇 년 전 백화점 운영사인 이세탄 미쓰코시 홀딩스는 비행기 1등석을 탄 기분이 들도록 특별히 설계된 관광버스를 개발했다. 이 버스는 40명이 탈 수 있는 공간에 승객용 의자를 단 10개만 배치해 쾌적한 승차감을 준다. 그러자 JTB가 지난 4월 이를 잽싸게 모방했다. JTB의 호화 관광버스를 타고 일본 동부의 숲과 산악 지대를 12일에 걸쳐 둘러보는 여행상품의 가격은 1만 3000달러(약 1400만 원)다. 이 버스도 주된 승객은 부자 노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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